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장명확)

1. 연재를 시작하며

이른 아침마다 당진 상왕산 아래에 위치한 필자의 집 현묘재에는 이산혜연(怡山慧然) 선사의 발원문이 울려 퍼진다. 낭랑한 스님의 목청으로 전해지는 내용도 운율도 훌륭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선사의 발원문을 경청하노라면 저절로 환희심이 일어난다. 그 환해지는 마음이 어찌 사람만의 몫이랴. 동살에 깨어나는 산천초목 두두물물이 산 기스락 대숲을 흔드는 바람결에 실려 온 발원문을 들으며 두 팔 벌려 흔들며 솟는 감흥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세상에 이렇게 감동스럽고 아름다우며 멋들어진 발원문이 있다니! 불가(佛家)와 처음 인연을 맺은 후부터 40여 년 넘게 들어온 발원문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다. 줄기는커녕 들을수록 커지고 마음은 편안해지며, 부지불식간 삶은 태도까지 다잡게 되는 건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리라.  

불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산혜연, 즉 이산교연(怡山皎然) 선사의 발원문에서 큰 감동과 신심을 일으킨다. 출가해서 구도의 길을 걷는 스님들은 물론이고, 재가에서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도, 그리고 설사 불자가 아니더라도 선사의 발원문을 경청한 이라면 누구든지 예외 없이 마음이 너그러워질 것이다. 아직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문을 접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꼭 이 발원문을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누구든 이내 감동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니…. 

불교학자들은 이산혜연 선사를 ‘이산교연, 장생교연, 이산연’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불자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산혜연 선사가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며 친근하게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니 이 글에서는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통일해 표기하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산교연선사의 발원문은 우리나라의 불자들에게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더 친숙하다. 이 발원문은 아마도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자주 독송하는 발원문일 것이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은 여전히 한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불교계에서 매우 이례적 이게도 오래전부터 우리말로 옮겨져 독송되어 왔다. 이 모두가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위대한 고승이자 역경사인 운허 큰스님 덕분이다. 운허 큰스님의 아름다운 번역이 있었기에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은 원문보다 더 빛나게 마음에 와닿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스님들이 이 발원문을 암송하며 각자의 원력을 가다듬고 정진을 다짐하는 것은 오롯이 운허 큰스님의 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운허 큰스님께서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시기는 해인사 강원 초대 강주를 맡았던, 강원이 설립된 1955년에서 1기 졸업생 지관·월운·홍법스님 등 3명의 제자를 배출한 1957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운허 큰스님은 아마도 갓 출가해 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을 지도하면서 이들에게 평생의 지남(指南)이 될 내용을 완벽하게 갖춘 이 발원문의 번역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은 <치문경훈(緇門警訓)> 제8장 원문(願文) 편에 실려 있는데, 두루 알다시피 <치문경훈>은 불문(佛門)에 들어온 초심 수행자를 위한 옛 어른들의 경책과 교훈을 모은 책이다. 예비 스님인 사미·사미니는 경전이나 어록보다도 먼저 이 <치문경훈>을 공부하면서 어른 스님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길뿐만 아니라, 난자(難字)가 가득한 한문으로 된 불서(佛書)를 읽고 공부하기 위한 기본기를 다져 나간다.

운허스님의 빼어난 번역으로 한층 그 의미와 깊이, 또한 글맛까지 크게 향상된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은 매일 새벽 해인사 강원의 학인스님들이 아침 예불시간에 암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주로 독송된 발원문은 ‘나옹화상 발원문’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오직 해인사에서만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이 독송되었다. 그러나 국내 최대가람인 해인사의 막강한 영향력과 언제 들어도 신심과 원력을 불러일으키는 한글번역으로 재탄생한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자체가 가진 위력은 오래지 않아 이 발원문이 전국의 스님과 불자들에게 확산되는 바탕이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산혜연 선사가 바로 이 발원문의 실제 저자인지가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그의 생애와 사상 또한 제대로 명확하게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산혜연 선사는 720년경 태어나서 793~798년 사이에 입적한 당나라 때의 선승으로 추정된다. 선승이지만 유불도(儒佛道)는 물론 불교의 여러 종파를 걸림 없이 넘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사의 성은 사(謝)씨이고 이름은 청주(清晝)이다. 사령운(謝靈運, 385~433)의 10세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령운은 산수(山水)를 노래한 시인이자 문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문필가였다. 그는 속세를 등지고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의 백련결사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너무 마음이 번잡하다는 이유로 결사대중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산혜연 선사는 수행승으로서의 탈속한 삶, 검박함의 체화뿐만 아니라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견줄만한 걸출한 시승(詩僧)으로도 평가된다. 여기에 하나 더, 이산혜연 선사는 다도(茶道)에도 조예가 깊어서 훗날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육우(陸羽, 733~804)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산혜연 선사가 태어나 자란 곳은 절강성 호주(湖州) 장성(長城) 지방이다.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강흥(江興) 지역인데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유년시절부터 도(道)와 더불어 지낼 만큼 특별했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전생부터의 숙연 덕에 어린나이에 영은사(靈隱寺)로 출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수직(守直) 율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삭발했으며 특별히 계율 공부에 매진했다. 이는 이산혜연 선사의 발원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바른 신심 굳게 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이산혜연 선사는 특히 시에 마음을 기울여 삶과 세상을 맑은 감성으로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문장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당시 불가의 뛰어난 법기로 불릴 정도였다. 그래서 선종사(禪宗史)에 길이 빛날 여러 조사들의 비문이 그의 언어를 빌어 탄생하기도 했다. 

