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왕켄뽀의 보성론 강의(047)//
강의 : 켄뽀 아왕상뽀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서울 성북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 : 자홍스님 (캄따시링 법회 통역)
교정 : 캄따시링 역경원(지성남, 김지아)
아상가 논사의 탱화
이때까지 공부한 이 논의 흐름을 다시 한번 복습해보자. 불(佛)이 있기에 법(法)이 발생한다. 그리고 법에 의지해서 승(僧)이 발생한다. 승(僧)에 의지하여 우리는 자신의 심상속(心相續)에 내재하는 계(界)·여래장(如來藏)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도(道)를 수습(修習)함으로써 객진(客塵)의 염오(染汚)가 모두 제거되면, 여래장은 보리(菩提)·불(佛)이라 불리게 된다. 이렇게 여기까지 7개의 금강구(金剛句) 중 5가지를 설명했다. 다음부터는 불(佛)에게 어떤 덕(德)이 있는지, 덕에 의지하여 어떠한 부처의 사업(事業)·행(行)이 일어나는지, 7금강구의 나머지 항목을 논의할 것이다.
학생 : 경론을 보다가 '일체법(一切法)은 일미(一味)'라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과 앞서 말씀하신 무분별(無分別)은 같은 의미입니까?
켄뽀 : '일체법(一切法)은 일미(一味, Tib. ro gcigz, Skt. eka-rasa)' 라는 표현은 마하무드라, 즉 대수인(大手印) 관법(觀法)의 수행에서도 등장한다. 희론(戱論)을 떠나 실상이 드러났을 때, 수습(修習)하는 이가 그것에 머물면서 경험하는 바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분별(分別)이라는 용어는 정의가 다양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체법을 일미(一味)로 경험하는 것이 곧 무분별(無分別, Tib. rtog med)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불교 공부를 할 때는, 지금 공부하는 경론의 맥락에서 그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활용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온갖 경론의 해석과 정의를 혼용해서는 안 된다.
『보성론』에서 무분별이라고 할 때는, 모든 분별(分別)의 착란이 멸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명(因明)에서도 분별(分別)과 무분별(無分別)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한다. 인명에서의 분별(分別)은 '공상(共相, Tib. don spyi, Skt. artha-sāmānya)'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이며, 무분별(無分別)은 공상(共相)을 수반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 무분별에는 착란식(錯亂識, Tib. 'khrul pa'i blo)이 있고 비(非) 착란식이 있다. 예를 들어 눈병으로 인해 하늘의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경우, 이 인식은 무분별인 근식(根識)이면서 착란식이다. 달이 두 개로 현현하는 착란식인 근식(根識)에 의해, 의식(意識)은 착란된 방식으로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일미(一味)란 무엇인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라. 부처의 혀에는 특별한 덕이 있으니, 일반인이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부처의 혀가 닿으면 맛있는 음식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음식이 변화한 것이 아니다. 부처의 혀는 좋은 음식도 나쁜 음식도 일미(一味)로 경험한다.
학생 : 자공설(自空說)과 타공설(他空說)에 대해 앞에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의 중관파에도 자공설과 타공설이 있었습니까?
켄뽀 : 샤까 빤디따(sa skya paN+Di ta kun dga' rgyal mtshan, 1182-1251)의 학설에 따르면 인도에는 자공(自空)이나 타공(他空)이라는 용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용어는 없었지만, 공(空)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었기에, 이후 티베트에서 용어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나가르주나의 저술을 티베트에서는 3종으로 구분한다. ①교훈 모음(勸誡集, Tib. gtam tshogs)은 대체로 계율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친우서』 (親友書, Tib. bshes pa'i spring yig, Skt. Suhṛdlekha)는 왕을 훈계하는 내용으로 여기에 속한다. ②중관논리 모음(Tib. dbu ma rigs tshogs)에는 『근본중론송』 등이 속하는데, 여기서는 자공설(自空說)이 나타난다. ③찬송 모음(讚頌, Tib. bstod tshogs)은 심자성(心自性)에 대한 찬탄, 부처에 대한 찬탄,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찬탄 등을 담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찬송 모음에 담긴 가르침은 타공설을 드러내고 있다.
