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과학의 아만(我慢)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고 있다는 한 미국인 교수와 불교와 기독교에 관해서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목사 출신인 그는 불교에 대해서도 상당한 소양을 쌓고 있어 우리들의 화제는 다양하였다. - 그 중에 한 가지 -
과학은 시험관에서 생명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리라는 것. 왜 그러냐면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신이 창조하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것은 불교에겐 유리한 입장을 제공할 것이니,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자기가 지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과학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섬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 신학자로서 불교에 호감을 보이고 또 비교종교학자로서 어지간히 공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중대한 기독교적인 편견이 있어서 그것을 못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의 인과(因果)나 연기(緣起)의 교설도 그런 견지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였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 이면에는 창조자와 피조물은 각기 자기의 실체(自性)을 갖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인과나 연기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하거나 또는 어떤 잘못된 생각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것은 속(自性)이 비었으며 속이 비었기 때문에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뜻(中道)이다. 기독교적인 창조의 개념에 대하여 말한다면, “자작(自作)도 아니고 타작(他作)도 아니다.”
시험관에서 생명이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다만 그럴 조건을 만족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 생명이 절대로 창조된 것은 아니다. 그러건만 만일 이것을 인간이 생명을 창조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과학의 아만을 깨우칠 수 있는 길은 오직 부처님 가르침 밖에 없는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