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떻게 세상에 오시게 되었을까?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부처님! 인간 세계도 육도윤회 중에 하나인데, 어떤 업을 지으셨기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라는 당돌한 질문을 드리고 싶다.

 

  대부분의 불교 경전은 부처님과 제자 또는 설법자와 신행자의 ‘문답問答’ 형식으로 전개된다. 『관무량수경』에는 (아들 아사세 태자에 의해 위폐된) 위데휘 부인이 더 이상 살기 싫다며 극락을 보여 달라는 대목에서 “부처님, 제가 전생에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같은 악독한 아들은 두게 되었나요. 부처님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데바닷타와 같은 사촌을 두게 되었나요?”라는 자못 드센 질문을 만난다. 이외, 금강경에도 세존이 하신 말씀에 대해 “부처님, 이 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는 중생들이 과연 있겠나요?”라는 수보리의 직설이 나온다. 꾸밈없는 솔직한 질문과 이에 대한 성스러운 답변이 오가는 것이 대승 경전의  특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그분의 전생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해서 오시게 되었는가.

 

나는 아무 때 아무개로서 나서 아무 곳에서 삶을 거두었다. 한 번의 삶, 두 번의 삶, 세 번의 삶, 네 번의 삶 … 백 번의 삶, 십만 번의 삶 …, 나는 수많은 전생의 일들을 기억해 냈다. 세상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고 또 개변했던 시대를 기억해 냈다. 아무 때 아무 곳에서 나의 이름은 아무개였고, 나의 가족은 이러했고, 나의 모습, 나의 길, 모두 그러저러한 것이었다. 그러저러한 선과 악을 경험한 끝에 급기야 아무개로서 아무 곳에서 삶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의 삶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삶으로 이어졌다. 다시금 내가 있게 되고 내 이름은 이러저러했으며 내 가족은 저러했고, 내 나라, 내 일, 내 모습은 각각 그러저러했다. 갖가지 선과 악을 경험한 끝에 급기야 아무 때 아무 곳에서 삶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의 삶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삶으로 이어졌다.
                                                        -싯다르타 태자, 전생을 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큰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자신의 전생을 보는 대목이다. “아무 곳에서 아무개의 이름으로,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태어나 있네”(『불소행찬』 제14)라며, 백번 천번 만번의 나고 죽음을 훤히 여실하게 꿰뚫어 보시게 된다. 생사生死를 무한하게 반복하는 광경!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룸비니 동산 둘러보기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한 수행지, 성도지, 설법지 등 주요 성지들은 대부분 현재 인도 지역에 위치한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와 유년 시절을 보낸 카필라성은 네팔 땅에 구획되어서 석가모니 성지를 모두 둘러보려면, 인도와 네팔 사이의 국경을 필히 넘나들어야 한다. 룸비니 동산은 네팔 남동부 지역의 테라이 평원에 위치한다. 탄생지 룸비니의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양 옆으로 판차실라(pañca-śīla), 즉 5계(五戒)를 새긴 커다란 돌 조각 2개를 만나게 된다. 왼쪽에는 힌디어로 5계가 쓰여 있고(도판01), 오른쪽에는 영어로 쓰여 있다.  

 

나는 지킵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을 것을.
나는 지킵니다. 주지 않은 것을 훔치지 않을 것을.
나는 지킵니다. 부정한 성행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나는 지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을.
나는 지킵니다. 혼미하게 만드는 술이나 약물을 마시지 않을 것을.
 
                                 -「판차실라」룸비니 성지 입구의 면돌에 새겨진 오계-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5계를 보면서 들어오게 되고 또 나가게 된다. 즉, 이런 것들을 한 사람은 이 성역에 들어오지 말거나 또는 적어도 여기를 방문했다면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뜻임을 알겠다. 사찰 입구에서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 대신에, 부처님 탄생지를 지키는 차원에서 또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차원에서 ‘5계’를 새겨 넣었다. 진입로에는 저수지 늪이 있어 이곳이 물이 많은 윤택한 평원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평지를 따라 걷는데 노랑 분홍 꽃들이 만발하다. 방문 시기가 11월 말 겨울인데도 습한 기운과 아름다운 꽃들이 아스라이 우리를 맞아준다.