학생 : 법신(法身)을 증득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헌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헌신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켄뽀 : 헌신과 믿음의 길은 자성(自性)을 증득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마하무드라 전통에는 믿음과 헌신이야말로 곧 대수인(大手印)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자신의 스승, 부처, 심자성(心自性)에 의지하여 지극한 믿음과 헌신을 일으킬 때, 마치 눈 위에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듯이, 얼음 위에 뜨거운 물을 붓듯이, 분별이 녹아 사라진다. 마음은 지극히 가볍고 부드럽고 즐거운 상태가 된다.
수행자에게 정말 적이고 원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허망분별이다. 헌신과 믿음이 일어나면 마음 속에서 이러한 분별은 모두 가라앉는다. 마음 속에 단단히 묶여있던 것이 모두 풀어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그리고 설사 이 정도의 경험은 아니더라도, 어떤 이는 스승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아픔이 사라지고 안락한 상태를 한다. 이러한 경험은 직접 자성을 깨달은 것은 아닐지언정, 근접한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분별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더라도, 허망분별의 위력이 조금 감소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학생 : 심원한 견해의 전승과 광대한 행위의 전승, 이 2가지 전승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켄뽀 : 심원한 견해의 전승(Tib. zab mo lta brgyud)은 공성(空性)을 주제로 한다. 그런데 공성을 주제로 한다면 단순히 모든 것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에, 이 법맥에서는 정교한 논리를 통해 공성(空性)을 설명한다. 그리고 가장 광대한 행위의 전승(Tib. rgya chen spyod brgyud)의 경우에는 공성보다는 행(行)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발보리심(發菩提心), 6바라밀과 같은 행이 중요하다.
응아리 뺀첸 빠드마 왕갤(mnga' ris paN chen padma dbang rgyal, 1487-1542)의 『삼율의결정론』 (三律儀決定論, T. sdom gsum rnam nges)에서는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 보살율의(菩薩律儀), 진언율의(眞言律儀)를 차례대로 설명하는데, 보살율의를 설명하면서 심원한 견해의 전승과 광대한 행위의 전승에 관해 논의한다. 이 논에 따르면, 심원한 견해의 전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되고, 이 가르침을 결집한 이는 문수보살이며, 계승한 이는 나가르주나, 즉 용수보살이고, 널리 선양한 이는 쌴띠데와(Skt. Śāntideva, Tib. zhi ba lha, 寂天) 논사이다. 광대한 행위의 전승도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서 기원하며, 이 가르침을 모은 이는 미륵보살이고, 전승한 이는 아상가, 즉 무착 논사이며, 널리 선양한 이는 아띠샤(Atiśa Dīpaṃkara Śrījñāna, 982-1054) 존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는 학자들 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초기에는 외도(外道)들이 아(我)가 존재한다고 집착했기에 심원한 견해의 법맥에서 이를 막았다. 그러나 공(空)이라고 하니 아무 것도 없이 오로지 전무(全無)라고 극단적인 견해에 집착하는 이들이 다시 생겼다. 그래서 이제 광대한 행위의 법맥에서, 여래장(如來藏)과 발보리심하는 보살의 행과 같은 교설을 다소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양변(兩邊)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中道)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한 것이다.
학생 : 마하무드라의 예비수행에서 발보리심(發菩提心)의 귀의대배(歸依大拜) 의궤를 살펴보면, 법신(法身)인 보현여래(普賢如來)게 예경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부처는 보현보살과 관련이 있는지요? 한국불교에서는 보현보살을 대행(大行)의 보살이라고 하는데, 광대한 행위의 전승과 연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켄뽀 : 보통 법신(法身)으로서의 보현여래(普賢如來, Tib. chos sku kun tu bzang po, Skt. Samantabhadra)는 푸른 색 몸에 어떠한 영락도 의복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반적인 보현보살과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마하무드라 예비 수행 중 발보리심(發菩提心)의 귀의대배(歸依大拜) 의궤의 내용은 광대한 행위 법맥의 가르침이 주를 이룬다. 여러분이 지금 주로 보는 약본(略本)의 귀의대배 의궤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광본(廣本)의 의궤에 외(外), 내(內), 비밀(秘密)의 귀의 및 보살계를 수지하는 구절이 있다.
