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본 불교문화(3)

 수원사람 김성채

카츠라야 레에이즈미(桂谷靈泉) 

오래전에 창건된 사찰 “슈젠지”가 있는 마을 이름은 절 이름을 따라서 “슈젠지”로, 시즈오카현을 대표하는 온천마을입니다. 온천마을답게 절 마당에서도 따뜻한 온천물이 솟아납니다.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후 “고보대사의 온천”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현판 뒤에 ‘손을 씻어 번뇌를 털어내라’는 사구게를 걸었습니다.

고보대사의 온천

용의 입으로 손씻기에 알맞은 온도의 온천수가 뿜어나옵니다. 돌 수조에는 음각으로 “봉납(奉納), 천등세(千登世)”가 쓰였습니다.

이수척예(以水滌穢) 세속에서 찌든 더러움을 씻음으로써

당원중생(當願衆生) 마땅히 중생들은

구족정인(具足淨忍) 수행의 어려움 이겨내어 깨끗한 마음을 갖추게 되고 

필경무구(畢竟無垢) 결국에는 번뇌가 없어질 것이다.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어,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사바세계의 때를 씻어내라는 의식을 치르는 곳입니다. 이를 보면서 산사에 도착하자마자 바가지를 들고 몸에 좋다는 약수부터 마실 것이 아니라, 이 같은 절차를 밟는 것이 불법을 배우려는 진정한 마음가짐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큰법당

우리나라는 법당에 모신 불보살님에 따라 대웅전, 극락전 등의 현판을 걸어 놓습니다. 또한 한 칸짜리 집이라도 ○○각(閣)이니, ○○정(亭) 등의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거는데, 슈젠지는 “슈젠지”라는 현판을 걸어놓아서 그냥 큰법당이라고 하겠습니다. 

큰법당은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지면보다 높게 지은 건물입니다. 정면 어칸 앞에 내밀은 처마는 네 개의 기둥으로 받쳐야 할 만큼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큰법당

우리나라 사찰이라면 대웅전쯤 되는데, 현판이 “슈젠지”입니다. 살짝 열어놓은 문 사이를 “정재”함이 가로 막아서 법당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계단 앞에 보시함이 놓였는데, 굵은 글자로 “공덕해(功德海)”를 새겼습니다. 자비심으로 보시한 공덕은 바다같이 넓고 깊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찰에도 그렇게 쓰여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계단을 올라 마주하는 어칸의 미닫이문이 조금 열렸는데,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열려있는 문 사이를 ‘시주님께서 정성스레 보시한 재물은 깨끗한 목적에 사용됩니다’의 뜻을 가진 보시함“정재(淨財)”가 가로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법당에 들어가 상단과 신중단에 참배하는데, 일본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신도의 출입이 제한되는가 싶어졌습니다. 

큰법당 안은 제법 어두운 상태여서 상단에 봉안된 불상이 어느 부처님인지도 모른 채, 문밖에서 합장하고 반배를 올렸습니다. 

수조(水槽)

큰법당 앞 좌우에 큰 수조가 놓였습니다. 

한옥은 처마로 흘러내린 빗물이 땅에 떨어지면서 기둥을 적시고 결국은 기둥을 썩게 할 수 있어서, 서까래와 부연(며느리 서까래)으로 처마를 빼내어 기단 밖으로 길게 내밉니다.

그런데 큰법당은 처마 끝에 물받이 홈통을 놓고, 빗물이 홈통을 타고 내려 수조에 담기도록 한 것입니다. 각각의 수조에 시인이 읊었을 듯한 글자가 양각되어 있습니다. 

수조에는 빗물이 베푸는 아름다움을 나타낸 글귀가 양각으로 쓰였습니다.

기둥에는 산문에서 본 “입춘대길, 진방화촉”을 똑같이 붙였습니다. 

우윤천산(雨潤千山) 비가 천 개의 산을 적신다.

천수장불개(天水長不個) 줄기차게 내리는 비도 그치게 된다.

