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소설가)

(삽화=정윤경 작가)

 감각을 순간순간 응시하라

 바람이 다른 모습으로 모든 방향에서 불어온다.

 어떤 바람은 맑고, 어떤 바람은 먼지를 날리고, 

 어떤 바람은 차고, 어떤 바람은 덥다.

 또 어떤 바람은 광풍으로 거칠게 불고,

 어떤 바람은 미풍으로 부드럽게 분다.

 이와 같이 감각은 즐거운 것으로, 

 혹은 불쾌한 것으로, 혹은 그 중간의 것으로

 육신에서 일어난다.

 바람이 오고 가고, 맑고 먼지를 날리고,

 광풍과 미풍으로 부는 것을 보듯

 그대가 감각을 순간순간 응시할 때,

 그는 참으로 감각을 이해하게 되고,

 감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잡아함경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라

 육신이라는 동굴에 빠져 있는 사람은

 초연해지기가 매우 어렵다.

 끊임없이 쾌락을 탐닉하는 사람은

 자유를 누리기가 어렵고

 타인에 의해서도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오직 자기 의지로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때로 죽음의 자각이 일어나는 것은

 숨을 거두기 직전의 일이다.

 그때야 육신에 깊이 치우쳐 감각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은 중얼거릴 것이다.

 ‘죽은 후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러나 해탈에 이르는 길은

 무엇이 된다는 바람 없이 지금 최선을 다해

 살도록 자신을 닦는 일이다.

 이것 혹은 저것이 되기를 접고

 욕망을 버리며 살라.

 깨인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경험하라.

 그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윤회를 바라지도 않으리라.

                       -숫따니빠다 

 사족; 지난 12월 3일부터 대선 날짜인 6월 3일까지 한 사람의 망상으로 온 나라가 광풍에 휩싸였다. 그래도 나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나의 실존(實存)이라고 생각하며 일상의 여여함(如如)을 지키고자 했다. 나의 본업이자 생업인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감각을 자극하는 대선 뉴스는 나를 유혹하곤 했다. 다행인 것은 집필에 전념하며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방관적인 무관심이 아니라 관심과 집착 너머에서 살펴볼 뿐이었다.

 마당에 나가보니 보라색 자주달개비꽃, 노란 창포꽃이 피었고, 함박꽃은 지고 있다. 연못에는 수련이 피고 지고 있고, 사립문 옆 학처럼 생긴 태산목꽃은 나를 슬쩍 내려다보고 있다. 뒤뜰에는 장미꽃이 나를 거실 화병으로 데려다 달라며 고혹적으로 피어 있고. 이만한 화장세계(華藏世界)라면 산중에서 느끼는 내가 선택한 순간순간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 * *

 선행을 하면 가정이 지켜진다

 시갈라는 두 손을 합장한 채 동서남북과 

 하늘 및 땅을 향해 위아래로 절하고 있었다. 

 그는 악귀를 막기 위해 그런 의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부처님께서 시갈라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런 이상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악귀로부터 

 제 가정을 지키는 행위를 이상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압니다. 부처님께서는 제가 외우는 주문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하지만 저는 이런 의식을 치르면서 아버지께 

 경의를 표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합니다.”

 “시갈라여, 아버지께 경의를 표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은 옳은 일이다. 

 네 가정과 가족을 지키는 것 또한 너의 의무다. 

 나는 네가 아버지를 위해 치르는 의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네가 진정으로 의식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정신적인 아버지로서 말하겠다. 

 신비한 의식으로 너의 가정을 

 지키려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선행을 함으로써 가정을 지켜야 한다.

 선행으로 동쪽에 있는 너의 부모에게, 

 선행으로 남쪽에 있는 너의 스승에게, 

 선행으로 서쪽에 있는 너의 아내에게, 

 선행으로 북쪽에 있는 너의 친구들에게 향해야 한다.

 네 위에 있는 정신을 우러르고, 

 네 아래에서 네게 베푸는 모든 존재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것이 너의 아버지가 바라는 진정한 지킴이며, 

 의식을 치를 때 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시갈라는 자신의 아버지인 양 부처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으나 

 이제는 알겠습니다.”

                          -중아함경

 사족; 자주 회동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지인들을 또 아내와 함께 만났다. 넓게 보면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선행의 울타리 안에는 우정도 들어갈 것 같다. 은강 이남섭 시인, 의정 위승환 동화작가를 만나 식사하고 '위로'라는 특이한 카페에서 차담을 나눈 것이다. 아쉬웠으므로 쌍봉사 안심당에 들러 차담을 더하고 나의 산방 이불재에서 두 분에게 영역본 <광주아리랑>(전 2권)을 선물하고 나서야 헤어졌다. 

 나이 드니 넓게 교유하는 것보다 깊이를 더해가는 만남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 60여 년 전 중2 때 읽었던 톨스토이 대문호의 <인생독본> 가운데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성경>과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