학생 : 법신불(法身佛)은 타공설(他空說)과 관련된 용어입니까?
켄뽀 : 법신불이라는 용어는 대승(大乘) 일반에 사용되며, 중관, 유식, 현교와 밀교의 여러 논에 두루 등장한다. 그러나 법신에 대한 설명은 학파마다 차이가 있다.
학생 : 『보성론』을 공부하며 여래장에 대해서 이해하니 이미 다 부처인데, 그동안 해온 온갖 난행(難行)들이 무의미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켄뽀 : 세속에서는 온갖 난행(難行)과 고행(苦行)을 해도 아무 과(果)가 없을 때도 있다. 또 아무런 고생을 하지 않았는데도 쉽게 결과를 성취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불교 수행에서도 그러할까?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자. 혹자는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음에도 아무런 과(果)를 얻지 못했으며, 비로소 농부의 딸에게서 우유죽을 받아 신체의 건강을 회복하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올바른 삼매를 닦아 성불하였다고 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6년을 허송세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부처께서 성불에 앞서 6년 동안 치열하게 삼매를 수행하지 않으셨다면 과연 이후의 성불이 가능했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불에 앞서 여러 난행(難行)을 통해 공덕을 쌓았고 장애를 정화하였다. 6년의 과정으로 지(止)를 수행함으로써 정학(定學)을 닦았으며, 이로써 견고한 삼매를 성취하였기에, 그 바탕에서 금강좌(金剛座)에 앉아 관(觀)의 삼매를 성취함으로써 성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덕을 쌓고 업장을 정화하며 삼매를 닦는 고행(苦行)과 난행(難行)은 단 하나의 찰나조차 결코 낭비되는 법이 없다. 그 모두가 성불(成佛)에 이르는 바탕이 되며, 고(苦)를 제거하기 위한 인연(因緣)이 된다.
수행의 과정에서 괴로움이 많았음에도 어째서, 세속에서의 수고와 달리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이것으로 인해 심신(心身)이 병들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부처께서는 법을 수습(修習)하는 것에서 즐거움과 열의, 확신을 느끼셨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위력이 있었기에 온갖 난행(難行)들로도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정법(正法)을 공부하고 수행하며 삼매를 닦으면서 인욕하며 난행(難行)하더라도, 확신과 열의로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 병들거나 꺾이는 일은 결코 없다.
그렇다면 부처께서는 공덕을 쌓고 장애를 정화하고 삼매를 닦는 등 경이로운 난행을 통해 성불하셨는데 우리 제자들도 지금 당장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 모두가 그 길을 곧바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부처의 교화 대상인 제자에, 둔근(鈍根)과 이근(利根), 상·중·하의 다양한 근기의 분류가 있다. 부처께서 이미 일체 법문을 다 설해두셨지만, 직접적으로 나에게 법을 가르치시는 선지식이 필요한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어떤 제자에게는 어느 법문이 적합하고 이로운지 판별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성불하기 전의 석가모니불과 같은 최상의 근기와 인연을 지닌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부처님과 동일한 난행을 닦아 성불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지혜와 근기, 인연을 갖추지 못 했음에도 마음이 급해 무리하게 흉내를 낸다면, 티베트의 속담에서 "호랑이가 뛰어 건너는 곳에 여우가 뛰어 건넌다." 라고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호랑이가 뛰어 건너갈 수 있는 곳을 여우가 무리하게 뛰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크게 다치고 말 것이다.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이 무작정 흉내를 내면,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도리어 병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부처께서는 제자 일반에게 고행의 극단과 쾌락에 탐닉하는 극단, 양변(兩邊)에 모두 떨어지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학생 : 여래장은 평등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켄뽀께서는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켄뽀 : 수행을 할 때도 사람마다 다양한 근기의 차별이 있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세간에서는 사람마다 제각기 외모, 재물, 능력, 지능 등이 다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욕을 부리는 일이다. 앞서 말한 속담처럼 호랑이가 넘어가는 곳을 여우가 따라 넘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서 해보면, 여우가 들어가는 곳인데 오히려 호랑이는 들어가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현대에는 평등에 대한 관념이 매우 발전했는데, 각 개인의 역할에 대해 더욱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 : 까규파 법맥의 초기 조사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켄뽀 :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까규파의 초대 조사인 띠로빠(Tib. Ti lo pa, 988-1069)는 인도의 위대한 성취자(Skt. Siddha, Tib. grub thob)이다. 그 제자인 나로빠(Skt. Nāropā, Tib. nA ro pa, 956-1040)는 대(大) 빤디따(Skt. paṇḍita, Tib. mkhas pa, 班智達)라는 존칭이 붙는 분으로, 교학에 정통한 학자였다. 어떤 설에서는 나란다 대학의 학자라고도 하고 또 어떤 전승에서는 위끄라마씨라(Skt. Vikramaśīla, Tib. rnam gnon ngang tshul) 대학의 학승이라고도 한다.
