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폰의 달빛18
특별한 강연과 연주회
(삽화=정윤경 작가)
2015년 9월 20일.
정 작가는 준비를 치밀하게 했기 때문에 비엔나 추기경문화회관의 강연이 만족스러웠다.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강연했고 동시통역은 권 회장이 맡았는데,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깊은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정 작가는 준비한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후에는 30분 동안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인상에 남는 분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방송인이었다.
오스트리아의 방송사는 국영방송 하나뿐이었다. 강연에 참석했던 국영방송의 여성 국장은 “강연을 통해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인 줄 알았다”며 좋은 정보를 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청중들 대부분도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인이라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청중 가운데 두세 사람이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서 직접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어떤 인연으로 만났느냐?” “한국인은 프란체스카 여사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자국인이라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이를 보아 앞으로 프란체스카 여사가 한국과 오스트리아와의 우호를 돈독하게 하는 인물이 될 것 같은 기대가 강하게 들었다.
또 다른 질문은 한국의 서로 다른 종교 지도자들의 대화, 기독교의 원죄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 작가는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예를 보듯 종교 지도자들 간에 대화를 자주 한다”고 대답했으며, “기독교에 원죄가 있다면, 불교에서는 원죄가 없는 대신에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는 자작자수(自作自受),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것의 윤회가 있을 뿐”이라고 간결하게 답변해 박수를 받았다. 특히 작곡가 헤르베르트 빌리 씨가 신학대를 다녔던 도시 인스부르크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젊은 가톨릭 수사 같은 분위기의 신사가 “강연장이 작아서 청중들이 적게 모였지만 오스트리아를 대표하시는 분들이 왔다고 생각하시라”고 정 작가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정 작가는 질의응답 뒷부분에 강연에서 말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면서 마이크를 놓았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유럽에서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이 등장하여 일본을 많이 알렸습니다. 저 역시 프란체스카 여사를 소설화해서 그것을 대본 삼아 오스트리아 작곡자 헤르베르트 빌리 씨가 오페라를 작곡한다면 아름답고 우아한 한복차림의 한국인이 등장할 것이고, 저는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또다시 큰 박수를 받았지만 정 작가는 갑자기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자고 제안했다. 정 작가가 힘들어하는 표정을 본 권 회장이 서둘러 마무리 짓는 발언을 했다. 청중들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강연장 주변에 진열된 박 여사의 도예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떤 여성은 도예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벌써 와 있었다. 암파크 갤러리에서 박 여사의 작품을 한 점 구매한 귀족 여성이었다. 정 작가는 박 여사 작품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추기경문화회관 2층 카페로 자리를 옮긴 정 작가는 권 회장과 박 여사에게 실토했다.
“강연 시작 전에 구수한 향이 좋아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더니 위장이 자극받아 놀랐던 거 같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당신 표정이 하얗게 변했어요.”
박 여사의 걱정에 권 회장이 말했다.
“에스프레소 향이 작가님을 유혹했군요. 처음 마시는 분은 물로 희석해야 하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원샷했지요. 강연 시간에는 괜찮았는데 질의응답 마지막 무렵에는 식은땀이 나더군요.”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을 빨리 끝내겠다고 하셨군요.”
“사실은 질의응답 시간이 저는 더 재미있었지요. 그러나 더 했다가는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박 여사가 물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휴식을 취하니까 경련을 일으켰던 위장이 편안해지고 있어요.”
“잠시 후에는 사비네와 2인전이 있으니 당장 숙소로 돌아가 쉴 수도 없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정 작가는 차 대신에 따뜻한 물을 마셨다. 커피 원액인 진한 에스프레소에 놀란 위장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 에스프레소의 자극이 치명적이지는 않았던 듯 정 작가의 컨디션은 차츰 회복되었다. 잠시 후 박 여사와 사비네 2인전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을 만큼 활기를 되찾았다. 그때 한국 불교계 언론사에서 문자가 왔다. <미디어붓다> 이학종 기자였다. 한국을 떠날 때 오스트리아 가는 용건을 전화로 이야기해 주었던바, 기자로서 몹시 궁금했을 것 같았다.
