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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의 읽는’ 붓다 일대기㊲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6-12 (금) 10:01

이교도 아바야 왕자의 귀의
 
마하비라의 제자 가운데 아바야라는 왕자가 있었다. 아바야 왕자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과 웃제니의 미인이었던 빠두마와띠 사이에서 난 아들이었다. 아자따삿뚜의 이복동생이기도 한 아바야는 마하비라를 따르는 신자였는데, 어느 날 마하비라로부터 사문 고따마를 논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왕자여, 사문 고따마를 논파하라. 그러면 그대에게는 ‘아바야 왕자가 이와 같은 큰 신통력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진 사문 고따마를 논파했다’는 좋은 명성이 뒤따를 것이다.”
“존자시여, 그런데 어떻게 제가 사문 고따마를 논파할 수 있겠습니까?”
“왕자여, 걱정할 것이 없다. 그대는 사문 고따마를 만나러 가라. 가서는 이렇게 말하라.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실 때가 있습니까?’라고. 만일 사문 고따마가 이런 질문을 받고 ‘왕자여,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당신과 범부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범부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또한 사문 고따마가 질문에 대해 ‘왕자여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왜 당신은 데와닷따에 대해 설명하시기를 데와닷따는 악처에 떨어질 것이다. 데와닷따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데와닷따는 겁이 다 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다. 데와닷따는 선도가 될 수 없다’라고 하십니까? 당신의 그 말씀 때문에 데와닷따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라고.”
 
마하비라는 사문 고따마도 이런 양극단의 질문을 받으면 그것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다음날 아바야 왕자는 마하비라가 시키는 대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던 붓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붓다에게 마하비라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될 말에 대해서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만약 세존께서도 그리 하신다면 여느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세존께서 남들이 불쾌하고 싫어할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이미 ‘데와닷따가 사악한 사람이며,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운명에 처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필시 데와닷따에게 심히 불쾌한 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바야 왕자의 질문은 양도(兩刀)논법(딜레마 논법)으로 붓다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한 붓다는 빙긋이 미소 지으며 아바야 왕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에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며 너무 어려서 뒤척이지도 못한 채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기가 아바야 왕자의 무릎에 누워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붓다가 말했다.
 
“왕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대가 소홀히 하거나 유모가 소홀히 한 틈을 타서 그대의 무릎 위에 누운 아이가 어떤 나뭇조각이나 조약돌을 입에 삼킨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그것을 끄집어낼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처음에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서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피가 나더라도 그것을 끄집어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아이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자여, 그런가? 나의 대답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고, 또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것이면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며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알지만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면 그 말을 해줄 바른 시기를 안다. 또한 그 말이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고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면 비록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알면 비록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라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말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알고, 또 그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이면 그 말을 해줄 바른 시기를 안다.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왕자여, 나는 중생들에게 깊은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아바야 왕자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시나브로 아바야 왕자의 표정에는 붓다에 대한 감동과 존경이 어려 있었다. 
 
“아바야 왕자여, 우리 입을 떠난 말은 여러 가지 성격을 띨 수 있다. 그것은 진실이거나 거짓일 수 있고, 유용하거나 혹은 무용할 수도 있고, 남에게 기쁘거나 혹은 불쾌한 것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겠다. 어떤 진술이 거짓이며 무용하고 남에게 불쾌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 아바야,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떤 진술이 사실이지만 무용하며 남에게 불쾌한 것일 때 그것 역시 피할 것이다. 그 말이 진실하며 유용한 것임을 알지만 남을 불쾌하게 하는 것일 때 나는 경우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만일 어떤 진술이 거짓이며 무용하지만 남의 구미에 맞을 때 나는 그런 말을 피한다. 만약 어떤 진술이 진실이지만 무용하며, 그럼에도 남을 유쾌하게 한다면 그 역시 피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진술이 진실하며 유용하고 남들의 마음에 맞는 것일 때, 나는 단언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반복하기도 할 것이다.”
 
아바야는 계속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붓다는 여섯 가지 경우를 언급했을 뿐이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거짓되고 유용하며, 기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한 진술은 어떻습니까?”
“아바야여, 그대는 숫자에 밝구나.”
 
아바야 왕자는 겸연쩍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붓다가 말했다.
 
“그릇된 것이 유용하다고 믿기는 어렵다. 아바야, 내가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듣는 이를 기쁘게 하던 불쾌하게 하던 진실하고 유용한 진술을 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경우에 따라서’라고 하신 것은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진실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까?”
“아바야, 내가 어떤 말을 할 때,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가정 아래 그렇게 진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절대적인 진리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많은 수행자와 바라문들이 수락한 의무와 정의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바야 왕자여, 자신의 의무를 행한다는 것은 매우 고결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 깨달은 게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무라는 고결한 개념은 깨닫지 못한 누군가에 의해 그 자신의 이득을 합리화하는 데 쓰이고, 다수의 타인을 해칠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이 아닌 한, 완벽하게 공평무사한 의무를 집행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나는 의무 수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지 다시 살펴보라는 것이다. 아바야, 나는 많은 것을 염려한다.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키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상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아바야 왕자는 붓다의 인도주의적인 태도를 이해하고, 마하비라의 제자 가운데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한 세 번째 인물이 되었다. 그는 훗날 아버지 빔비사라 왕이 아자따삿뚜에 의해 시해되자 마음이 심란해져 출가하였으며, 붓다의 지도아래 정진한 끝에 아라한이 되었다. 졸지에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떠나버린 아바야 왕자의 어머니 빠두마와띠도 출가한 아들의 설법을 듣고 발심해 출가했고, 피나는 정진 끝에 무애해(無碍解)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재가에 대한 연민을 간직하다
 
세월이 흘러갔고 모든 것은 변하고 있었다. 붓다와 그의 제자들, 그를 외호하고 따랐던 수많은 재가의 제자들도 세월을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다. 생로병사의 엄격한 과정, 무상의 이치는 아라한이라고 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붓다는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었다. 그 무렵 기원정사 상가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수닷따 장자가 병이 들어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다. 고통을 감내하던 수닷따 장자가 한 사람을 불러 말했다.
 
