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설산에 사는 전설의 독수리들은

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

설산의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

조각난 부리를 떨쳐버리고 다시 솟구쳐 오르는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다.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는 언어가

펜 끝에 머물러, 눈 감고 있을 때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의 두개골이 떠오른다.

-최동호 시인의 수상작 시 ‘히말라야의 독수리들’ 전문

제11회 유심작품상 시부문 수상자에 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과 교수)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히말라야의 독수리들’(문학마당 2012. 가을호). 학술부문 수상자는 박현수 시인(경북대 국문과 교수)이 선정됐으며 수상작은 ‘십현담주해의 언어관과 한용운의 시론’(한국현대문학연구 38집)이다.

유심작품상은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이사장. 조오현)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준 작품을 발표한 문학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한 한국문단의 권위 있는 상이다. 상금은 각 부문 각 2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8월 만해축전 기간 중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제11회 유심작품상 심사위원은 이근배(예술원 회원. 심사위원장), 이가림(시인, 인하대 명예교수), 권영민(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방민호(평론가, 서울대 교수).

시부문 수상작인 최동회 시인의 ‘히말라야의 독수리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독수리의 시학’이라는 평가와 함께 문학평론가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최동호의 시 세계에 주목했다.

학술부문 수상작인 박현수 교수의 ‘십현담주해의 언어관과 한용운의 시론’은 불교적 학설과 현대 시학의 논리를 새롭게 교직하여, 만해 한용운의 언어의식을 한 차원 놓여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다음은 심사평 전문이다.

*심사평- 최동호 시인의 ‘독수리의 시학’

우리 문단의 성실한 중진 문학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최동호 교수가 시인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성취를 이루었음은 그간 간행한 시집들이 여실히 말해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비평가로서의 경력과 위상 때문에, 그의 시작품이 산문적 글쓰기에 길들여진 “평론가의 시”로 지레 짐작 평가돼 온 측면이 없지 않다. 최교수가 1979년 문학평론가로 데뷔하기에 앞서 1976년 시집『황사바람』을 출간함으로써 먼저 시인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런 선입견은 아주 잘못된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빼어난 시인 속에는 또 하나의 예리한 비평가가 자리하고 있으며, 명민한 비평가 속에는 또 하나의 섬세한 감수성의 시인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기에, 시인과 비평가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최교수야말로 매우 바람직한 경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번 유심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시「히말라야의 독수리들」은 최동호 시인이 최근 내놓은 평론집 『디지털 코드와 극서정시』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의 ‘극(極)서정시’의 미학을 잘 살린 대표적 작품이라 하겠다. 가장 신성한 산의 상징인 히말라야 등반 체험에서 그 착상을 얻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시는 소재 면에서만 본다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히말라야 독수리’의 생태적 속성을 시인의 글쓰기 행위의 치열함과 그 고뇌에 결부시켜, ‘쓴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에 대해 근원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성찰케 하는 메타 포엠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현저히 변별적인 것이다.

보들레르가 일찍이 시인을 지상에 유배당한 구름의 왕자, 즉 알바트로스 새에 비유한 바 있는데, 최시인은 그보다 더 처절한 “설산에 머리를 부딪쳐 피에 물든 독수리”를 등장시켜, 시인의 운명과 고독을 서늘하게 그리고 있다. 언어가 “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펜 끝에 머물러” 꽉 막히는 순간, 극한적 절망의 임계점에서 괴로워하는 시인의 모습 묘사는 비장하기 그지없다.

이 같은 “독수리의 시학”은 최시인이 롤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정지용의 “맹금류(猛禽類)의 시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피어린 정신의 고투(苦鬪) 속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극서정시가 태어날 수 있음을 감동적으로 전해주는「히말라야의 독수리들」은 우리의 시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는 시로 유달리 눈에 띄었다.

