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원 1

(사진=장명확)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所願 能仁拯拔 善友提携)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出煩惱之深源 到菩提之彼岸) 

중생이 미혹으로 인하여 지은 모든 죄를 ‘참회’ 한 후 이어지는 ‘발원’은 생사고해를 벗어나 열반의 언덕으로 가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즉 불보살님의 가피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고자 하는 다짐이다.

지난 세월 지은 한량없는 죄를 참회하는 건 해탈과 열반이라는 궁극적 목적지로 향하기 위한 일종의 기초 작업이다.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도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듯이 과거에 지은 업장을 참회하지 않고서는 해탈과 열반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충분하게 참회했더라도 그 길은 결코 녹록지 않으니 이산혜연선사는 불보살님께서 가피를 내려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한 것이리라.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간혹 능인(能仁)이라는 용어를 간혹 만난다. 하긴 서울 강남에 능인선원이 있고, 예산 수덕사 선원의 이름도 정혜사 능인선원이니 아주 낯선 용어는 아니다. 불연 깊은 불자들이야 능인이 부처님을 표현하는 명칭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의외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능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한자로 번역한 능인적묵(能仁寂黙)에서 따온 말이다. 능인적묵은 능히 어짊을 베푸는 부처님의 자비심과 부처님께서 성취한 열반의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능인은 ‘능히 어질게 하는 사람’, ‘능히 인(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부처님의 자비심과 다른 이를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능인적묵은 능히 어짊을 베푸는(능인) 자비와 고요함(적묵)에서 발현되는 지혜를 모두 갖추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불교의 두 축인 자비와 지혜가 구족 했다는 말이다. 예불문에서 삼귀의를 할 때 ‘귀의불 양족존’ 즉 지혜와 자비를 구족 하신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의미가 능인적묵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전각의 명칭에 대웅전 대신 능인전(能仁殿)을 사용하기도 한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졌을 때, 산스크리트어 ‘사끼야무니(Sakyamuni)’를 ‘능인’이라고 의역했다. ‘사끼야’는 ‘능력’을, ‘무니’는 ‘성자’ 또는 ‘침묵’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를 불교적 의미로 보면,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이롭게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바다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건져 (뽑아) 내는, 그러니까 증발(拯拔)하는 분이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증발에서 증(拯)은 건지거나 구원한다는 의미이고, 발(拔)은 뽑거나 빼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능인증발은 고통이나 번뇌의 심연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어(拯) 깨달음의 피안으로 이끄는(拔) 이가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능인증발’은 문맥에 따라 부처님의 힘으로 고통에서 구원받기를 기원하는 발원의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런데 운허스님은 이산혜연선사가 ‘능인증발’이라고 표현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뜻을 가진 구절을 ‘부처님이 이끄시고’라는 짧은 문장으로 번역하셨다. 특히 ‘이끄시고’라는 표현은 부처님을 삼계의 ‘대도사(大導師)’로 일컫는 데서 비롯된 매우 적절한 번역이다. 

