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지 말라

(삽화 정윤경)
아난다는 수부띠에게 마하깟사빠의 출가 이야기만 들은 것은 아니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출가 이야기도 기원정사 시절에 들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붓다보다 먼저 열반에 든 두 장로의 출가 이야기가 너무도 흥미로워서 아난다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바라문 출신들은 집안에서 기도를 많이 한 덕분인지 정진력이 우월했다. 아라한과를 얻는데 짧으면 7일, 길면 14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리뿟따의 원래 이름은 우빠띳사였다.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 우빠띳사였는데, 아버지 방간따가 마을을 이끌어나갈 촌장이 되라고 그렇게 작명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루빠사리였다. 그가 나중에 사리뿟따라고 불린 것은 어머니 이름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쭌다, 우빠세나, 레와따 등 세 명의 남동생과 짤라, 우빠짤라, 시수빠짤라 등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모두 출가하여 수행승으로 살았다.
한편, 목갈라나는 라자가하에서 가까운 꼴리따가마 마을에서 태어났다. 사리뿟따와 태어난 날이 같았다. 그도 역시 출가 전에는 마을 이름과 같이 꼴리따라고 불렸다. 그의 어머니는 목갈리 혹은 목갈라니라고 불렸던 여성 바라문이었고, 아버지는 마을 촌장이었다.
바라문 출신인 우빠띳사와 꼴리따는 동갑내기로서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라자가하 사람들이 벌이는 산정제 축제에 참가했다. 사람들은 광란의 축제에 취해 며칠이고 낮과 밤이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때 두 사람은 문득 백 년 후에도 이 사람들이 살아서 저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순간 두 사람은 무상을 사무치게 느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불사(不死)의 길은 없을까 하고 궁리했다. 불사의 길이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피안으로 건너간 상태(바라밀)’ 즉 해탈을 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불사의 길을 찾고자 집을 떠났다. 그들이 만난 스승은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 벨랏티뿟따였다. 그는 25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250명 중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여 산자야의 수제자 위치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라자가하 거리를 걷고 있던 사리뿟따는 탁발하는 한 수행자의 위의(威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붓다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들은 다섯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앗사지 비구였다. 사리뿟따는 앗사지의 탁발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벗이여, 당신의 모습은 우아하고 당신의 눈빛은 맑게 빛납니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에게 출가하였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벗이여, 사캬족으로서 출가한 위대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고타마 붓다이십니다. 나는 붓다에게 출가하였으며,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붓다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대의 스승께서는 무엇을 설하셨습니까?”
“벗이여, 저는 어리고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법과 계율에 대해서 배움이 짧습니다.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자세히 가르쳐 줄 수 없고 간략한 요지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분 대신 그분의 법을 설해줄 수 없습니까?”
마지못해 앗사지 비구는 사리뿟따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대신 설했다.
모든 법은 인(因)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여래께서는 이 인을 설하시었다.
모든 법의 소멸에 대해서도
위대한 스승께서는 그와 같다고 설하시었다.
수만 겁(劫)을 헤매어도 보지 못하였던
슬픔 없는 이 법구(法句)를 그대들은 깨달았네.
사리뿟따는 목갈라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앗사지 비구에게 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목갈라나도 곧바로 붓다의 가르침을 단박에 이해했다. 목갈라나가 사리뿟따에게 말했다.
“벗이여, 붓다 곁으로 갑시다. 붓다만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그런데 벗이여, 250명의 유행자(遊行者)들이 우리를 의지하며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사정을 알리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합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행자들 중에 대표 한 사람이 말했다.
“저희들은 그대들에게 의지하며 여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만약 그대들이 저 위대한 붓다에게 가서 수행을 하신다면 저희들도 모두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스승이었던 산자야에게도 가서 말했다.
“저희들은 붓다 곁으로 갑니다. 붓다만이 저희들의 스승입니다.”
산자야가 낙심한 채 만류했다.
“안 된다. 가지 마라. 우리 셋이 유행자들을 보살피도록 하자”
그래도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250명의 유행자들을 이끌고 죽림정사를 향해 떠났다. 그 모습을 본 산자야는 그곳에서 붉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에게는 인욕의 바라밀이 없었던 것이다.
아난다는 순간 서늘한 바람 같은 눈길을 느꼈다. 스승 붓다보다 먼저 열반에 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동시에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두 장로는 어떻게 칠엽굴에 왔을까. 아무도 두 장로를 보지 못한 듯했지만 아난다의 느낌은 정확했다. 앞줄에 앉은 두 장로의 눈에서 번뜩 빛이 났던 것이다. 아마도 두 장로는 아난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꿰뚫어 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아난다는 전율이 등골을 훑고 지나가는 듯하여 목을 움츠렸다.
잠시 후 동굴 안에 일렁이는 바람이 아난다를 부드럽게 감쌌다. 물론 아난다가 두 장로를 생각했던 시간은 번갯불 같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난다의 생각이 시공을 넘나들었던 것이다. 아난다는 좀 전과 같이 암송을 다시 시작했다.
<스승 붓다가 말했다.
“수부띠여,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이 경전이 설해질 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품을 갖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여래가 설한 이 최상의 바라밀은 실로 바라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수부띠여, 여래가 최상의 바라밀이라고 설한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깨달으신 분이나,
세존이 또한 설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최상의 바라밀’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또한 수부띠여, 실로 여래에 있어서의
인욕의 바라밀은 실로 바라밀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일찍이 어떤 악왕(惡王)이
나의 몸과 수족에서 살을 도려낸 그때에도
나에게는 자기라는 생각도,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없었으며,
또한 생각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만약 그때 나에게 ‘자기’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면
그때 또한 나에게는 ‘원망하는 생각’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고,
만약에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 개체라는 생각,
개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면 그때에도 나에게는
원망하는 생각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부띠여,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과거세에 오백생 동안
내가 ‘인욕을 설하는 자’라는 이름의 선인(仙人)이었다는 것을,
그때에도 나에게는 자기라는 생각이 없었고,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개체라는 생각이 없었고,
개인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수부띠여,
구도자, 훌륭한 사람들은 일체의 생각을 버리고,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형태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소리나, 냄새나, 감촉이나,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
법(法)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
어떠한 것에도 집착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래는 ‘구도자는 집착하는 마음 없이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리나, 냄새나, 감촉이나,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설했던 것이다.”>
아난다는 여기까지 암송을 하고 잠시 쉬었다. 산자야 곁을 떠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붓다를 만나는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붓다가 저 멀리서 오는 두 사람을 보고서는 말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저기에 오고 있는 두 사람은 꼴리따와 우빠띳사이다. 그들은 가장 뛰어나고 현명한 한 쌍의 제자가 될 것이다.”
14일 후 붓다는 설법할 때 두 사람을 모든 비구제자들 앞에 두었다. 이는 하루라도 교단에 먼저 들어온 자를 윗자리에 앉게 하는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마하깟사빠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고참 비구들이 불평했지만 붓다는 그들을 달랬다. 더 이상 불평이 나오지 않게 이해를 구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