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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지난연재 김태형의 부석사이야기
“전성기 때 무량수전 축으로 일(一)자 배치”
사람이나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1천3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부석사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과연 최전성기 부석사의 가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기존의 연구 성과들의 대부분은 조선 후기의 부석사 모습을 언급하면 가람배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다…
“조선시대 부석사, 청허 휴정 스님 법맥 이어”
“상봉당 정원 스님 이은 환성당 지안 스님으로 이어져”부석사에서 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한 지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부석사에 대해 모르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느끼는 기분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한 그런 기분이랄까.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제대로 된 부석사의 역사를 고…
잡역과 태백산사고 수비 등 고난의 조선후기
18세기까지의 부석사는 나름의 사세를 유지하면서 지역의 혹은 세계적인 명소였다. 그러나 상황은 19세기 들어서면서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앞서 ‘부석사 범종각’을 소개하면서 일부 밝히기는 했지만 당시의 부석사 상황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18세기 초인 1709년 태백산사고의 실록을 포쇄를 하고 돌아가는 …
“십승지 중 3곳이 자리한 소백산”
1592년 4월부터 1598년 11월의 조선은 ‘산도들도 마을도 모두 불타고 자식들 앞에서 부모를 칼로 죽이고 아이들은 묶어서 포로로 끌고 가는 지옥 같은 상황’(일본군 종군 승려 케이넨(경념(慶念))의 「조선일기」중)이었다. 이런 와중에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승군(僧軍)들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일본군은 전국의 사찰…
“다락은 구름위에 있고~”
부석사의 역사 ‘조선’편을 쓰기에 앞서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얘기를 전개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그나마 창건이후 고려까지는 자료가 적어 그동안 확인되고 남아 있는 문헌과 유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를 추정할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사료가 비교적 많아 이를 정리하여 연재하는 대는 애로가 따른다.편…
부석사에 천문관측 시설 있었다
고대 사찰의 기능은 어디까지였을까. 단순히 전법과 포교, 수행이라는 종교본연의 위치만을 담당했을까, 아님 다른 어떤 특수한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지난 1년여 동안 부석사에 살면서 새로운 유물들을 확인할 때 마다 사라진 부석사의 역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석사 동쪽(부…
“화엄종찰의 위상 고려시대에도 유지”
676년, 문무왕 즉위 16년 되는 해에 태백산 자락 봉황산 중턱에 터를 잡은 부석사는 1,300여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신라왕조는 몰락하고 새롭게 들어선 고려왕조가 들어섰지만 부석사는 여전히 해동화엄종찰로서의 굳건한 반석을 유지하고 있었다. 9세기 부석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여러 스님들 중…
“부석사 사격, 의상 재세시 완성”
의상 스님이 태백산 자락인 봉황산에 부석사를 짓고 해동화엄의 꽃을 피우니 사방에서 많은 불자들이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고 많은 영감이 나타났다고 한다. 702년 의상스님이 입적한 이후 부석사의 역사를 고증할 만한 자료는 매우 적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볼 때 지난 호에서 언급한 의상스님의 청빈한 삶과 …
초가 몇 채로 시작? “그건 아닐 것”
지금까지 모두 6회에 걸쳐 부석사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개해 왔다. 잠시 숨을 고르는 측면에서 이번 호에는 부석사의 역사를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로 한다. 글이 부석사의 총체적인 역사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어야했지만 아직까지 부석사 역사를 전부 고증할 만한 자료의 부재로 인해 단편적인 사료들을 오랜 시간 취합…
한 칸짜리 ‘단하각’, 왜 지었을까?
부석사 무량수전의 북서쪽에 위치한 단하각은 무량수전 옆길을 따라 조사당 앞을 지나 응진전과 자인당과 한 구역에 있는 작은 전각이다. 그동안 이 작은 전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있었지만 1,300년 고찰 부석사의 사적을 종합 정리한 ‘사적기’가 없다보니 보는 이와 연구하는 이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
범종 없는 부석사 범종루, 그 까닭은?
건물의 정면은 팔작지붕, 뒷면은 맞배지붕이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부석사 범종루는 말 그대로 범종을 매달아 때에 맞추어 종을 치던 전각이다.그러나 부석사 범종루에는 범종이 없다. 범종루의 주인인 범종은 어디로 가고 없고, 지금은 목어와 법고 그리고 운판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초 부석사 …
무량수전서 100년 전 선조들을 만나다
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참배객이나 관광객, 혹은 답사를 하러온 학생들 등등은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적다. 설령 들어온다고 하여도 간단히 참배만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배경으로 …
미안해요, 무량수전 현판!
간혹 부석사 무량수전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무량수전의 단청과 관련된 언사들이다. “단청을 하지 않아야 고색창연한 멋이 있다, 단청을 하면 무량수전을 버린다”는 등의 말이다. 일말 타당성이 있게 들리지만 옛 스님들이 들으면 몽둥이를 들고 좇아 올 일이다. …
무량수전의 부처님은 ‘무량수불’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의 특징적인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몇 차례의 보수와 개금을 거치는 동안 수인이 변경되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는지 불확실하다’-『부석사』, 김보현, 배병선, 박도화. 대원사 간행. 2008. 12. ‘수인은 조선시대에 불상의 파손된 것을 고치면서 바꾼 것이다’-『한국…
“부석사는 ‘화엄일승법계도’의 구현”
부석사성보박물관의 김태형 학예사의 부석사 이야기를 연재한다. 김태형 학예사는 기자출신의 불교미술 전공자로, 부석사의 구석구석을 특유의 예리하고 전문성 있는 안목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김태형의 부석사 이야기’는 천년 화엄종찰 부석사의 진면목을 김태형 학예사와 함께 공부하며 감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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