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랑이집   

바람이 불었습니다. 

쌓였던 눈들이 날렸습니다.  

산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군데군데 억새풀밭, 잣나무가 많은 산입니다.

그 구절산 중턱에 은학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땡땡 차고 맑은 늦겨울, 땅거미 내리는 초저녁을 정안 스님은 걷고 있습니다. 모두 합쳐도 십 호도 되지 않는 산골 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은학산 적멸암. 

 마을 앞 표석 앞에서 정안 스님은 걸음을 멈췄습니다. 적막하던 마을이 일시에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컹컹컹.

컹컹컹. 

 그러나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안 스님은 비척비척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짖기 시작한 개들은 끊임없이 짖어댔습니다. 정안 스님은 여러 집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은학산 아래 제일 끝 집, 마을에서는 가장 끝말랑이집에 들어갔습니다. 불이 꺼져 있습니다. 낮은 지붕하고 거의 맞닿은 흙담은 무너진 채였고, 마당에는 아직도 아궁이에 들어가지 못한 가시나무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말라죽은 잡초들이 삐죽삐죽 마른버짐처럼 돋아나 있습니다. 처마의 물받이는 총탄을 맞은 것처럼 삭아 있었고, 도돔한 뜰�悶� 달랑 옆구리가 해진 털신 하나가 죽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폐가나 다름없습니다. 

 정안 스님은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계셔요?”

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방문을 밀었습니다. 

“누구슈?”

 “저어 우리 노스님이......” 

할머니가 마루에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는 정안 스님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주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위이잉.

 위이잉.

 좁은 산 협곡을 타고 내려온 바람 소리는 암자에서만 산 정안 스님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스님, 어디 절에서 왔습니까?”

“월곶 포리암에서요.”

 할머니가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일단 추운데 들어오세요.”

정안 스님은 얼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너무 피곤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혼자 왔습니까?”

정안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구......”

 “우리 노스님께서 가라구 해서......”

 정안 스님은 또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여긴 빈집과 똑같아요.”

정말 방에 불도 넣지 않는지 방바닥이 찼습니다.

“불을 넣어야겠어요.”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신문지로 발라놓은 방벽은 그나마 듬성듬성 흙덩이가 보였고, 낡은 시렁 위엔 꾀죄죄 때가 묻은 이불이 얹혀 있었습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래버린 사진들도 중간이 갈라진 액자 속에 빼곡히 들어있습니다. 정안 스님은 피곤이 몰려오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습니다. 정안 스님은 슬그머니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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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장작을 모두 털어 넣어 불을 때고 있습니다.

“추워서요?”

할머니의 목소리엔 걱정이 묻어있습니다.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노스님 법명이 뭐지요?”

할머니가 느닷없이 물었습니다.

“은학 스님.”

 정안 스님이 간단히 대답하자 할머니가 괜스레 잘 타는 불을 입김으로 불었습니다. 할머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습니다.

“아세요?”

할머니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허둥댔습니다.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애기 스님 저녁 공양 못했지요?”

 “네.”

“바람 소리가 이상해요.”

“나 같은 늙은이 데려갈려구 그러지요.”

 할머니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적게 보아도 80은 족히 될 것 같은 모습입니다. 낡은 쉐에터에 검은 통바지, 작은 귀와 작은 입술, 정안 스님은 할머니가 정말 할미꽃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난 아침이면 내 살을 꼬집어봐요. 벌써 갈 때가 지났는데 눈을 뜨면 항상 여기 이 집이요. 저승사자는 어디서 뭐 하는지 몰라요. 나 같은 늙은이 안 잡아가고.”

밥이 다 되었습니다.

“할머니, 절에서 공부하셨어요?”

말투가 어쩐지 스님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엔 매일 마루를 닦았지요.”

“헤헤헤!”

“흐흐흐!”

정안 스님이 웃자 할머니도 웃었습니다. 방문이 계속 들컹거렸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은 다닥다닥 붙은 검버섯과 잘게 이랑이 진 잔주름들로 가득했습니다. 머리는 영락없는 귀신 모습입니다.

 할머니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제 집 마냥 방안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할머니의 방엔 가구가 없습니다.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이불을 얹어 놓는 조그만 삼단장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얼마나 되었는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혼자 사시나요?”

