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저술지인 군위 인각사(사적 제374호)에서 국보급 불교의식구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는 인각사 경내에 있는 추정 묘탑지를 지난해 10월 조사하다가 병향로와 향합, 정병, 이단합, 금고(쇠북) 등 국보급 공양구와 중국산 청자완 등 10여점을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이들 유물은 스님들이 불교의식을 집전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늦어도 9세기경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불교의식구들이 한꺼번에 출토된 적은 단 한번도 없어 당시 불교의식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군위군(군수 박영언)과 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는 2월 9일 오후 2시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저술지인 사적 제374호 군위 인각사 제5차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인각사는 고려후기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사찰로 유명하지만 이번 조사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미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존 조사에서 확인된 6기 문화층 외에도 인각사의 창건기 유구층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문화층이 추가로 확인됐다. 회랑시설, 탑지, 담장시설 등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5동과 스님들의 생활시설 등 고려시대 건물지 7동, 그리고 조선시대 건물지 2동 등이 확인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인각사가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머물기 훨씬 이전인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으며, 또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현재까지의 인각사 가람의 전체적인 배치와 변화,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커다란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금동병향로, 청동향합, 청동정병 등 ‘통일신라시대 불교의식구’가 일괄로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합의 유물은 중국 당대(唐代) 육조 혜능의 제자인 신회선사(神會, 683~758)의 묘탑 출토품을 비롯해 당(唐)대에 선종이 발달했던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각사 출토유물이 유일한 예로서 통일신라시대 인각사의 성격 규명은 물론이고, 당시의 역사, 불교사, 금속공예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병향로(柄香爐) 즉 손잡이가 달린 향로는 국내에 약 1~2점 정도 밖에 없는 귀한 유물이다. 그나마 출토지가 어디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인각사에서 출토된 병향로는 손잡이에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자 장식 병향로는 1982년 중국 섬서성 낙양에서 발견된 당대(唐代)의 유명한 고승인 신회선사(神會禪師)의 신탑(身塔) 지하 석실(石室)에서 발견되었다. 국내에서는 삼성미술관 소장 병향로와 말흘리 출토 병향로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인각사 출토 병향로는 두께가 종이처럼 얇지만 금속의 강도가 강하며, 기형이 우아하며 섬세한 선각문양과 사자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손잡이 끝부분에 놓여 있는 사자는 7cm 정도의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앞다리를 세우고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자세와 다문 입 사이에 두드러지게 표현된 송곳니, 얼굴 주위의 갈기 표현, 세 갈래로 나누어진 꼬리 등 매우 사실적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측은 “인각사 출토 병향로는 전체적인 기형이 신회신탑에서 출토된 병향로와 유사하면서도 선이 보다 유연하고 세부 장식도 세련되었다. 인각사 출토 병향로의 제작시기는 8세기말 또는 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청동향합(靑銅香盒)은 뚜껑이 7층의 탑모양으로 장식된 탑형 향합이다. 향합의 재질이나 주조기법을 살펴보면, 함께 출토된 금동병향로와 동일하다. 병향로와 향합은 본래 한 세트로, 중국 西秦代(서진대)에 개착된 병녕사 169굴의 벽화에서는 병향로와 향합을 같이 들고 있는 승려가 그려져 있으며, 중국 신회신탑에서도 인각사의 예처럼 병향로와 탑형향합이 같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인각사 출토 향합도 병향로와 한 세트라 할 수 있다. 신회신탑에서 출토된 향합은 인각사 출토 향합과 기형이 비슷하다. 다만 뚜껑 끝이 신회신탑은 2단으로 되어 있는 반면 인각사 출토는 보주형으로 마무리 하였고, 7층 가장자리를 선각으로 섬세하게 장식하여 주조기법이 더 우수하다. 인각사 출토 향합은 금동병향로와 같은 8세기말 또는 9세기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각사에서는 2점의 청동정병(靑銅淨甁)이 출토되었는데, 한 점은 완형이고 다른 한 점은 정병의 목 부분이 파손되었다. 인각사 출토 정병은 타원형의 몸체 어깨 부위에 작은 뚜껑으로 여닫을 수 있는 주구와 몸체 상단에 가늘고 긴 목인 첨대가 달려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구와 첨대가 달린 정병은 대부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인각사 출토 정병은 고려시대 정병에 비해 몸체와 목부분이 세장하여 기형적으로 차이가 있고, 동반 출토된 금동병향로, 향합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정병이 확실하다.

