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의 2008년은 종교편향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불교가 한반도에 유입된 이래 정부와의 충돌이 이토록 잦았던 적은 조선시대를 제외하고는 없을 정도로 불교계와 정부는 높디높은 불신의 벽을 쌓았다. 불교계의 4대 요구사항이 거의 대부분 흐지부지되었지만 불교계의 대정부 비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비판이 적어도 민심에 위배되는 방향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불교계 사부대중이 일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라 평가된다. 스스로에 대한 존엄과 가치를 내세운 불교계가 2009년에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길 기대하면서 미디어붓다는 2008년을 장식한 불교계 5대 뉴스를 정리했다.
1. 연이은 종교편향과 범불교도대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던 소망교회 장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에 취임하기도 전부터 불교계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망교회 집사, 권사, 장로들로 구성된 기독교 내각 구성, 목사 출신의 비서관들의 연이은 청와대 입성, 취임 직후 뉴라이트 인사 초청 청와대 예배, 국토해양부의 지도에 전국 사찰 누락, 어청수 경찰청장 부흥회 포스터 등장, 경기여고 교장의 불교문화재 훼손 등 크고 작은 종교편향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고, 지난 7월에는 조계사를 나서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량을 검문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에 불교계는 8월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전국의 20만 불자들이 운집하는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다. 불교계가 정부와 충돌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종일관 불성실한 태도로 불교계의 4대 요구사항을 묵살하다시피 했고, 이는 대구-광주 범불교도대회로 이어졌다. 불교계가 내세운 4대 공약은 대부분 흐지부지된 채 지나가 버렸고, 마지막 남은 하나인 공무원 종교중립법 제정만이 난장판이 된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2. 재가불교운동의 약진
범불교도대회는 불교계에 있어서 외부적 성과보다는 내부의 동력 신장이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불교 사회운동의 역량, 특히 재가불자들의 역량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각 종단의 대표 승려들과 재가 운동가들이 연합한 범불교도대회 추진위원회의 구성, 공직자 종교편향 문제를 조명하면서 연달아 비판 성명을 발표한 참여불교재가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과 교단자정센터, 중앙신도회 종교평화위원회 등이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불교계를 이끄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 박광서 교수, 불교환경연대 정우식 사무처장, 참여불교재가연대 윤남진 사무처장 등 불교계 변방에서 활약하던 재가신도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
중앙신도회의 전법회관 완공 또한 재가불교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3. 불교출판계 기대 넘는 활기
2008년 한 해 불교출판계는 불황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었다. 출판 경기는 교계 안팎을 할 것 없이 불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불교 출판계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전략으로 예상밖 약진을 기록했다.
불광출판부는 올 한 해 17종에 달하는 책을 발간했다. 한 달에 두 권 가까이 책이 쏟아져 나온 셈이다. 공격적 경영에 힘입어 불광출판부의 위상과 대외적 이미지가 제고되었고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다. 운주사도 20종이 넘는 책을 펴냈다. 운주사는 올 한 해 동안 불교계의 정상급 출판사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계종출판사도 불황을 극복하고 종단의 책임출판사로서 입지를 더욱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님들의 단행본을 꾸준히 발간함으로써 수익창출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평가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출판사인 민족사는 왕초보 시리즈의 꾸준한 매출과 함께 연말 일아 스님의 ‘빠알리 경전’이 대박을 기록함으로써 매년 대히트를 기록하는 관록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지난해의 벽암록에 이어 올해 ‘빠알리 경전’이 효자노릇을 하면서 대표 출판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굳건히 했다.
정우서적이나 클리어마인드도 올해가 도약의 발판이 된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불교출판계의 평가다. 불교출판계의 예상밖 활기에 힘입어 불교출판사들은 독자층의 창출과 전문출판사로서의 자부심을 되찾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불광출판부 류지호 주간은 2008년 불교출판계의 예상밖 활기에 대해 “각 출판사의 인적 구성의 변화가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의욕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적극적인 영업과 출판의 양적성장, 흑자경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4.동국대의 추락과 금강대의 희비교차
지난해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동국대는 올 한해 여러 사업에서 연이은 좌절과 실패를 맛보았다. 특히 동국대가 총력을 기울였던 로스쿨이 탈락되면서 현 총장과 이사회에 대한 책임을 또다시 불러일으켰다. 현재 동국대교수회는 오영교 총장의 불신임을 선언한 상태다.
그리고 동국대를 대표하는 불교사업의 하나로 꼽히던 역경원이 실질적으로 폐쇄 절차에 들어가는 등 동국대로서는 여러모로 부진을 면치 못한 한 해였다.
이에 반해 금강대는 80억 예산이 걸린 한 HK사업에 선정되고, 개교 4년만에 첫 고시합격자 배출한 데 이어, 성낙승 총장의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세계 각국의 대학들과 수교를 맺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한 해였다.
조계종과 천태종을 대표하는 종립대학의 희비가 교차하는 2008년이었다.
5. 촛불수배자들의 조계사 피신
쇠고기파동으로 촛불정국이 한참 진행되는 동안 촛불집회를 주동했던 시민운동가들은 경찰의 구속수감을 피해 조계사로 몰려들었다.
그동안 명동성당이 시민운동가들의 성지처럼 조명돼온데 비해 조계사는 시민운동과는 거리가 먼 친정부 보수집단으로 평가돼온 것을 비추어보면 수배자들이 조계사로 몰려든 것은 상당히 쇼킹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는 촛불정국과 비슷한 시기 터져나온 불교계와 정부의 갈등, 보수 성향의 인물로 평가되는 정진석 주교 추기경 임명 등 여러 가지 외부적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조계사는 수개월간 촛불집회 주동자들의 은신처를 내주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집회와 대정부 항의시위가 조계사 인근에서 벌어지는 등 불교계는 시민운동가들의 둥지로 한동안 활용돼왔다.
이 사건은 불교계의 보수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주도적으로 이끈 대중결계 포살법회의 시행, 수경 스님 등 종교지도자들의 대운하 및 4대강 정비사업 반대 시위, 공익기부법인 아름다운동행의 출범 등이 2008년 불교계의 빅 뉴스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