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원 6

(사진=장명확)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執持禁戒 塵葉不侵)

당나라 때의 문호 백거이(白居易)도 처음 불교를 접했을 때, 그 대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도림선사(道林禪師)를 찾아가 ‘불법(佛法)의 대의’를 물었다. 그때 도림선사가 답으로 내놓은 것이 『법구경- 담마파다』에 등장하는 다음의 시(詩)이다. 

모든 죄악을 짓지 말고

모든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고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깨달은 님의 가르침이다.(Dhp. 183)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基意 是諸佛敎)

이 시를 들은 백거이가 조금은 허탈한 표정으로 “(이런 말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말이 아닙니까?”라고 되묻자, 도림선사는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으나 여든 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시에서 첫 구절은 율장(律藏)을, 두 번째 구절은 경장(經藏), 세 번째 구절은 논장(論藏)에 해당된다. 논장은 내용상 경장에 포함할 수 있으니, 불법은 크게 율장과 경장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대장경 편집 순서에서도 가장 앞에 율장의 편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차지하는 율장의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율장이 편집상에서 앞에 놓인 이유는 ‘율(비나야)은 교(다르마)의 생명 토대’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빙산에 비유한다면, 바다 위에 드러난 모습이 경이고, 바닷속에 감추어진 부분이 율이다. 그만큼 율의 중요성이 큰 것이다.

율장에 의하면, 계율을 어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고, 알맞지 않고, 수행자의 삶이 아니고,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는 것’ 일뿐만 아니라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또한 율에는 언제나 두 가지의 측면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승단, 즉 상가의 유지와 지속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하는 규율이라는 측면, 또 하나는 상가의 완전한 청정을 위해서 개인이나 집단이 지켜야 하는 윤리라는 측면이 그것이다. 

계율을 지키는 행위[持戒行]는 수행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자 핵심 요소에 해당한다. 계율을 도(道)에 들어가는 기초이며, 궁극적으로 번뇌를 없애는 묘한 길이다. 왜 그럴까? 지계행은 수행의 기본 토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계(Sīla)는 보시, 선정, 지혜 중 첫 번째 단계로, 도덕적 행위 없이는 올바른 집중(선정)을 얻을 수 없으며, 선정 없이는 지혜를 완성할 수 없다. 지계는 또 번뇌와 악행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계율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일체의 악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규범이고, 계율을 지킴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여 번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계는 또한 개인적 발전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개인의 자기 존중감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한 계율은 사회적 화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도덕성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상호 신뢰와 협력이 증진되어 사회적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며,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계행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행위를 넘어, 개인의 윤리적 가치를 높이고 정신적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훈련 과정이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가운데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執持禁戒 塵葉不侵)”는 많은 불자들에게 매우 인상 깊게 각인된 구절이다. 불교 수행자가 엄격한 계율 준수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 가운데 이처럼 문학적인 표현도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이산혜연선사가 사용한 집지금계(執持禁戒)의 의미는 계율(禁戒)을 굳건히 지키고(執持) 받들어 행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집지(執持)는 ‘붙잡을 집(執)’자와 ‘가질 지(持)’가 합쳐진 말로, ‘굳게 붙잡아 지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집지는 문맥에 따라 두 가지 주요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대상을 굳건하게 붙들거나, 마음속에 확고히 새긴다는 뜻이다. 특히 학문이나 수도에서 한 가지에만 집중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태도를 강조할 때 사용된다. 예컨대 ‘잡념에 신경 쓰지 말고 한곳에 집중하라.’는 의미의 ‘집지전일(執持專一)’이라는 고사성어를 들 수 있겠다.

집지는 산스크리트어 ‘아다나(ādāna)’를 번역한 용어인데, 아다나는 ‘붙잡아 유지한다.’, 즉 문자 그대로 집지의 뜻이다. 유식(唯識)에서는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신체와 모든 현상의 종자(種子, 근원적인 잠재력)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집지’라고 설명한다. 또한 경전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명호를 잊지 않고 굳게 지니는 수행의 한 방법, ‘집지명호(執持名號)’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금계(禁戒)’는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계율이란 뜻이다. 금할 금(禁) 자와 경계할 계(戒) 자가 합쳐진 것인데, 불도를 닦는 사람이 준수해야 할 규칙이나 그릇된 것을 금지하고 악을 경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교에서 금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일반 신도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팔계(八戒), 사미계(沙彌戒), 구족계(具足戒) 등이 있다. 

운허스님이 ‘털끝인들 범하리까’라는 문학적 표현으로 번역한 진엽불침(塵葉不侵)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티끌이나 나뭇잎이 침범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티끌(塵)이나 나뭇잎(葉)처럼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해도 결코 침범하거나 어기지 않겠다.(不侵)’는 다짐이다. 이것을 ‘털끝인들 범하리까’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옮겨 문학적 울림으로 승화시킨 그야말로 운허스님다운 멋진 번역이다. 

수행자가 세속적인 유혹이나 아주 작은 허물에도 흔들리지 않고 청정한 수행을 하겠다는 강한 서원을 표현! 수행을 통해 세속의 번뇌나 유혹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수행자의 자세를 유지하는 경지! 진엽불침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계율을 대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진엽불침을 글자별로 풀이하면 진(塵)은 속세의 번뇌나 더러움을, 엽(葉)은 사소한 유혹이나 장애물을, 불침(不侵)은 영향을 받지 않음이다. 

계율을 굳게 지켜(執持禁戒), 티끌이나 나뭇잎 같은 세속의 번뇌가 일절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다(塵葉不侵)는 이산혜연선사의 간절한 문장은 온갖 독에 침범당하지 않는다는 뜻의 만독불침(萬毒不侵)이나 어떤 외부의 공격이나 침투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금강불괴(金剛不壞), 불이나 불로도 해를 입지 않는 수화불침(水火不侵)처럼 외부로부터의 어떤 해악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경지를 의미하는 무협 용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불교에서는 확고한 정신적·수행적 청정함을 강조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