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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은 좁지만 집 밖은 한없이 넓다

                                                         정찬주(소설가)

내가 머무는 산방은 쌍봉사 위 산골짜기에 있다.

산중 농부들은 이 좁은 협곡을 바람단지라고 부른다.

바람이 산지사방에서 휘돌아나가는 곳이기에 그렇다.

때문에 겨울에는 평지보다 4도 정도 추운 산자락이다.

내 산방 연못에 얼음이 꽁꽁 언 날에도

50여 미터 아래의 쌍봉사 연못에는 물이 찰랑찰랑 한 것이다.

추위에 약한 아내는 벌써부터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있다.

고향인 서울의 따뜻한 아파트가 몹시 그리울 만도 하다.

나는 <암자로 가는 길> 1권에 52군데의 암자를 순례했는데

법정 스님께서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닌 것처럼 

53군데를 소개하지 그랬냐고 아쉬워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낙향해서 사는 남도 산중의 산방이 

53번째 암자입니다,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쌍봉사를 찾는 노보살님들은 내 산방에 먼저 합장하고

절 경내로 들어가곤 한다. 이 같은 노보살님들의 행동에 대해서 

어느 날 법정 스님께서 또 가정방문을 오셨을 때 말씀드리자,

그러니까 더 진실한 글을 써서 보답하라고 당부하셨다.

스님께서는 내 산방에 오시는 것을 꼭 가정방문이라고 하셨다.

누가 보더라도 18평의 내 산방은 작은 암자처럼 보일 터이다.

그래도 나는 내 산방이 작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 산방의 이름은 내가 작명했는데 이불재(耳佛齋)이다.

상량문에 ‘솔바람에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루리’라고 썼다.

자연의 소리로 깨달음을 이루겠다며 발원하는 마음을 새겼지만

몰록 2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어느 새 그 뜻도 깊어진 듯하다.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으로 바뀌었으니

소아(小我)에서 대아(大我)의 공간으로 진화했다고나 할까. 

나는 차 한 잔 우려 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생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도 싶다.

송순이 노년에 살았던 면앙정(俛仰亭)을 노래한 시조가 있다. 

면앙이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草廬)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가진 것이 정자 하나였던 그가 궁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벗 삼아 살았던 마음부자 같다.

요즘 집이 화두이지만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문제다.

우리에게 주기만 하는 자연은 영원한 공동소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을 멀리하고 집에만 관심이 많다.

자연에서 멀어지면 병원이 가까워진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귀 속의 귀로 들어야 한다.

진각국사는 우주를 희롱하는 다시(茶詩) <인월대>를 남겼다.

보는 순간 흥이 나서 족자 형태로 내 산방의 사랑방에 걸었다.

우뚝 솟은 바위산은 몇 길인지 알 수 없고

그 위 높다란 누대는 하늘 끝에 닿아 있네

북두로 길은 은하수로 밤차를 달이니

차 연기는 싸늘하게 달 속 계수나무를 감싸네.

巖叢屹屹知幾尋

上有高臺接天際

斗酌星河烹夜茶

茶煙冷鎖月中桂

북두칠성으로 은하수를 떠서 밤차를 달이는 경지가 부럽다.

시선(詩仙) 이백의 상상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절창이다. 

세상의 본질이 공(空)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때부터

맑은 바람, 산중 물소리, 둥근 달 같은 색(色)이 친구가 되나 보다.

이 또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도리이다.

공(空)과 색(色)을 통찰하여 삶을 즐기는 구도자의 경지이다. 

그렇다. 집안은 좁지만 집 밖은 한없이 넓다.

어째서 좁은 곳에 눈과 마음을 두고 살려고 하는가?

집 밖은, 벽 너머는 바로 광대무변한 허공이다.

옹졸하게 사느니 호연지기의 삶이 더 멋들어진 인생이 아닌가. 

사람이 입을 다물면 자연이, 우주가 입을 연다고 했다.

자연과 우주가 전하는 내밀한 소리를 듣는 이는 얼마나 행복한가.

부처님이나 노자, 장자는 눈 뜨지 못한 우리 범부와 달리

눈앞에 벽을 허물고 세상과 함께 살았던 마음부자들이 아니었을까?

벽장에 올려놓은 좌복을 다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귀동냥한 지식으로 공(空)을 아는 것은 새우깡을 먹는 것, 

좌복에 앉아 스스로 체득해야만 진짜 새우를 맛보는 것이다. 

나의 어리석은 한 생각이 바뀌면 언행이 바뀌게 되고, 

그리하여 나의 오래된 습관이 바뀌면 운명도 바뀔 테니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