중년이 되자 그는 여러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친견하고 문답을 나누면서 마침내 마음 법문을 깨달았다. 무구산의 원호(元浩), 회계의 영철(靈澈) 선사는 그와 도를 교류했던 대표적인 스님들이다. 그가 호주(湖州) 태호(太湖) 호수 자락에 있는 저산(杼山)의 묘희사(妙喜寺)에서 지낼 때 명필로 유명한 호주자사 안진경(顔眞卿, 709~785)을 비롯해 황보증(皇甫曾, ?~?)·유장경(劉長卿, 709~780)·유우석(劉禹錫, 772~842)·이단(李端, 737~784) 등 여러 명사이자 문학가와 어울려 지냈다. 이 시기에 이산혜연 선사는 육우(陸羽, 733~804)와 만나게 된다. 육우는 태어나자마자 호수 주변에 버려졌지만, 서탑사(西塔寺)의 지적(智積) 선사가 핏덩이인 그를 발견하고 차 심부름 하는 다동(茶童)으로 키웠다. 그에게 자신의 속가 성인 육씨(陸氏) 성을 준 것도 지적 선사였다. 그렇게 어린 육우는 지적 선사 슬하에서 차와 인연을 맺으며 자랐다.  

육우는 안록산의 난을 피해 강남땅으로 와서 술과 벗하며 은자로 살던 중 묘희사에서 14살 연상의 이산혜연 선사를 만나게 되었다. 육우는 이산혜연 선사와 교류하면서 술 대신 차로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차와 시학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이산혜연 선사가 차 밭을 가꾸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차나무의 생육과 차의 제조 과정 등을 배우고 터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은 이후 40여 년 동안 승속(僧俗)의 구분과 나이 차를 잊고 지내는 아름다운 친구이자 도반이 되었다. 이산혜연 선사가 쓴 ‘다결(茶訣)’은 산실 되어 전해지지 않지만, 시집 ‘교연집(皎然集)’(10권)은 남아 지금도 세상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렇게 이산혜연 선사는 선과 시와 차에 조예가 깊었던 분이다, 그가 시론에 대해 쓴 ‘시식(詩式)’은 중국 고대시론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선사이자, 시인이며, 차인이기도 했던 이산혜연 선사.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선사의 마음은 그의 발원문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발원문 구조는 크게 삼보에 대한 귀의, 무명의 물결 따라 지은 각종 죄업에 대한 참회, 불보살님의 가피로 불법을 만나 좋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바람, 청정 범행을 닦고, 불법을 배우고 수행정진하며, 온 생명을 구제하는 보살의 길을 걷는 것으로 회향하는 순서로 짜여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분한다면, ▲귀의 ▲참회 ▲발원 ▲출가 ▲생명보호 ▲설법 ▲제도 ▲중생이익 ▲종지성취 등이다. 

이산혜연 선사의 자비로운 마음은 발원문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아프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다가서서 약이 되고 쌀이 될 것을 간절히 발원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연민의 마음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로 확대되어 나아가며 끝없이 전개된다. 그리하여 날아다니는 조류나 기어 다니는 짐승들까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대승정신이 절절하게 배어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발원문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아침 예불 시 발원을 올리는 예불 발원문의 원형으로 자리 잡은 까닭이기도 하다. 

출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이산혜연 선사의 발원문으로 하루를 여는 재가의 불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발원문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표본이 되는 최고의 발원문! 필자는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의 구구절절들이 담고 있는 대승보살로서의 의미를 샅샅이 더듬어 뒤지고 찾아보며 그 행간에 깃든 선한 의도(意圖)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 여행에 동행해 주실 것을 독자들께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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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혜연선사 발원문 <전문>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 살펴 주옵소서.

저희들이 참된 성품 등지옵고 무명 속에 뛰어들어 나고 죽는 물결 따라 빛과 소리 물이 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 보고 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 지어 잘못된 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 남을 집착하고 그른 길만 찾아다녀 여러 생에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 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 세상에 명과 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 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 바른 신심 굳게 내고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 중생 사랑하여 이내 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 하리. 삼재팔난 만나 잖고 불법인연 구족하여 반야지혜 드러나고 보살마음 견고하야 제불정법 잘 배워서 대승진리 깨달은 뒤 육바라밀 행을 닦아 아승지겁 뛰어넘고 곳곳마다 설법으로 천겁만겁 의심 끊고 마군중을 항복받고 삼보를 잇사올제 시방제불 섬기는 일 잠깐인들 쉬오리까.

온갖 법문 다 배워서 모다 통달하옵거든 복과 지혜 함께 늘어 무량중생 제도하며 여섯 가지 신통 얻고 무생법인 이룬 뒤에 관음보살 대자비로 시방법계 다니면서 보현보살 행원으로 많은 중생 건지올 제 여러 갈래 몸을 나퉈 미묘 법문 연설하고 지옥아귀 나쁜 곳엔 광명 놓고 신통보여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보리마음 모두 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 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쌘 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 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 새와 기는 짐승 원수 맺고 빚진 이들 갖은 고통 벗어나서 좋은 복락 누려지다.

모진 질병 돌 적 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되 여러 중생 이익한 일 한 가진 들 빼 오리까.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 거나 친한 이나 이 세상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얽히었던 애정 끊고 삼계고해 뛰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다 성불하사이다.

허공 끝이 있사온들 이내 소원 다 하리까.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종지 이루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