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본 불교문화
수원사람 김성채
가족과 일본 시즈오카를 여행하던 중, 가까운 곳에 불상(佛像)박물관과 사찰(슈젠지 修禪寺)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기회라는 것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아니면 언제 일본 사찰을 볼 수 있겠나?’라는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간나미불상박물관》, 위치는 시즈오카현 타가타군 간나미초 구와하라(静岡県 田方郡 函南町 桑原)입니다.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은 헤이안시대와 가마쿠라시대에 제작된 불상입니다.
헤이안시대는 왕이 통치하던 시대(794년~1185년)로 쿄토(京都)를 수도로 삼았고, 한반도에는 통일신라의 후기부터 고려의 중기쯤이 됩니다.
가마쿠라시대(1185년~1333년)는 헤이안시대 말기에 이곳저곳에서 귀족들의 반란이 계속되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무사 계급이 국가의 실권을 장악하고, 쇼군 정치가 이루어진 시대입니다. 한반도에는 우리나라 고려의 중기쯤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고, 원나라의 간섭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가마쿠라시대는 내란이 끊임없이 벌어졌던 센코쿠(戰國)시대,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유지된 에도시대로 이어집니다.
굳이 일본의 시대 역사를 말씀드리는 것은 박물관에 전시된 불상의 제작연대를 참고하시면 흥미를 느끼실 수 있을듯한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불상과 석탑 등의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지 못해, ‘고려 중기’라거나 ‘조선 초기’라 표기합니다. 불상의 경우 복장(몸통)에 넣은 불상 조성 이유와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스님과 불자들의 염원을 담은 발원문으로 제작 시기와 개금 불사한 내력 등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소장한 불상의 제작연대를 박물관이 ‘연도’로 표기하고, ‘시대’로 표기한 것은 복장유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장유물이 없는 것은 일본에 지진이라는 잦은 재해와 쇼군에 의한 막부시대가 600여 년이 되는 만큼 많은 전란으로 사라졌으리라고 짐작합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통일을 추진할 때, 저항하던 정토종파인 혼간지(本願寺)가 항복하였음에도 사찰을 불태웠고 산림을 봉쇄한 후 승려는 물론 주민까지도 참혹하게 학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센코쿠시대에 쿄토에 있던 혼노지(本能寺)의 불타는 모습을 재현한 그림
안내문에 따르면 박물관이 세워진 곳의 구와하라 주민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불상의 분실을 염려하여 수거하고, 보존하기 위해 폐사한 절(초겐지 長源寺)터에 약사당(藥師堂)을 짓습니다. 이는 불심이 깊은 주민들뿐 아니라 산골 동네 지역민들이 불상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는 믿음과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때문입니다. 또한 불상 훼손이 불자들에게 ‘부처님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 불상이 숭배와 공경의 대상이고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구와하라 주민들은 자신들이 정성을 다해 보존하면서도 불상이 후대까지 잘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2008년 간나미초(函南町)에 불상을 기증하고, 간나미초는 이곳에 박물관을 건립하게 됩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불상은 24점으로 모두 목조불상입니다.
약사여래좌상(시즈오카현 지정 유형문화재)
연화좌 없이 결가부좌에 오른손은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을 취했고, 왼손에는 중생의 온갖 질병과 번뇌를 치료하는 약함을 받쳐 들었습니다. 이런 자세를 보고 우리들은 이 불상이 약사여래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수리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솟아올랐고, 나발이 돌려졌습니다. 목둘레에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셨음을 표현한 삼도가 뚜렷합니다.
반듯하게 정면을 향한 얼굴에 살짝 뜬 눈은 멀리 있는 무엇인가를 집중하는 듯한데, 우리나라의 많은 불상이 자비심을 담긴 눈으로 중생을 내려다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싶습니다. 이마 중간에 백호, 육계와 나발 사이에 머리 장식인 계주는 조각되지 않았습니다.
