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 스님 기조연설(사진=대한불교조계종 미래본부 선명상팀)

 ‘한국 전통명상과 공교육의 미래’

오늘의 국제컨퍼런스는 단순한 학술교류를 넘어, 문명의 긴박한 변화, AI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교육의 본질과 미래를 새롭게 성찰하는 자리이다. 전 세계의 아동과 청소년이 불안과 우울의 확산, 디지털 중독, 관계 단절 등 공통의 심리·사회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교육계 전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학생들의 정서적 어려움, 교사들의 번아웃과 피로 누적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은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시대의 네이티브로 살아가고 있다. AI가 지식과 정보를 대신 처리하는 시대, 인간 고유의 가치는 무엇이며 교육은 무엇을 길러주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질문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성숙은 여전히 시간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현실을 더욱 심각하다. 치열한 경쟁 중심의 학업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성적과 입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 자살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불안과 우울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충동적 행동과 관계 갈등이 증가하고, 교사들의 심리적 소진 또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이게 근본적은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이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어갈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이제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이번 컨퍼런스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실천적 답을 찾고자 마련됐다. 오늘 우리는 아동 청소년의 마음 건강 위기에 대응하고, 급격히 변화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의 전통명상과 현대과학, 교육학이 만나는 새로운 접점을 세계와 공유하고자 한다. 이 논의는 문화와 종교, 지역의 경계를 넘어 동서양 명상교육의 성과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각국 교육계가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통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한국불교 명상의 전통은 특정종교의 교리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이해와 심리적 성찰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 전통은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온 마음의 과학이자, 현대교육이 지향해야 할 심리적 웰빙과 관계적 회복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행전통은 이제 과학적 연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리처드 데이비슨 교수 연구에 따르면, 8주간의 마음챙김 훈련이 전전두엽의 활성도를 높이고 면역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애미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의 연구 또한 명상이 집중력과 주의 조절, 정서적 안정, 회복 탄력성, 그리고 전반적인 웰빙을 향상시킨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수행전통의 핵심에는 ‘선(禪)’ 곧 선명상(禪瞑想)이 있다. 선명상은 출가수행자만의 길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고, 지금 이순간 마음의 평화를 찾는 모든 이의 길이다. 이 전통의 근저에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이 흐르고 있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깨달음이다. 이는 곧 우리 학생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가족과 교사, 친구들, 그리고 사회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로 이어진다. 연기의 가르침에서 ‘무자성(無自性)’의 이해가 나온다. 모든 것은 고정된 본질 없이 관계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깨달음은, 학생들이 실패와 좌절 앞에서도 자신을 고정된 틀에 가두지 않고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이해는 ‘고(苦)’의 본질을 꿰뚫게 한다. 괴로움은 변화하는 현상을 고정된 것으로 집착할 때 생겨난다는 통찰이다. 경쟁과 성적에 대한 집착, 비교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이다. 나아가 ‘공(空)’의 가르침은 모든 현상이 실체없이 인연 따라 일어남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는 옭아매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창의성과 유연성의 토대가 된다.

이 모든 가르침은 ‘중도(中道)’로 수렴된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찾는 지혜, 경쟁과 협력 개인과 공동체, 성취와 과정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이 모든 깨달음의 꽃은 ‘자비(慈悲)’이다. 자비는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이며, 이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도 상통한다. 현대과학 또한 자비명상이 공감능력과 친사회적 행동을 강화하고, 정서적 안정과 관계 만족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현대 교육이 지향하는 인성교육과 사회정서학습(SEL)의 철학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즉 감정을 인식하고 스스로 다스리는 힘은 자기관리의 토대가 되며, 타인과의 연결성을 깨닫는 마음은 배려와 협력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또한 집중과 통찰의 훈련은 학습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나아가 ‘이 몸과 마음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성찰은 획일적인 경쟁 교육 속에서 학생들이 고정된 평가와 비교의 틀에서 벗어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가능성을 발견하며 창의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힘이 된다.

따라서 한국의 수행전통을 더 이상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대교육의 위기를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이자, 과학적으로 검증된 교육 자원으로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물론 명상교육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다. 교육현장이 제약,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명상이 심리적 회복과 관계의 회복, 그리고 교육의 인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저희는 교사연수, 학생 맞춤형 교재 개발 등 구체적인 실천을 이미 시작했다. 향후에도 명상교육이 효과를 지속적으로 검증하며, 종교·가치 중립적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의 마음 정원을 주도적으로 가꾸고 관계 속에서 삶을 배우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명상은 아동과 청소년의 정서적 어려움을 완화하고, 교사의 번아웃을 경감하며, 공통체의 분열을 치유하는 힘을 지닌다. 따라서 명상을 선택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교육이 반드시 포용해야 할 보편적 교육 자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미 미국 유럽 호주 등 다문화 사회에서도 종교와 가치로부터 분리된 마음챙김 기반 명상교육(MBME)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의 선명상 전통은 깊이 있는 내면 성찰과 관계 회복의 지혜를 세계 교육 담론 속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독자적 모델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실에서 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교사가 소진으로 교단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교실에서 아이가 분노를 느낄 때 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교사가 수업 전 짧은 명상을 통해 집중을 되찾으며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학교는 다시금 생명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상이 아니다.

천년의 지혜와 21세기 과학이 만나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 이미 세계 수많은 학교에서 실현되고 있는 변화이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깊은 전통과 더 절실한 과제, 그리고 더 큰 책임이 있다.

선명상은 지금 여기 우리 교실에서 필요한 ‘생명의 교육’이다. 선명상은 종교를 넘어 교육과 사회를 향한 보편적 자원이다. AI디지털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적 통찰을 제공해준다. ‘깨어나는 교육, 연결되는 우리’의 비전을 모든 분들과 함께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