정 작가가 문자를 보낸 뒤 30분 만이었다. 한국은 자정을 넘긴 새벽 1시쯤이었는데 이학종 기자가 정 작가에게 기사 초안을 쓴 뒤 “저는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전남 화순 쌍봉사 위 이불재(耳佛齋)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정찬주 씨(법명 무염)와 도예가 박명숙 씨(법명 무량광) 부부가 지난 9월 10일에 아주 특별한 18일간의 오스트리아 방문길에 올랐다.
지난 9월 27일까지 두 사람의 오스트리아 방문은, 비엔나에 있는 KKH(추기경문화회관;Kardinal Koenig Haus)의 초청으로 오스트리아인과 교포들에게 9월 20일 ‘한국인에게 불교란 무엇인가?’ 제목의 소설가 정찬주 선생 특별 강연과 질의응답, 9월 14~18일 갤러리 암파크에서 ‘한국의 미(美)’를 주제로 불교도예가 박명숙 비엔나 초대전의 일정 소화를 위한 것. 박 작가는 추기경문화회관에서 오스트리아 여류도예가 사비네와 2인전도 가졌다.
두 사람은 이번 18일에 걸친 오스트리아 방문이 ‘한국의 불교문학’과 ‘한국의 전통도예’라는 두 프리즘을 통해 나타나는 한국불교문화의 정수를, 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톨릭 국가 오스트리아의 정수리에 고스란히 전해준 아주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고 <미디어붓다>에 전했다.’
정 작가는 아이엠케이(IMK) 권숙녀 회장 초대로 오스트리아행이 이루어졌다는 등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문자로 보내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이학종 기자의 기사 초안 정도면 충분했다. 아무튼 이학종 기자는 직장에 출근한 뒤 더 다듬어서 정 작가 부부가 귀국할 무렵 <미디어붓다> ‘인물 동정’ 난에 기사를 올릴 터였다.
일주일 후.
9월 26일이었다. 정 작가와 박 여사는 또다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오스트리아 음악인들에게 황금 홀이라고 불리는 비엔나 무지크퍼라인 골든 홀에 가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아이엠케이가 자선 음악회 행사를 치러왔는데 그 장소가 바로 황금 홀이었다. 평소 클래식 뮤직을 접해보지 못한 오스트리아 노인들을 음악회에 초대하는 아이엠케이의 자선행사였다. 오스트리아 각주에서 초대받아 온 노인들은 한국인의 효도문화를 음악회를 통해서 체험하는 셈이었다. 효도음악회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권 회장은 이번 효도음악회 행사에 참여하는 피아니스트는 중국인 쉬란 왕(王詩然, Shiran Wang)과 한국인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알려 주었다.
정 작가 부부가 한복을 입고 황금 홀에 입장하자, 오스트리아 노인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환영했다. 남녀 노인들 역시 말쑥한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정 작가 부부는 권 회장의 배려로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1층인 메인 객석 중간쯤에 앉았다.
권 회장은 연주자들이 자리한 무대 바로 옆에 앉았다가 효도음악회 시작을 알리는 인사말을 했다. 독일어였으므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키 작은 동양 여성이 1층과 그 위쪽에 둥그렇게 감싸듯 위치한 상층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성공한 교포가 1700여 명의 오스트리아 노인들을 위해 자선 음악행사를 연주 하우스 중에서도 최고급의 황금 홀에서 한다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고 자랑스러웠다.
두 시간 동안의 음악회는 금세 끝났다. 솔직히 음악을 잘 모르는 정 작가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스트리아 노인들이 행복해하는 눈빛만 보고도 가슴이 뭉클했다. 더구나 정 작가 부부는 연주회가 끝난 뒤 황금 홀 만찬장에 또 초대받았다. 지정받은 자리는 특석이나 다름없었다. 정 작가 부부 옆에서 쉬란 왕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미세한 표정과 현란한 손가락의 움직임까지 다 보이는 위치였던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