 

 

 

 “World Heritage Site LUMBINI(세계문화유산 유적지 룸비니)”’라고 새겨진, 유네스코 공식 표지판을 지나, 성지 한 가운데로 들어오면 마야데비(Mayadevi) 사원과 푸스카르니Puskarni 연못(구룡못)을 드디어 만난다. 하얀 벽의 마야데비 사원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 장면을 조각한 부조가 있는데,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찍을 수 없었다. 탄생 부조는 마모가 심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른 팔을 들고 있는 마야부인과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아기 부처님, 그리고 이를 받으려 하는 하녀의 골격이 남아 있어 윤곽으로나마 탄생 장면을 유추할 수 있다.

 

 

 

 

 마야부인이 무우수 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무심코 이를 꺾으려고 팔을 들자, 그 옆구리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이다. 무우수의 ‘무우無憂’는 ‘근심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는 산스크리트(고대 인도어) ‘아소카’에서 유래한다. 아〔無:없다〕와 소카〔憂:근심〕를 번역한 것으로 아소카나무라고도 부른다. 룸비니 성역 안에는 후대에 심은 무우수나무가 있는데, 풍성한 나뭇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월 팔일, 어느 화창한 봄날. 주홍빛 꽃송이 만발한 아름드리 초록 그늘 아래에서 탄생했을 아기 부처님! 2천 5백 년 전, 바로 그 역사적 순간의 현장에 서있다.

 

 

 

 

  2.〔불교미술〕탄생 장엄의 조각상

 

  글 첫머리의 ‘석가모니 전생’에 대한 필자의 우문愚問에 대한, 경전 상의 현답賢答을 찾아보자. 『불종성경佛種姓經』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디팡카라의 수기授記’ 내용이 나온다. 이는 ‘연등불의 수기’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디팡카라Dipaṃkara 붓다’는 대표적 과거불로서 의역하면 연등불燃燈佛 또는 정광불定光佛이 된다. 음역하여 제화갈라라고도 한다. ‘수기授記’란, 이미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특정 수행자에게 ‘앞으로 그대도 부처가 될 것’이라고 증언해주는 것이다. 미래의 증과證果, 즉 깨달음에 대해 미리 예언하는 것이다. 초기경전의 대표적 수기 내용으로는, 석가모니 전생에 연등불에게 수기 받는 것과 미륵이 석가모니에게 수기 받는 것이 있다. 또 대승경전에서는 아미타부처님의 전신인 법장비구가 세자재왕불에게 ‘미래에 아미타불이 될 것’이라고 수기 받는 것,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사리불에 수기를 주는 것 등이 있다. 
 

 

  수메다의 염원
  석가모니 부처님은 전생에 ‘수메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제였다. 수메다는 선혜善慧비구 또는 무구광無垢光이라고도 번역되어 경전에 나타난다. 수메다는 수억의 돈과 무진장의 곡식을 쌓아 놓은 큰 부자였다. 또 학문에도 통달한 학자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어느 날 고요히 않아 있다가 “나는 이 몸을 버리고 가야겠다!”라고 결심한다. 그리고 “수 백 억의 재산을 연고가 있는 자와 연고가 없는 자에게 모두 주어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갔다.”라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똥 속에 빠진 자가 물로 가득한 연못을 보고도 그 연못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연못의 잘못이 아니다. 적들에게 포위당한 자가 빠져나갈 길을 발견하고도 그 길로 도망가지 않으면, 그것은 길의 잘못이 아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보고도 병의 치유를 의사에게 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사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의 목에 시체가 걸려 있는데도 그것을 혐오하여 벗어버리지 않는 다면, 그는 즐겁고 자유자재로 울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몸을 버리고 가야겠다.”라고 하신다. 여기서 언급된 ‘나의 이 몸’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근본무명, 윤회를 거듭하게 하는 ‘아상我相’을 말한다.