주구와 첨대가 달린 정병은 중국에서 7세기 후반부터 초기적인 기형이 나타나지만, 인각사 출토 청동정병과 같은 기형은 8세기 중반에 이르러 정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 조각 가운데 범천상이 주두와 첨대가 있는 정병이 조각되어 있을 뿐, 통일신라시대 정병으로는 인각사 출토 정병이 유일하다.

인각사 출토 청동이중합(靑銅二重盒)은 2층으로 된 몸체와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합의 표면은 가는 횡선대가 전면에 둘러져 있으며, 뚜껑에도 2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현재까지 이와 유사한 청동이중합은 고려시대의 유물이 알려져 있으며, 사리합이나 향합으로 사용되었다.

금산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청동이중합은 묵서명을 통해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안성 장명사탑 사리장엄구를 통해 탑지와 함께 997년에 납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인각사에서 청동이중합은 동반유물과의 관련성을 고려하면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유물의 편년 설정에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인각사 출토 반자(금고, 쇠북)는 뒷면의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전체적인 기형은 잘 남아있다. 이 반자는 발견 당시 반자의 앞면이 지면에 닿아 있고, 뒷면이 노출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유물이 들어 있었다.

반자의 앞면에는 세 줄의 융기 동심원이 둘러져 있으며 그 중앙인 당좌부분은 연화문을 돋을새김하여 장식하였다. 뒷면은 전이 비교적 넓게 둘러져 있고 소리가 울리는 공명구는 좁게 뚫려 있다. 뒷면의 전에도 앞면과 같은 두 줄의 같은 융기동심원이 둘러져 있다. 반자의 측면은 폭이 매우 두터운 편이며, 앞, 뒤면과 마찬가지로 세 줄의 융기 동심원이 장식되어 있다. 반자를 거는 고리는 측면에 세 개가 부착하였는데, 고리 형태가 앞으로 뚫리지 않고 管처럼 옆으로 뚫려 있는 것이 다른 반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현재까지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반자는 咸通 6년(865) 반자이다. 인각사 출토 반자와 비교해보면, 앞면에 융기 동심원이 한 줄이 더 있고, 당좌부분에 연화문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등 보다 장식적이다. 뒷면도 함통6년명 금구가 공명구가 넓은데 반해 인각사 출토 반자는 공명구가 작은 편이다. 측면의 경우는 인각사 출토 반자와 함통6년명 금고 모두 두터운 편이어서 공통점이 있지만 고리가 부착된 장소와 고리의 형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각사 출토 청동반자는 통일신라시대 반자의 모습과 고려시대 반자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청동반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각사에서는 3점의 청동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서 완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1점뿐이다. 완형으로 남아있는 청동그릇은 약간 외반한 윤형굽에 몸체는 굽에서 구연으로 가면서 넓어지고 있고, 구연은 바깥으로 외반되어 있다. 몸체의 중앙에는 한 줄의 굵은 선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발의 몸체에 굵은 선이 표현되는 것은 중국역사박물관 소장 8세 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색조문구곡발, 중국 섬서성건현陝西省乾縣박물관 소장 녹유완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청동그릇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각사 출토 청동그릇은 통일신라시대 제작품이 확실하며, 이 유물은 동반유물의 연대 설정에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인각사에서 해무리굽 청자 7점이 포개어져서 출토되었다. 접지면이 넓은(1.5~2.0㎝ 가량) 옥벽저는 5점, 접지면이 좁은(0.5~0.7㎝ 가량) 옥환저는 2점이 출토 되었다. 인각사에서 출토된 해무리굽 청자는 황룡사지 및 미륵사지 유적에서 출토된 월주요 청자(大中 12年, 858년의 토기 동반)의 굽지름 6.5~6.7㎝, 굽의 접지면 1.0~1.2㎝과 안압지에서 출토된 담록색의 전형적인 해무리굽 굽지름 6.0㎝, 굽의 접지면 1.2㎝, 포개구어진 흔적 등으로 볼 때 9세기 중엽 이전에 중국 월주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