눈썹과 코와 입술의 윤곽을 뚜렷하게 나타냈는데, 비자나무의 재질 때문인지 대의의 접힘이 얕아도 옷의 접히고 늘어진 층이 명확해서 아름다웠습니다. 약사여래 불상을 빚은 나무의 본래 색깔은 살색으로, 부처님의 상호 중 몸 전체가 금빛을 띤다는 특징을 나타내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의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광대뼈 주변에 나이테 중심을 놓았고, 오른손 손바닥은 나이테가 손가락 끝으로 퍼져나가게 조각하였습니다. 이는 나무의 자연스러움과 따뜻함을 살려냄으로써 부처님의 큰 자비심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약사여래좌상이 헤이안시대에 제작되었으니 짧으면 840년, 길면 1,230년이나 보존된 셈이 됩니다. 우리나라 불모들이 목불상을 제작하면서 제작 당시의 모습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게 금박으로 개금하였음을 생각하면, 이곳 약사여래좌상을 빚어낸 비자나무는 해충이 갉아 먹지 않는 나무이거나 특별한 처리 방법을 행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을 보면 동방 정유리세계에 일광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이 약사여래의 정법창고를 지키고 있다고 쓰였습니다. 박물관에서 두 보살의 불상을 볼 수 없어서, 사라졌든가 또는 이곳에서 협시는 못하더라도 어디인가에 봉안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이지신상(시즈오카현 지정 유형문화재)
용맹스러운 장수들이 태권도의 여러 품새 형태로 자세를 취했습니다. 머리에 쓴 보관도 서로 다르고, 어깨며 가슴이며 배와 발목을 감싼 갑옷도 마찬가지로 다릅니다. 험상궂은 얼굴도 부족했는지, 미간에 굵은 주름을 깊게 새겨서 치솟은 분노가 보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목조 십이신장입상
‘사천왕인가?’ 싶었는데 비파와 검이며 탑 등의 지물을 들고 있지 않으니, 사천왕도 아닙니다. 머리에 쓴 보관 앞에 장식된 쥐, 토끼, 뱀, 호랑이 등을 보고서야 십이지신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찰 외벽에 그려진 벽화나 탑에 조각된 십이지신상과는 전혀 다른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십이지신상은 몸통은 사람이지만 머리만 동물인 모양에 갑옷을 입었고, 이곳 신상은 사람의 몸과 얼굴을 그대로 지닌 채 갑옷을 입었습니다. 보관 위쪽에 동물을 장식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십이지신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러 사찰을 답사하면서 볼 수 없었던 신장상을 보면서, 색다른 불교문화여서 신기했습니다.
약사경을 보면 열두 야차대장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악업의 결과로 다시 태어나는 고통스러운 세계의 공포가 없어졌다며, 목숨을 다할 때까지 불법승에 귀의하고, 중생들을 책임지고 안락하게 하겠다’라는 맹세를 합니다. 그러고는 약사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십이지신상이 보면서, 이곳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들이 예전에 약사여래를 본존불로 모시는 큰 사찰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약사여래의 보살행 시절에 세운 열두 가지 큰 서원이 ‘중생의 질병을 치유하고 고통을 소멸시키겠다’는 내용인데, 이를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십이지신이 실행에 옮기는 때문입니다.
따라서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쥐거나 허리께에 붙이고, 윽박지르며 위세를 떨치는 자세를 취한 것은 잘못된 길에 빠진 중생을 건져내고, 악귀 등의 악한 존재들로부터 구해내고자 하는 방편일 뿐입니다.
아미타불좌상(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아미타불좌상은 여러 겹의 연꽃잎이 위를 떠받치는 연화좌에 결가부좌를 취한 불상입니다. 결가부좌는 같지만 약사여래는 오른발을 먼저 접은 후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다리 위에 올리는 항마좌를 취하였고, 아미타여래는 왼발을 먼저 접은 후 오른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올리는 길상좌를 취하였습니다. 또 다른 점이라면 수인인데 약사여래는 시무외인을, 아미타여래는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에 내려트린 하품상생인을 취하였습니다.
아미타여래좌상
하품상생인은 악을 참회하고, 공덕을 쌓은 중생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선지식을 만나 염불을 들음으로 인하여, 생사의 죄가 없어지고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보내준다는 수인입니다. 가마쿠라시대는 나라 안에서는 내란이 잦았고, 나라 밖으로부터는 원나라(몽고)가 고려를 정복한 후 바다를 건너 침입할 때입니다.
이런 지경에 아미타여래의 하품상생인은 중생에게 고난을 벗어나게 하는 힘과 극락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사여래 불상과 아미타여래 불상 모두 양쪽 어깨를 덮는 통견을 취했고, 겹치며 흘러내림의 표현도 거의 같은 모양으로 조각되었습니다.
아미타여래의 눈썹 사이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백호를 구슬로 나타냈습니다.
특별하다면 약사여래좌상은 제작 당시부터 재질이 나무임을 보여주려는 듯 개금하지 않았고, 아미타불좌상은 개금한 금박이 대부분 벗겨져 바탕의 옻칠이 검게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골이 깊거나 굴곡진 부분에만 금박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리된 것은 19세기 이전이라고 짐작됩니다.
구와하라 주민들이 흩어져 있는 불상을 모아서 약사당에 봉안한 기간은 100여 년이나 되는데, 불상이 규모가 큰 사찰에 봉안되었다면 스님과 불자들에 의하여 개금불사가 이루어졌을 겁니다. 이와 반대로 주민들이 불상을 모아서 관리하지 않았다면 분실되어 사라졌거나 크게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아미타여래 불상을 보면서 ‘세상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원인(因)과 조건(緣)에 따라 이루어지고 사라진다’는 부처님의 말씀 “인연”이 다시금 생각났습니다.(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