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s-무무명 부분

이영의 검거나 흰 작업을, 전시 주제, ‘흐름에 들다’와 연관하여 불교적 교리에 빗대어 본다면, 욕계(欲界)의 욕망과 그에 따른 고통을 벗어나 무색계(無色界)을 지향하는 욕계출리도(欲 界出離圖) 혹은 고요한 열반의 세계를 염원하는 열반적정도(涅槃寂靜圖)라고 할 만하다. 다만, 불교 철학뿐만 아니라 실험적 현대미술에 천착하는 그의 작업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이 글은 그의 작업과 이번 전시를 다음처럼 정리한다: 작가 이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무상의 깨달음을 견인하는 수다원의 세계’와 ‘색즉시공과 공성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종국적으로 자신의 예술가적 위상을 “영원한 나,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 ‘무아(無我)’의 철학에 투사한다. 세계를 대면하고 현재를 사는 예술가로서 정주하지 않는 끝없는 조형 실험과 더불어 놀라운 변화를 항시 추구하면서 말이다.

- 김성호 미술평론가

무우수갤러리에서 불기2569(2025)년 4월 30일부터 5월 19일까지 이영 작가의 개인전 ⟪흐름에 들다⟫를 개최한다. 

이영 작가를 만난 건 2021년 『Cosmos』 개인전 이후 두 번째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 초의 작품들과 20여 년의 터울을 둔 Cosmos 연작들, 그사이에 파열된 원형(圓形)들의 속도감들이 보인다. 

인연 - 2. 90×126cm. 장지  흑연 먹. 2005년 (과천 현대미술관 소장-미술은행)

인연 - 11. 71×150cm. 장지 흑연 먹. 2006년 (51-56호)

 

4층 전시장에는 ‘검은 화면, 먹그림’ 연작이 전시된다. 

중첩된 한지의 어두운 무게 속으로 잘려진 선들이 서로를 찾아 완성체를 복원하고 싶은 열망의 아우성을 지나면, 연결되지 못한 원형(圓形) 속으로 검은색과 흰색이 서로를 침범하며 질서를 회복하려는 속도감의 에너지가 밖으로 분출하고 있다.

3층 전시장에는 작가의 대표 연작 ‘Cosmos’가 전시된다. 

그의 ‘Cosmos’ 연작에서 처음 느껴지는 것은 강렬한 흡입력으로부터 사방으로 쏟아져 나와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암호들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고대의 언어처럼 중첩되어 웅얼거리며 퍼져 나가고 있다. 반야심경과 금강경이 모음과 자음으로 해체되어, 수 겹으로 중첩되어 드러나는 언어의 동심원. 작업 한 점에 경이 한 권이다.

Cosmos 연 02, 120×120cm,  장지  혼합매체, 2021년

Cosmos 정각 01, 80×80cm, 장지  혼합매체, 2019년

Cosmos 흐름에 들다 07. 122×122cm. 장지 혼합매체 2020년

거의 무채색으로 진행되는 작업들이다. 무채색은 수도자의 색깔이다. 작가의 무의식이 수도(修道)의 성과로 진화하고 있다. ‘흐름에 든다는 것’은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멈춰 있지 않으며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영 작가의 흐름이 포용(包容)의 동사(動詞)로 진화한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