스승인 띠로빠가 나로빠를 지도할 때 경이로운 수준의 난행들을 지시한 일화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나로빠는 스승이 성취자임에 조금도 의심이 없었고, 스승에게서 법맥과 구결(口訣, Tib. man ngag, Skt. upadeśa)을 받으면 현생에 반드시 자신도 깨달음을 이룰 것임을 확신하였다. 여기서는 나로빠 존자의 수행기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하겠다. 오랫동안 스승의 곁에서 온갖 난행을 하고 다양한 가르침을 들었으나, 여전히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 했다고 느낀 나로빠는 스승에게 하소연하였다. 나로빠가 최종적인 구결(口訣)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자, 띠로빠는 고함을 치며 신고 있던 신발을 들어 나로빠의 얼굴을 거세게 가격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로빠에게, 자증(自證)의 지(智)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분별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이니 너에게 따로 말해줄 것은 없고, 오직 네 스스로 알아야 한다! 라고 일갈하였다. 신발에 맞는 순간 나로빠는 정신이 아찔하여 짧게 기절했는데, 정신을 다시 차리는 순간 마침내 법성(法性)을 직접적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이 과정을 설명해보자면, 정신을 잃는 순간 마음의 거친 분별은 모두 멸하게 된다. 이렇게 분별이 멸하는 과정은 심자성(心自性)의 경험과 유사하다. 이 경험이 예시가 되어, 이 예시에 의지하여 법성(法性)을 증득하게 된 것이다. 중국과 한국 불교의 선원(禪院)에서는 입정(入定) 중에 납자가 졸음에 빠지면 입승이 죽비로 어깨를 친다고 알고 있다. 죽비에 맞아 몹시 놀라는 순간도, 나로빠의 경우처럼 깨달음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몹시 놀라는 그 순간 거친 분별념(分別念)들이 잠시 멸(滅)하기 때문이다.
나로빠 존자의 제자가 티베트의 역경사(譯經師, Tib. lo tsA ba)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 존자이다. 마르빠 존자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주요한 제자가 바로 미라래빠(mi la ras pa, 1040-1123)이다. 미라래빠 존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집안이 무척 불우했으며 많은 원수가 있었다. 결국 사술(邪術)을 익혀 서른 다섯 명의 원수를 살해하여 중대한 악업을 지었다. 마르빠는 미라래빠의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해 9층의 탑을 맨몸으로 여러 번 지었다가 무너뜨리는 것을 반복하게 하였다. 지금도 로카(Lhokha) 지역의 로드락(Lhodrak)이라는 곳을 방문하면 미라래빠께서 지으신 9층의 탑을 둘러싼 씨카르 구톡(sras mkhar dgu thog)이라는 사찰이 있다.
미라래빠는 마르빠의 법을 이어 티베트 불교에서 사랑 받는 위대한 성취자가 되었으며, 그 가장 주요한 제자가 의사(醫師) 출신으로 까담빠(Tib. bka' gdams pa) 종파의 승려였던 감뽀빠(sgam po pa bsod nams rin chen, 1079–1153/9) 대사이다. 감뽀빠 대사의 대로부터 까규파는 출가 승원이 건설되고 종파로서 정립이 되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