 

 

 

  <수메다와 디팡카라 붓다> 부조상浮彫像
  어느 날 디팡카라 붓다가 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메다는 “지금 씨앗을 심자.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라며 큰 기쁨이 일어난다. 그리고 디팡카라 붓다를 위해 길을 청소한다. 그런데 청소가 마침 다 끝내기도 전에 디팡카라 붓다가 이미 도착해 버렸다. 이에 수메다는 청소가 끝나지 않은 길에서 붓다의 발이 더럽혀 질까봐, 얼른 머리를 풀어서 펼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붓다께서는 저를 밝고 가소서. 진흙일랑 밟지 마소서.” 바로 이 장면은 초기 불교미술의 단골 주제로 무수하게 조형된다.

 <수메다와 디팡카라 붓다(Megha and the Buddha Dipaṃkara)> 부조상에는, 디팡카라 붓다가 마을로 들어서자 천신과 마을 사람들이 환영 나온 모습이 조각되었다. 붓다의 출현으로 인해 매우 기쁘고 흥분된 분위기임이다. 이들은 한 손에는 향가루가 든 병과 다른 손에는 연꽃 봉우리를 들어 공양을 올리고 있다. 이 부조상에는 수메다가 세 번에 걸쳐 조각되었다.

 

  먼저 가운데 꼭대기에 합장을 하며 머리 숙여 디팡카라 붓다를 경배하는 장면이 있고, 두 번째는 붓다 바로 앞에서 꽃과 향을 뿌리며 공양을 하고 있다. 제법 나이가 진득하니 든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세 번째는 상투 머리를 풀어서 긴 타래머리를 디팡카라 붓다 발 아래에 펼쳐놓고 몸을 엎드리고 있다. 붓다는 바닥에 풀어놓은 수메다의 머리카락을 밟고 있고, 수메다는 붓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엎드린 수메다의 모습에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는, 그의 간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땅에 엎어져 있는 수메다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오늘 나는 기원한다. 나의 번뇌가 모두 타서 없어지기를! 이 상태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기서 법을 증득하여 그것으로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얻어서, 천신을 포함한 세계에서 붓다가 되기를 기원한다. 나 혼자만 겨우 건질 수 있는 힘을 보인다 한들 그것으로 무엇을 하랴. (중략) 나는 모든 것에 대한 앎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을 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자 디팡카라 붓다가 수메다의 머리 옆에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라! (명상을 위해) 앉아라!
잠을 잔다고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화살을 맞아 괴로워하고 고통 받는 사람이
진정 잠이 웬 말이냐?

 

일어나라! (명상을 위해) 앉아라!
고요함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라.
죽음의 왕이 그대들이 게으른 것을 알아
손아귀에 넣어 현혹하지 못하게 하라.

 

신과 인간들이 집착하여 머물고
욕망을 내는 이 집착을 벗어나라!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기회를 놓친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슬퍼한다.

 

주의 깊지 못함은 번뇌의 먼지이다.
번뇌의 먼지는 주의 깊지 못함에서 일어난다.
깨어 있음에 의해, 지혜에 의해, 자신의 화살을 뽑아라!

 

                            -「정진精進의 경(웃타나-숫따)」, 『숫따니빠따(331-334)』

 

 

 *본 원고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게재권은 미디어붓다에 있으므로, 본 원고를 허락없이 무단으로 원고를 옮겨 전재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에 해당됩니다. 허락없이 원고를 게재하는 일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연재 소개> 부처님의 탄생, 성도, 설법, 열반의 족적을 따라 함께 그 장소를 탐방하면서, 관련 초기 불교미술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 성도하신 보드가야, 최초로 설법하신 사르나트, 정법을 펴신 라지기르,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기거하셨던 쉬라바스티, 열반하신 쿠시나가르, 사리를 모신 바이샬리 사리탑터, 최초 불교대학 나란다 대학 유적지 등 〔1.부처님 성지〕를 필자가 직접 찍어온 현지의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소개합니다. 이와 더불어 무불상시대-간다라-마투라-굽타 양식으로 이어지는 초기〔2.불교미술〕속 해당 주제의 명작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그리고 초기불전 속의 내용을 선별하여 〔3.부처님의 직설〕이라는 소제목으로 실어, 살아 숨 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였습니다.  

 

<필자 소개> 강소연: 중앙승가대학 교수. 조계종 국제위원. 25년간 불교미술품을 조사 연구한 베테랑 학자. (경력)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홍익대 겸임교수, 조선일보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수상) 일본 명예학술상 ‘국화상’ 논문상,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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