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제80주기 원폭 희생자 추모일’을 즈음하여 담화문 발표

오늘 우리는 원폭 피해자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희생된 모든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이 순간에도 그 영혼들이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평안히 머물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극 속에 한국인 피해자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전체 피폭자 70만명 중 10%인 7만 명이 당시 조선인이었고 그 대부분은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직격 피해로 히로시마에서 3만 명, 나가사키에서 1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자 중 약 2만 5천 명이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후유증과 빈곤 속에 이들은 고난의 긴 세월을 견뎌야 했습니다. 

피폭 80년을 맞아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는 경남 합천을 찾았습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립니다. 강제징용된 합천 출신자들이 히로시마의 군수공장에 대거 동원되었고, 현재 이곳에만 230여 명의 생존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원폭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참혹한 역사와 그 상처가 여전히 현재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희생자와 후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더 큰 책임과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원폭의 피해는 2, 3세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원폭피해자 2세들의 질병 발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3.4배에서 많게는 89배나 높다고 합니다. 피폭의 폐해는 후손들에게 남아 여전히 이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원폭 피해자들과 후손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실질적인 정책과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2016년 제정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원폭투하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있었던 이들과 그 시기에 태아였던 경우만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피폭 이후 태어난 후손들은 피해자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세, 3세도 원폭 피해자로 인정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원만하게 통과되어 후손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함께 성심을 다해야 합니다. 후손들에 대한 법적 피해자 보장이야말로 굴곡진 역사를 바르게 써 내려가는 시금석입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핵무기의 후유증이 얼마나 참혹하게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우리 모두에게 비핵평화의 중요성과 절박함을 일깨웁니다. 인류가 더 이상 핵의 위협 속에 고통받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기원합니다.

불기2569(2025)년 8월 7일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