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무(無)자로 ‘놓아버림’을 깨닫는다
정찬주(소설가)
사업가는 내 말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해왔고,
‘사회에 쓸모 있는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뒤집어보니 일에 대한 집착의 노예였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다음 달 중국 선종사찰 순례를 떠난다고 하자,
사업가도 만사를 젖혀놓고서라도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업가가 자신의 일을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부부가 미련 없이 떠난다는 얘기는 뜻밖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일상을 방하착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사업가 부부와 중국 숭산의 초조 달마대사가
수행한 동굴부터 육조 혜능대사가 교화를 편 남화선사까지
선종사찰 순례를 다녀왔는데, 사업가 부부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행복해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방하착이란 것도 사실은 공(空)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반야심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무무명(無無明)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내지(乃至) 무노사(無老死)
역무노사진(亦無老死盡)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도 공성의 진리를 드러낸 것인데,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그 반대의 허상에
집착하고 있으니 중생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하착하는 결단만 있으면
공성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야심경>은 중생들의 희망가라고도 할 수 있다.
방하착이란 공성으로 돌아가는 실천행이고-.
사변적인 설명이 되다 보니 헷갈려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한 생각 일으킨 세상’과
‘한 생각을 일으키기 전의 세상’의 차이만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
한 생각을 일으킨다는 것은
본래 청정한 마음에 때를 묻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방하착이란 일으킨 한 생각을 놓아버리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실제로 있었던 실화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점집을 다녀와서는
‘내년 모월 모일에 반드시 죽을 운이 끼었다’며
근심 걱정하면서 만사를 제쳐놓고 방에 드러누웠다.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굿을 해도 마음이 불안했다.
아주머니는 스님에게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스님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스님 처방은 ‘내년 모월 모일에 죽는다는 그 생각을 놓아버리라’였다.
허상을 만들어 놓고 왜 그 허상에 사로잡혀 있냐는 것이 스님의 경책이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난
아주머니는 건강을 되찾고 신심 있는 신도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이 <반야심경>에서 무(無)자를 나열하며
거듭거듭 공성을 얘기하는 것은 ‘허상을 놓아버리라’는
방하착의 지혜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그러시는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