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원 5

(사진=장명확)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不染世緣 常修梵行)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허름한 산골 민박을 찾은 작가 ‘정민’, 앳된 얼굴에 관능적인 매력을 가진 소녀 ‘유미’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추운 겨울밤, 창고 안 소녀의 나신을 훔쳐보던 정민은 타오르는 욕망을 애써 누른 채 서울로 돌아온다. 하지만, 자신을 유혹하는 듯한 유미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간 그는 한밤중 방으로 찾아온 그녀와 뜨거운 정사를 나누지만, 도무지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9월 17일, 벗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찾아온다.”

지난 2015년 가을에 개봉된 봉만대 감독의 영화 ‘덫: 치명적인 유혹’을 소개하는 글이다. 소개의 글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얼마나 관능적일지 짐작이 간다. 영화의 제목이 아니더라도 치명적인 유혹은 성적 유혹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다. 그만큼 성적 유혹은 강렬한 속성을 지닌다. 오죽하면 식욕, 수면욕과 함께 3대 본능에 해당하는 것이 성욕이라고 하지 않는가. 

살다 보면, 온갖 유혹들과 맞부딪히기 마련이다. 어떤 유혹이든 맞닥뜨리면 거기서 벗어나기란 녹록지 않다. 특히 성욕은 더욱 그렇다. 수십 년 잘 수행을 해오다가도 이성의 유혹에 흔들려 수행자의 삶을 망쳐버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만큼 성욕을 극복하는 것은 난해하고 요원한 문제이자 과제인 셈이다. 

유혹은 어떤 상대를 꾀어서 마음을 현혹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행위를 말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특히 성적인 목적을 갖고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이성(異性)을 꾀어내는 행위는 벗어나기 힘든 대표적인 유혹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온갖 유혹들을 세연(世緣)이라고 표현한다. 세연이란 이 세상에서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나 연결고리들이다. 세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성적 유혹이다. 성적 유혹은 본능적이고 강력한 감정의 산물이며, 모든 종류의 대인 관계 속에서 미묘하게 또는 명백하게 존재하는 속성이다. 성적 유혹은 이성이 만나 새로운 연인 관계를 시작하는 초기 동력으로 작용한다. 우정이나 동료의 관계에서 어떤 이유로 성적인 긴장감이나 유혹이 개입되면, 금세 관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복잡성이 가중된다. 성적 유혹은 인간이 맺는 수많은 관계의 한 요소이며, 관계의 성격과 개인의 선택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늠자 또는 분기점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는 온갖 유혹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살아가는 것을 범행(梵行, Brahmacarya)이라고 말한다. 범행은 불교의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불교 용어로, ‘청정한 수행으로 일관한 삶’을 의미한다. 모든 세속적 욕망을 떠나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청정하게 수행하는 삶이 범행이다. 범행은 재가자보다는 출가한 승려나 수행자들의 생활 양식에 대한 규정들이다. 그러므로 단연 성적인 욕망을 완전히 끊고 지키는 순결 또는 금욕 생활을 매우 강조한다. 

‘범행(梵行)’은 원래 브라만교에서 사용한 용어인데, 불교에서 받아들인 용어이다. 두루 알다시피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에서는 인생을 4단계로 나누고, 첫 번째 단계를 범행기(梵行期:학생기)라 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 기간에 미혼의 학생(바라문)은 집을 나와 스승의 집에 머물면서 몸을 청결히 하고, 스승의 밑에서 베다(Veda) 학습(종교적인 교육)에 전념해야 했다. 이런 전통이 불교에 유입되면서 ‘범행(梵行)은 부처님의 법과 율을 열심히 지키고 따르는 것, 번뇌나 욕망의 오염을 초월한 청결한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다. 

‘범(梵)’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며, ‘범행(梵行)’이란 ‘청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서 성적 순결을 뜻하는 용어였다. 그 의미가 불교에서 확장돼 음행(淫行)을 완전히 끊은 출가 수행자의 삶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청정범행(淸淨梵行)’이라고 한 것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의하면, 범행은 음욕(淫慾)을 끊는 것을 철칙으로 했는데, 10선업도(善業道)를 행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즉, 열 가지 선업(善業)을 행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것을 범행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범행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열반을 성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범행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정도(八正道) 등의 성실한 실천을 의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불교의 가르침 자체가 가장 훌륭하고 청정한 행위이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 범행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범행은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청정하고 금욕적인 수행’이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범행은 간헐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항상 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상수범행(常修梵行)이다. 상수범행은 항상 청정한 행(梵行)을 닦는다는 뜻이다. 불교적으로 볼 때 계율과 도덕적 수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운허스님께서 옮긴 ‘청정범행 갈고 닦아’는 상수범행의 의미와 특징인 지속적 실천을 강조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상수(常修)는 항상 닦는다는 뜻인데, 이를 갈고 닦는다는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비구(니)는 수행을 하면서 수백 조항의 계율을 지키고, 작은 죄도 두려워하며, 정직·근면·배려 등 다양한 덕목을 실천해야 한다. 그럴 때 깨달음(정각)에 이르고, 게을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상가(Sangha)는 귀의의 대상, 즉 삼보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상수범행은 불교에서 청정하고 올바른 삶을 ‘지속적이고 올바르게’ 실천하는 수행 방식을 의미한다. 여타 불교 수행법과는 그 실천 방식과 목표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상수범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며 번뇌를 소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시, 계율 준수, 선정 수행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걷는 것이 그 핵심이다. 

사념처 수행 등 다른 수행법이 마음챙김 또는 알아차림을 중심으로 번뇌를 줄이고 깨달음을 추구한다면, 상수범행은 청정범행(위수띠)이라는 개념 아래 모든 행동과 삶을 부처님 말씀에 맞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둔다. 

결론적으로 이산혜연 선사는 발원문에서 범행을 불염세연(不染世緣)이라고 표현했으며, 단순히 세속적 유혹에 물들지 않는 것을 넘어 항상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이고 올바르게(常修) 청정한 지계의 삶(梵行)을 살아가겠다고 불보살님 전에 다짐하고 계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