할머니가 힐끔 정안 스님을 바라봤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랫목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았습니다. 정안 스님이 눈을 자꾸 깜빡거렸습니다.

“옛말에 눈‘깜빡이'는 도둑 아니면 강도라는데? 스님, 도둑질했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할머니가 비죽비죽 웃었습니다.

사실 검은 안경을 써서 아무리 눈을 깜빡거려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늙어서 눈이 멀면 눈치만 빨라져요."

할머니가 또 웃었습니다.

정안 스님도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밥상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빨 빠진 그릇에 가득 담긴 하얀 쌀밥에 반찬은 배추김치와 고들빼기김치가 전부. 

 "오늘은 이것밖에 없어요."

할머니가 싱긋 웃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그야말로 미친 듯 밥을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정안 스님의 밥숫깔에 반찬을 얹어 주었습니다. 

 "할머니는요?"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때야 정안 스님이 물었습니다.

"난 먹었어요. 그 밥 다 먹어야 돼요."

이상하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정안 스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밥을 먹었습니다.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한참 배고픈 차에 밥을 먹어서 목이 탔습니다. 

정안 스님이 웃목에 있는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할머니가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밤새 우는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당을 쓸고 가는 바람에 방문이 들컹거렸습니다.

 “후유!”

정안 스님은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흐흐, 애기 스님이 10년 만에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이우!”

“그러시면 제가 참 반가우시겠어요?”

“남자가 이 방에 들어오기는 한 사오십 년 됐어요. 흐흐!”

“여기서 몇 년 사셨어요?”

“여기서 나고, 여기서 자라고, 여기서 이렇게 늙었어요”

“할머니, 꼭 절에 계셨던 분 같아요."

할머니가 정안 스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자꾸만 흔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등에 받치라고 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주 편안하게 다리를 뻗었습니다.    

“나, 안 무서워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정안 스님의 눈이 할머니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에도 정안 스님은 계속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할머니가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나쁜 버릇.”

그리고는 슬쩍 이불 속으로 손과 발을 들이밀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할머니를 어디선가 본 듯하였습니다. 아슴아슴 기억이 날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할머니가 담배를 하나 빼물었습니다. 할머니가 맛있게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60촉 전구를 타고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천장엔 이곳저곳 쥐들의 흔적이 많았습니다. 낮은 천장 밑 시렁 위에는 아직 실을 뽑지 않은 곶감들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심심하지 않으세요?”

“스님은 심심한가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여태 심심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절 공부를 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 예불을 하고 마당을 쓸고 다시 대웅전에 나가 염불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특별히 책을 본 적도, 그 흔한 텔레비젼을 즐겨본 적도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어머니였고, 아버지였습니다. 시간만 나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학교는 다녀요?”

“네.”

“몇 학년?”

“이제 4학년 돼요.”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요.”

“네.”

할머니가 주섬주섬 웃목에 이불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상한 날이에요.”

“왜요?”

“스님이 오기 전에 깜빡 잠이 들었었는데......”

“꿈꾸셨어요?”

할머니는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피곤할 텐데 자야지요.”

"할머니도 안녕히 주무세요."

"그 안경은 벗고 자야지요."

정안 스님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냥 쓰고 잘래요."

 정안 스님은 짧게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불을 껐습니다.

정안 스님은 아랫목 방문을 향해 누웠고, 할머니는 웃목 방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웠습니다. 밝지는 않았지만 방문을 통해 희미한 빛이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바닥이 따끈한 방에 누웠습니다. 불암사의 겨울이 떠올랐습니다. 몸은 풀어질 대로 풀어졌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머리가 또렷해졌습니다. 아무리 추운 방에서도 몸이 지치면 금방 골아 떨어졌는데.

 산바람이 계속 방문을 때렸습니다.

“할머니는 뭘 하셔요?”

“난 죽으라고 땅을 팠어요.”

“혼자요?“

“혼자 살아야 하는 팔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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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바람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억지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아랫목에서 올라오는 더운 열기가 정안 스님의 지친 몸을 휩싸고 돌았습니다. 노스님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방에 불을 많이 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안 스님은 더운 곳에만 누우면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더우면 이리 올라와요.”

바람소리가 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늦겨울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완전히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검은 안경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정안 스님을 안아 웃목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곯아떨어진 정안 스님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정안 스님의 잠든 얼굴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