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목 꽃그늘 아래서

                                                   정찬주(소설가)

크게보기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태산목 꽃이 사립문 옆에 피었다. 처음에는 백자사발 같더니 지금은 꽃잎이 벌어져 마치 학 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방문을 나설 때마다 태산목 가지에 몇 마리의 학이 앉아 나를 반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 눈을 맑혀주는 태산목 꽃이다. 봄 가뭄에 고생이 심했던 태산목이라서 그런지 더 귀하게 보인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좀 불행한 일이다. 거기에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아집의 감옥을  경계해야 한다. 모르고 있는 것들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겸손하게 침묵할 때 세상은 비로소 입을 연다. 

 대화 상대로 가장 어려운 사람이란? 자기를 공명정대하다고 착각하는 사람, 자기를 과신하는 사람, 매사를 자기 잣대로 평하는 사람. 상대를 잘 안다면서 자기는 잘 모르는 사람.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집착하는 사람. 자기 잣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약은 예나 지금이나 ‘부처님 말씀’뿐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옛날에 미련하고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무식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웃 부잣집에 갔다가 삼층 누각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웅장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크고 높아 시원스럽게 보였다. 어리석은 부자는 무척 부러워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 재산도 저 사람 것만 못하지 않다. 아직까지 나는 왜 이런 누각을 짓지 않았을까?’ 

 그는 바로 목수를 불렀다.

 “저 누각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누각을 지을 수 있겠소?”

 “저 집은 내가 지은 것입니다.”

 “그러면 곧 저런 누각을 지어 주시오.”

 목수는 곧 땅을 고르고 벽돌을 쌓아 누각을 짓기 시작했다. 벽돌을 쌓아 짓는 것을 지켜보던 부자는 의심이 나서 목수에게 물었다.

 “어떤 집을 지으려는 것이오?”

 “삼층 누각을 짓는 중입니다.”

 그때 이 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래 두 층은 필요 없으니 맨 위층만 지어 주시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래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이층을 지으며 이층을 짓지 않고 어떻게 삼층을 지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런 집을 짓지 못합니다.”

 목수는 그곳을 떠나버렸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부자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이는 마치 삼보를 공경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며 놀기만 하다가 도(道)를 구하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사람이 세상의 비웃음을 받는 것은 누각의 삼층만을 지으려는 어리석은 부자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다.

                                                     ― 『백유경百喩經』

어느 악사가 왕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왕은 그에게 연주의 대가로 돈 천 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연주를 마치자 악사는 왕 앞에 나아가 그 대가를 요구했다. 그러자 왕은 돈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연주한 음악은 내 귀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그것은 네 귀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도 돈을 내놓아라.”

인간의 세계에서나 천상에서 조그마한 즐거움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없어 덧없이 소멸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니 마치 음악소리가 허무한 것과 같다. 

                                                       ― 『백유경百喩經』

 갈무리 생각

 나는 가죽나무를 좀 더 잘 알고 싶어 농부에게 물어보았다. 습도에 강하고 좀이 슬지 않는 나무라고 한다. 목수는 목질이 붉고 단단해서 가구재로 쓰이는 고가의 나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가죽나무를 구해서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경험해 볼 것이다.

 농부는 두 부류가 있다. 입으로 농사짓는 사람과 몸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 입으로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사전’처럼 박식하다. 그러나 막상 농사일이 눈앞에 닥치면 일하는 농부를 의지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두 부류가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서서 살겠는가?

 침묵을 체험하지 않는 이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현학의 유치함과 관념의 오만함을 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침묵뿐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체로 거르지 않는 말은 소음과 배설일 뿐이다. 자기 말이 소음인지 배설인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

 온몸으로 글을 쓰라는 말이 밑도 끝도 없이 와닿는다. 손끝으로 쓰는 글은 물거품이 만들어낸 무지개처럼 곧 사라지지만 온몸으로 쓰는 글은 돌에 새긴 조각처럼 생명이 길다. 비바람의 세월이 돌의 조각을 더 아름답게 빚어 주듯이. 부처님 말씀같이 세월을 이기는 글이 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