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발원 3

(사진=장명확)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生逢中國 長遇明師)

아라한이 되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범부중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은 업력에 따라 윤회전생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윤회의 길은 쓰리고 아린 고통의 연속이다. 불교의 궁극은 해탈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해탈을 위한 열반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 불제자들의 염원이지만, 열반의 언덕에 이르러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는 것이 어찌 쉬운 길이겠는가. 그러다 보니 열반을 성취하기 이전이라도 좋은 국토, 즉 선처(善處)에 나고자 하는 것이 중생의 염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은 매일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 바른 신심을 세우고, 지혜와 계율을 닦으며,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염원을 갖게 된다. 

생봉중국 장우명사(生逢中國 長遇明師), 즉 좋은 국토에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자 함은 출가 수행자로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서원이다. 이 구절은 특히 출가자와 수행자들이 자신의 수행과 삶의 방향을 다잡는 데 큰 지침이 된다. 따라서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가운데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라는 구절은 매일 좋은 환경과 훌륭한 스승을 만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의 표현이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스승의 가르침을 본받아 수행에 정진하겠다는 자기 다짐이다.

생봉중국(生逢中國)에서 중국은 특정 나라의 명칭이 아니라 바른 나라 또는 좋은 국토를 의미한다. 좋은 국토란 당연히 불법(佛法)이 흥성하여 수행하기 좋은 ‘이상적인 국토’나 ‘바른 가르침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중(中)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중(中)을 단순히 ‘가운데’나 ‘중간’이 아니라,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바른 견해와 진리를 의미한다고 본다. 유(有)와 무(無), 생(生)과 멸(滅) 등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바른 관점을 중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중은 정(正, 바른 것)과 같은 의미로 올바른 견해와 길을 상징한다. 따라서 불교에서 중의 역할은 극단적 쾌락이나 고행 등 양극단을 모두 떠난, 팔정도 등 바른 수행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중국은 좋은 나라, 불법을 만날 수 있는 국토를 의미한다.  

아무려나, 이 구절은 특히 불자들이 다음 생에도 불법을 만나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생봉중국은 보통 장우명사(長遇明師), 즉 길이 밝은 스승을 만나길 원한다는 라는 구절과 함께 하나의 세트로 주로 사용된다. 

불교에서 밝은 스승[明師]의 중요성은 재론이 필요하지 않다. 스승은 깨달음과 수행의 완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며, 제자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진리를 깨닫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특히 불교는 신이나 절대자에 의한 구원이 아닌, 자각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스승은 단순한 안내자가 아니라, 제자가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 절대적 존재로 여겨진다. 불교는 유일신을 믿는 서구 종교와는 다르게, 즉 신과 인간의 주종 관계 대신에 스승과 제자의 수평적 관계를 중시한다. 이는 불교가 자각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스승은 구원자가 아니라 진리로 이끄는 인도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눈 밝은 스승[선지식]을 만나길 발원한다는 의미의 장우명사(長遇明師)는 길 장(長) 만날 우(遇) 밝을 명(明) 스승 사(師)의 한자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로, ‘오래도록 눈 밝은 스승(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들고 배우고 싶다,’는 뜻이다. 이는 또 뛰어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중요하다는 의미도 아울러 담고 있다. 

바른 신심 굳게 내고 아이로서 출가하여(正信出家 童眞入道)

불도를 닦기 위해 처음 마음을 낸 사람은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르고 깊은 믿음을 확고히 하여, 세속의 유혹과 악업을 멀리하고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출가자뿐만 아니라 불자들 모두가 수행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할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이 구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티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수행의 길에 들어서서 청정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강한 서원(誓願)이다.

‘정신출가(正信出家)’란 문자적으로 바른 신심(信心)을 굳게 세워 출가하겠다는 말이다. 세속적인 이유나 강요가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운허스님이 “바른 신심 굳게 내고”라고 옮긴 정신출가는 한국불교의 대표적 수행 지침서 가운데 하나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서도 언급되는 구절이다. 불교에 처음 입문하는 출가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처음 발심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악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하며, 바른 신심(正信)을 굳게 내고[출가] 스스로 경계하며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는 큰 맥락 안에 ‘정신출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바른 신심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법(佛法)에 대한 올곧고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 삿된 견해에 물들지 않고, 이치에 맞는 바른 믿음이다.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출가(出家)는 단순히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출가는 세속적인 욕망과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굳은 결심, 즉 ‘발심(發心)’의 상징적 표현이다.

『초발심자경문』 가운데 ‘자경문’에 “마음속에 사랑을 여읜 것을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한 “출가의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명산을 향하여 가서 묘한 이치를 궁구하되, 가사 한 벌 발우 하나로 인정을 끊어버리고, 배부름과 고픔에 무심하면 도가 자연히 높아진다”고 하였다. ‘발심수행장’에도 “출가는 세속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사문은 마음 가운데 애욕을 떠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계초심학인문’에는 “출가자의 옷차림을 하였어도 출가가 아니고, 세속을 벗어나 산에 살고 모양다리를 갖추어 삭발을 하였다고 하여도 아직은 출가가 아니다. 오직 집착의 집, 삼계에서 벗어나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이것을 일러 참다운 출가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동진입도(童眞入道)는 ‘아이로서’, 즉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童心)을 유지하며 불도(佛道)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세속의 번뇌나 욕심에 물들기 이전에 출가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동진입도는 주로 사찰에서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것을 가리키는데,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상태에서 불법(佛法)을 닦기 시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동진은 주로 불교 용어로 사용되는데, 아직 삭발하지 않은 어린아이, 혹은 사미(沙彌)를 일컫는다. 한대(漢代)의 주요 어휘 사전 중 하나인 『석명(釋名)』에 “아이가 15살이면 동(童)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부연하면 “동(童)이란 독(獨)이니 곧 이성과 접촉이 있기 전까지이다. 7살부터 15살까지를 모두 동이라 하는 것은 음양 이전의 기운인 태화(太和)가 아직 흩어지지 않아 색(色)에 물들지 않는 까닭에 이름하여 동진(童眞)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진입도는 이성과 접촉이 있기 전, 음양 이전의 태화가 아직 흩어지지 않아서 이성에 대한 욕망에 물들지 않았을 때에 불도에 입문하기를 서원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보살의 수행 52단계 중에 ‘십주(十住)’의 여덟 번째 단계인 ‘동진주(童眞住)’를 “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음이 마치 동자가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은 경지”라고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