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부터 진행해 오던 역경사업이 그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318권째를 발행하면서 한글대장경을 완간하고, 이제 현대와 미래의 불자들을 위하여 보다 편하게 인터넷으로 불교경전 및 사전 등을 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동국역경원 홈페이지에도 토로하듯이 한글대장경은 현대 한국불교의 역경(逆境)을 극복해낸 성공사례에 속한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40여년에 걸친 역경사업 끝에 완간된 한글대장경은 하지만 ‘완간’이지, 결코 ‘완결’되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내용의 구성, 번역의 질, 용어사용의 편재, 대장경 구성의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대장경은 앞으로도 긴 대장정을 통해 새롭게 보완 개선돼야 한다는 점은 모든 불교학도들이 갈망하는 불교계의 큰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한글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을 진행 중인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재콘텐츠연구소가 11월 6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한글대장경의 체제와 구성의 제문제’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세미나는 한글대장경 완결을 위한 후속작업을 검토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한글대장경에 대한 문제점은 주로 동국대 정승석 교수의 발표에서 이루어졌다. ‘한글대장경의 체제와 구성’을 발표한 정 교수는 “한글대장경 조성 과정을 보면 추진기․침체기․활성기․개신기의 네 시기로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데, 한글대장경 간행은 국고지원금이 고갈되며 침체기에 들었다가 국고지원금을 확보하며 활성기를 맞았다”며 “이 과정에서 체제와 구성보다는 국고지원금에 의한 역경사업의 완수라는 결과가 우선시 되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한글대장경 간행은 한국불교의 숙원으로 불교계 자력으로 완결해야 할 것이라 생각됐으나, ‘동국역경원’은 설립당시부터 국고지원을 전제로 하고 있었고 이 의존도가 한글대장경 체제와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는 역경사업과 같은 대불사(大佛事)에 대한 거시적 안목의 부재에 기인했다”고 지적했다.

정승석 교수는 “한글대장경 조성 과정에 재정적 난관이 없었다면 한글대장경은 구판체제로 완간됐을 것”이라며 “이후 국고 지원으로 신판으로 개편된 한글대장경은 침체기를 극복한 일신의 면모는 잘 드러내지만 적어도 체제와 구성은 이 일신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승석 교수는 “신판은 전체 편제보다는 각개 간행본들의 완성에 주력한 점에는 성과를 인정받을만 하지만 역경사업의 효시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구판의 존대를 확인하기 쉽지 않게 되는 납득하기 곤란한 단점도 드러난다”며 “구판으로부터 개편되거나 구판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신판에서도 구판의 존재는 기재되어 있지 않아 구판은 출생의 비밀을 은폐하듯이 사장돼 버렸고, 이는 출판의 상식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정승석 교수는 “구판 136은 1969년 초판이고 1971년에는 3판으로 인쇄됐으나 신판 151로 편제가 바뀌며 초판으로 명기했다. 또한 구판201(지혜와 자비의 말씀, 밀린다왕문경)은 신판에서 1995년 초판으로 명기되었다”고 설명했다. 정승석 교수는 “신판은 대체로 초판을 왜곡한 것은 아닐지라도 구판의 출생 정보를 감추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고 말했다.

정승석 교수는 또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고전 번역은 ‘해제, 본문, 역주’라는 세 범주로 원전의 내용을 구성하며 이 구성은 고전 번역의 전형적이고 필수적인 양식에 속한다”며 “그러나 단행본이 아닌 한글대장경과 같은 방대한 전집인 경우에는 전집의 공통 원칙인 ‘범례’가 반드시 필요하며 여기에 색인도 갖출 때 그 완성도가 공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석 교수는 “한글대장경 구판에 비해 신판은 역주가 현저하게 부각된 편이나 역시 신판에서도 역주는 선택적으로 부기됐다”며 “유가사지론4책과 대지도론5책과 같은 주요논서에는 역주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정승석 교수는 “방대한 전집에서 범례와 색인이 없다는 것은 아직 전체적인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데 한글대장경은 300여 책의 전집이면서도 범례와 색이 없다”며 “내용구성에서 낱권으로써의 일관성은 일정 수준을 유지할지라도 전집으로서의 일관성은 빈약하다”고 말했다.

정승석 교수는 “이는 구성상의 지침이 부실했거나 전체에 걸쳐 통일적으로 적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조성과정의 부침을 고려하면 그 사정을 이해할만 하지만 성전의 위상과 위으를 고려하면 전반적인 재정비가 불가비하다”고 주장했다.

정승석 교수는“한글대장경은 이미 전환과 개신의 시기에 돌입해 있으며 특히 전산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검토했던 문제들이 여실히 드러날 것으로 생각된다”며 “전산화사업은 한글대장경의 정비 및 개편 작업으 일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승석 교수는 “한글대장경도 체제와 구성의 완비를 위해서 ‘범례, 해제, 본문, 역주, 색인’을 갖추어야 할 것이지만 전체에 걸쳐 역주를 작성하는 것은 한글대장경을 재조성하는 것과 같은 새 차원의 역경사업이 된다”며 “현행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전산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선결 작업은 가장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범례설정”이라고 주장했다.

정승석 교수는 또 “낱권마다 색인을 첨부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총 색인으로 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해주 스님은 “한글대장경 전산화 사업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지속될 예정이라 하면 벌써 7년이 지나고 3년이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번역지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논자에게 묻고 싶다”며 “전산화 작업의 진행현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면밀한 보완점의 제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해주 스님은 “한글대장경의 개편 및 전산화 주진에 있어서 개선․보완점의 장을 별도로 설정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한글대장경이 고려대장경의 번역작업이라면 고려대장경의 편재의도에 대한 고민과 구판의 취약점도 살핀 새로운 편재와 권별 수록내용의 재조정 또한 논의의 주요 사항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