청동으로 제작된 두 개의 수조를 보는데, 화마를 쫓아내기 위해 우리나라 궁궐 월대에 비치한 청동 드므가 오버 랩 되었습니다.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

절 마당 한편에 육환장을 짚고 선 지장보살 입상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지장보살은 중생이 구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고, 중생들의 무거운 죄와 장애를 없애줘 현재의 세계에서 편안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큰 신통력을 지닌 지장보살의 가슴에 아기들이나 하는 빨간 턱받이가 둘려졌습니다. 

지장보살 입상

지장보살은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처럼 중생을 외아들 보듯 보면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곳에 머물겠다고 한 보살입니다.

예전부터 일본에서는 아기가 죽으면 아기가 쓰던 턱받이를 지장보살상에 걸치며 ‘아기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라고 청원해 왔다고 합니다. 모든 중생 구제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원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많은 보살들에게‘모든 중생은 외아들처럼 귀하고, 모두 다 불성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지장보살은 빨간 턱받이를 걸어주지 않아도 일찍 죽은 아기들을 극락세계에서 받아주셨을 겁니다. 

지장보살이 두른 빨간 턱받이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참혹한 슬픔과 절망을 덜어주고, 어머니는 아기가 극락세계에서 탈 없이 잘 지낸다는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였을 겁니다.

고보대사(弘法大師) 공양 시주 모집

높은 기단 위에 한 스님이 오른손에는 육환장을 들고, 염주를 감은 왼손에는 바리때를 들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슈젠지를 창건한 스님 고보대사 입상입니다. 일본어 ‘고보’는 한자로 쓰면 ‘홍법(弘法)’으로 불법을 널리 폈다는 뜻입니다. 진언종을 창시하고, 불법을 널리 포교함으로써 일본 백성들의 삶에 끼친 큰 공로를 인정하여 왕이 내린 시호입니다. 

고보대사 입상

옆에 늘어세운 깃발에는 ‘변조금강 고보대사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의 “나무대사변조금강(南無大師遍照金剛)”이 쓰였습니다. 변조금강은 고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갔을 때 스승에게 받은 법호입니다. 일본인들은 고보대사를 불교문화는 당연하고 사상가, 교육가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목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대사를 참배하기 위하여, 유달산에 고보대사 마애상을 조각해 놓은 것을 보아도 숭배하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깃발 앞에 안내판은 시주를 모집하는 내용인데, 어떤 공양을 하려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16나한상

한 건물에 어떤 고인의 장례식을 안내하는 간소한 안내판이 걸려 있어, 사찰의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 건물 기단 좌측과 우측에 각각 8위의 석조 나한상을 모셨습니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로, 모든 번뇌를 끊어서 생사윤회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으며, 공양받을 자격을 갖춘 분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사찰의 나한전과 응진전 등에 봉안되어 조석으로 예경을 받고 계신 성인입니다. 

16아라한
 

16아라한

16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실 때, 무상법을 잘 보호해서 사라지지 않게 할 것을 부촉 받았고, 시주자들이 과보를 얻을 수 있도록 복전이 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처님께서 남기신 뜻을 소중히 여겨, 성스러운 위엄을 보인다거나 엄숙한 태도를 짓지 않고 드러냄 없는 편안한 자세로 공양을 받으시고, 큰 과보를 베풀면서 공경을 받습니다.

슈젠지의 나한 석상은 참선하거나 예불하는 모습도 있지만, 중생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이웃집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들이 애완동물과 가까이 지내듯 호랑이며 사자와 용을 쓰다듬어주는 모습도 있습니다. 법당 안에 봉안된 나한상과 다른, 야외에 자유롭게 표현된 나한의 모습을 보면서 중생들 곁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고, 이익을 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젠지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찰이 화려한 단청과 닫집 등으로 장엄하는 것과 다르게 일본 사찰은 소박하고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불자는 물론 대중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 가까이 접근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불교에 대하여 공부한 적이 없어서, 잘못된 내용도 진실인 양 썼을 겁니다. 읽어주심에 감사드리고, 간나미박물관과 슈젠지 절의 여러 가지 모습에 그릇된 표현을 했다면 이제야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