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작가에게 전도몽상이란 무엇인가?
정찬주(소설가)
이불재 마당은 잡초들의 해방구이다.
잔디밭 가꾸기를 포기했더니 풀밭이 됐다.
그런데 잡초들이 자연의 선물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3, 4월은 민들레꽃밭, 5월이 되니 토끼풀꽃밭이 됐다.
자연이 나에게 멋진 꽃밭을 선사하고 있다.
의도대로 틀을 만들려는 잔디밭 관리가 공자적이라면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은 노자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처님다운 것일까?
민들레꽃이든 토끼풀꽃이든 다듬어진 잔디밭이든
그것의 생로병사를 보고 무상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직역하면 ‘전도몽상 하지 않는다면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다.
전도몽상이란 거꾸로 생각하고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반야심경>의 결론 부분으로 전도몽상의 반대말은
팔정도 가운데 정견(正見)이 아닐까 싶다.
정견의 삶을 순간순간 순일하게 지속한다면
그 자체가 전도몽상이 사라진 해탈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 말씀은 소설가에게는
푸른 하늘에서 뜬금없이 떨어지는 날벼락과 같다.
소설가란 다분히 몽상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이다.
전도몽상의 전문가를 작가라 할 수 있다.
소설이란 등장인물들 간에 시비와 갈등의 이야기다.
시비와 갈등구조가 없다면 소설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도몽상은 소설 속에서, 혹은 현실 속에서
인생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하는 가치가 있다.
측은하고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인연의 고리와 윤회의 업을 반추하게 한다.
깊이를 알 수 없으므로 인생은 불가해한 무늬를 갖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몽상은 정견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비약이다. 그런 생각 자체가 전도몽상이다.
그런데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도리가 있다.
번뇌와 보리가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문법도 있다.
이것을 서양철학에서는 등가물(等價物)이라고 한다.
작가에게 혹은 소설에서 언어란 무엇일까?
핑계이겠지만 나는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기에
굳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오늘 아침에 나에게 있어서 언어란 무엇인지
의혹이 불쑥 일어나 곰곰이 사유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언어란 작품을 완성하는 도구로써의 언어를 말한다.
혹은 그럴 때 언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말하기도 한다.
습작기를 떠올려보니 그때의 언어는 내 정신을 표현하는
제의적인 느낌마저 드는 도구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언어를 대할 때 몹시 엄정, 엄중, 엄숙했고
내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듯하다.
글을 쓰기 전에는 두 손을 반드시 씻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언어는 내 나름 지향하는 정신세계이자
철학이자 도덕적인 것까지도 내포됐던 것 같다.
언어로써 이름을 파는 매명, 광고 같은 행위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늘의 나는 어떤가? 그때의 그림자가 얹혀 있기는 하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많이 지나쳐와버린 것 같다.
내 작품을 공개된 장소에서,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염치없이 자랑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또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면 공범자처럼 방조해주었다.
물론 영리를 추구하는 출판사는 생존을 위해서,
혹은 불특정한 대중을 상대로 과대포장 내지는
선동적인 홍보행위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로서 염치를 버리면 격조와는 거리가 먼 막장으로 가는데
지금 내가 그쯤에 서 있는지도 몰라 소름이 오싹 돋는다.
다른 작가들의 몰염치는 보면서 혀를 쯧쯧 찼으면서도
내 몰염치는 망각하기도 하고 방관해버린 것이다.
언어가 나를 구속한다고 느낄 때는 놓아버리고 살 생각이지만
왜 이제야 되돌아보는지 한심하기도 하다.
60을 넘고 70에 도달했으니 늦어도 많이 늦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의 이 불온한 의혹이 행운이란 생각도 든다.
불가의 불이문법을 빌리자면 번뇌가 보리다.
돌아가자. 산죽 이파리처럼 닿으면 살이 베일 것처럼
날카롭던 그 풋풋한 시절로 정신만이라도 돌아가자.
달빛과 이슬이 내리던 눈부신 영혼의 뜰로 돌아가자.
몸을 곧 던질 것처럼 보여 더 영롱해진 풀잎 끝의 이슬처럼 살자.
몇몇의 동업자끼리라도 염치를 탁마하면서 살자.
이것이 작가로서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