“명징성, 단순성, 견고성”을 갖춘 극서정시야말로 우리 시가 빠져 있는 미망(迷妄)을 헤쳐 나갈 탈출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최동호 시인의 이론적 대안 제시가 구체적인 시적 실천을 통해 앞으로 더욱 성공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평- 박현수 교수의 ‘한용운의 언어의식’

박현수 교수의 『십현담주해』의 언어관과 한용운의 시론」은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과 그의 『십현담주해』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유기적인 관계를 체계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먼저 『십현담주해』에 나타난 만해 한용운의 언어론이, 첫째, 언어가 그 자체로 근원적인 한계를 가진다는 것, 둘째, 그럼에도 제한적 효용성과 가치를 가진다는 것, 셋째, 기의와 기표가 이상적 조화를 이루는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 등에 있음을 밝혀냈다.

또한 한용운이 이러한 언어론으로부터, 첫째, 시적 언어는 다층적인 기의를 지닌 언어이어야 한다. 둘째, 깨달음의 본체를 전달하기 위한 비유적 표현이 중시되어야 한다. 셋째, 시는 고도로 응축된 사유를 간결한 언어양식으로 표현하며 이에 어울리는 자유로운 형식을 지녀야 한다. 라는 시론을 구축하고 있었음을 밝게 조명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박현수 교수는 불교적 학설과 현대 시학의 논리를 새롭게 교직하여, 만해 한용운의 언어의식을 한 차원 놓여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며, 이를 통하여 시집 『님의 침묵』에 담긴 오묘한 시적 함축을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논문은 만해 한용운의 『십현담주해』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한 바탕 위에서 자신의 견해를 새롭고도 균형감 있게 수립하고, 그러면서도 만해의 언어관과 시 사상에 관한 독창적인 논의를 끌어내고 있어, 그 학술적 성취와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견해다.

*최동호 시인 수상소감

-마지막 관문을 뚫는 용맹정진

1974년 가을 만해 선생이 1918년에 창간한 『유심』지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다. 대학원 석사 논문을 작성하던 시절이다. 그 후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 동안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여타 시인들의 평설을 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번 유심문학상 수상은 나에게 그렇게 보낸 시간에 대해 준엄한 반성을 명령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니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도 느껴진다.

제11회 유심문학상 시부문 수상자 최동호 시인(고려대 국문과 교수)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과연 그 동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시집 『얼음 얼굴』에서 쓴 대로 낙처를 제대로 찾지 못한 떠돌이에게 갑자기 죽비 한 방 등줄기에 얻어맞는 것 같다.

세상은 화창한 봄날인데 백척간두에서 가망 없는 길에 나선 자가 시의 관문을 뚫지 못해 어찌하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잎을 바라보고만 있다.

어둠에 잠긴 새벽 설악산을 향해 엎드려 절하고 면목을 일신하여 앞으로 용맹정진하리라 결심한다.

*박현수 교수 수상소감

내 가진 것과 어울리지 않게 여러 좋은 인연으로 이렇게 의미 있는 상을 받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부끄러움을 가득 안고 이 상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겠다. 상이란 것은 늘 기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준다. 시인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넘고 학자로서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한 지도 십여 년이 넘었지만, 모든 것에 지쳐 시니컬한 인물이 되어갈 때쯤 주어진 이 상은 내게 많은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제11회 유심문학상 학술부문 수상자 박현수 경북대 국문과 교수


나에게는 문학과 학문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간혹 한다. 나의 모든 활동이 문학 활동이다. 이육사가 ‘시를 생각하는 것조차 행동’이라 한 그런 의미에서이다. 그렇다면 내게 문학 활동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시적인 것, 다른 하나는 비-시적인 것이다. 평론과 학문 활동은 후자에 속한다. 이 상은 후자에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수상이란 어떤 의미에서 시선의 모음이자 관심의 매듭이다. 이 상을 계기로 평소 무관심하던 여러 시선이 수상자의 자격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모든 분들에게 과거보다는 나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때는 부끄러움을 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마운 분들 이름은 마음속에 나열하고 손을 맞잡고 감사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