불교에서 선우(善友)라는 말은 매우 익숙한 말이다. 문자적 의미로는 착하고 어진 벗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선우에는 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불교에서 좋은 벗이란 단순한 벗의 차원을 넘어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나 바른 도리를 가르쳐 주는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선우는 종종 선지식(善知識)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선지식에는 스승의 의미가, 선우에게는 친구의 의미가 강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에서 선우는 좋은 벗보다는 스승의 의미가 강하다. 덕행(德行)을 갖추었고, 참 진리를 가르쳐 목적지로 이끄는 스승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경(涅槃經)>에서 선우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정의하고 있다. 즉 탐욕이 많은 친구에게 탐욕의 마음을 없게 하며, 성을 많이 내는 친구에게 자비의 마음을 알려서 성내는 것을 고쳐주고, 생각이 많아 들떠있는 친구에게 마음을 안정하게 하며, 어리석은 벗에게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 하여 지혜롭게 하는 이가 선우라는 것이다. 또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는 훌륭한 벗[善知識]은 친구로 하여금 싸움과 다투는 일을 않도록 하며, 나쁜 친구[惡知識를 따르지 못하게 하며,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며, 언제나 세상의 바른 길을 믿고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는 성품이 우둔하지 않고 총명하여 슬기로워 그릇된 사상[惡見]에 떨어지지 않음을 이름하여 첫째가는 선우라 한다고 하였으며, <사분율(四分律)>에서는 선우가 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하기 어려운 일을 해줄 수 있어야 하며, 주기 어려운 걸 줄 수 있어야 하고, 참기 어려운 걸 참을 수 있어야 하며, 비밀스러운 일을 서로 알려야 하고, 덮어줄 건 서로 덮어 감춰주어야 하며, 괴로움을 당할 때 버리지 않아야 하고, 빈천(貧賤)하다고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당연히 이와 같은 선우를 만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선우가 되기 또한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선우를 가진 친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운허스님은 이런 선우를 ‘보살님’으로 옮기셨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이 갖고 있는 각별한 의미를 생각한다면, 선우를 보살로 번역한 것은 탁월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아무려나, 보살과 같은 선우와 ‘제휴(提携)’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든든할 것인가. 제휴란 큰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손잡고 협력하는 것이다. 제휴는 끌 제(提) 자와 끌 휴(携) 자의 조합으로 ‘함께 끌어안는다’는 뜻이다. 열반과 해탈의 길을 가는데, 부처님의 이끄심과 보살님의 손길이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큰 뒷배가 어디 또 있겠는가.

심원(深源)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이 매우 깊거나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불교적으로는 ‘깊은 근원’ 또는 ‘근본 원천’을 의미하는데, 모든 존재와 현상의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뿌리를 가리킨다. 수행자가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모든 존재의 상호연관과 공(空)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원효대사 등 불교 사상가들도 심원을 다양한 교리와 논법에서 ‘근본’ 또는 ‘핵심’으로 해석하며, 진리의 귀일(歸一)과 화합, 중생 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으로 보았다. 

이산혜연선사발원문에서 심원은 모든 악행과 악업을 일으키는 번뇌의 깊고 깊은 근원이자 뿌리로 사용되고 있다. 깊고 깊은 번뇌의 근원이자 뿌리를 불보살님의 가호와 지지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운허스님은 ‘고통바다 헤어나서’로 옮겼다. 번뇌로 인해 쌓인 악업으로 쓰리고 아린 윤회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불보살님의 지지를 요청한 것이다. 

운허스님이 ‘열반언덕 가사이다’로 의역한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 원문 ‘도보리지피안(到菩提之彼岸)’은 직역하면 깨달음을 얻어 피안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깨달음 또는 앎의 경지를 일컫는 산스크리트어 ‘bodhi’의 음역이다. 불교에서는 보리를 얻어야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보리는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의 정각을 가리키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나 도(道)를 의미하기도 한다. 

피안에 이른다는 것은 열반의 언덕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열반 성취로 윤회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허스님은 피안에 이르렀다는 원문을 의역해 ‘열반언덕 가사이다’로 옮겼다. 

열반(涅槃)은 갈애로 대표되는 번뇌의 바람이 불기를 멈춘 상태, 번뇌의 불을 불어서 완전히 꺼진 상태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 팔리어로는 닙바나)를 음을 따라 번역한 말이다. 불교에서는 번뇌에 속박된 현상 세계를 차안(此岸: 이 언덕)이라 하고 열반의 세계를 피안(彼岸: 저 언덕)이라고 한다. 열반은 번뇌의 불을 꺼서 깨우침의 지혜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인 상태를 말하는데, 불교의 수행과 최고의 이상향(완성된 깨달음의 세계)을 뜻하며, 불교 실천의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解脫] 있으므로 고요한[寂靜] 것이라 하여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열반적정은 일체개고·제행무상·제법무아와 함께 불교의 근본 교의인 사법인(四法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