“여보게, 그대는 세존을 찾아뵙도록 하게. 세존을 뵙고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고, ‘세존이시여, 수닷따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득이 제가 장자를 대신하여 세존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문안을 여쭙게.”
 
신심 가득한 수닷따는 중병으로 거동이 어렵게 되자 사람을 시켜 대신 붓다께 문안을 올리도록 당부한 것이었다. 수닷따 장자는 당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를 찾아뵙게. 존자님을 뵙고 내 이름으로 사리뿟따 존자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리고, ‘존자시여, 수닷따 장자가 중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사리뿟따 존자의 발에 머리 조아려 절을 올립니다.’라고 문안을 여쭙게.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려주게.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연민을 일으키시어 수닷따 장자의 거처를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수닷따 장자의 중병 소식을 들은 붓다는 탁발을 나선 길에 따로 틈을 내어 수닷따 장자의 집을 방문하였다. 예고하지 않은 붓다의 방문에 수닷따 장자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붓다가 만류하며 우선 병세를 물었다.
 
“수닷따, 병세는 어떤가? 고통은 견딜 만한가? 더 나빠지지는 않는가?”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수닷따 장자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런 수닷따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던 붓다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수닷따, 두려워하지 말라. 평소 삼보를 믿지 않고 계율을 실천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마친 뒤의 일을 두려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라자가하의 한림에서 나를 처음 만난 뒤, 삼보에 귀의하고 청정한 계율을 성취하였다. 또 많은 재물을 이웃과 상가에 보시하여 큰 공덕을 지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붓다는 수닷따 장자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붓다의 위로를 받은 장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비록 아팠지만 기쁜 마음으로 붓다께 공양 올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붓다가 문병을 다녀간 다음날 아난다와 사리뿟따 장로가 차례로 수닷따 장자의 집을 찾아와 장자의 상태를 살피고 위로했다. 수닷따 장자의 집을 찾은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다.
 
“장자여, 좀 어떻습니까? 견딜만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진정되거나 더하지는 않습니까? 차도는 좀 있습니까. 혹시 더 심해지지는 않습니까?”
“존자시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예리한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좀처럼 가라앉질 않습니다. 고통의 강도는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시여, 마치 힘센 사람이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개듯이 거센 바람이 제 머리를 내리칩니다.”
 
수닷따 장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했다. 사리뿟따는 장자의 고통을 나눌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장자를 위한 짤막한 법문을 설했다.
 
“장자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는 눈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눈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귀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나는 코를 취착하지 않으리라. 나는 혀, 몸, 의식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나의 알음알이는 귀, 코, 혀, 몸, 의식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런 다음에는 장자여. 눈과 귀, 코, 혀, 몸, 의식의 알음알이에 취착하지 않고, 형색을 취착하지 않음으로써 형색에 의지하지 않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에 취착하지 않으리라고 공부를 지으며, 육근의 알음알이에 취착하지 않음으로써 육근의 감각접촉에 의지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공부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며, 그 느낌을 취착하지 않으리라, 공부를 지어가야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초연한 태도의 중요성과 감각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육근, 육경, 육식의 세계와 잘못 접촉하게 되면 삼사라(윤회)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법했다. 그러자 이 설법을 들은 수닷따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수닷따 장자의 눈물을 본 아난다 존자가 당황한 듯 물었다.
 
“장자여, 무슨 일입니까?”
“아난다 존자님, 전 오랫동안 세존과 명상하는 비구들의 시중을 들었지만 지금 사리뿟따 존자께서 해주신 이런 법문은 처음 듣습니다. 그것이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이 흐릅니다.”
 
이때 사리뿟따가 말했다.
 
“장자여, 이 가르침은 재가수행자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생활을 떠난 출가 수행자에게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수닷따 장자가 말했다.
 
“사리뿟따 장로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흰 옷을 입은 재가자도 당연히 그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도 깨달음을 얻을 만큼 근기가 높고, 욕망이 거의 남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닙바나(열반)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수닷따 장자는 이렇게 재가자들에게도 담마의 진수를 전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재가자에 대한 연민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리뿟따와 아난다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 후 수닷따 장자는 그날 밤 생을 마감했다. 그는 오직 일곱 번의 생만 남은 냇물에 들어간 자로서 하늘세계에 태어났다. 하늘세계에 태어난 후 천신의 몸으로 기원정사에 나타난 수닷따 장자는 세존께 절하고 자신을 제도해준 스승에게 보은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이곳이 바로 제따 숲
선인(善人)의 상가가 머물고
법왕(法王)께서 거주하시니
내게 희열이 생기는 곳이라.
 
의도적 행위와 명지(明知)가 있고
법과 계행과 최상의 삶이 있으니,
이것으로 인간들은 청정해질 뿐
결코 가문과 재산 때문이 아니라네.
 
그러므로 여기서 현명한 사람
자신의 이로움을 꿰뚫어 보아
지혜롭게 법을 깊이 검증할지라.
이와 같이 그곳에서 청정해지리.
 
사리뿟따 존자는 통찰지와 계행
고요함을 두루 구족했나니
저 언덕에 도달한 비구 있다면
잘해야 그분과 동등할 정도라네.
 
평생 고독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웃에게 전 재산을 남김없이 베풀어온 수닷따는 말년에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 붓다와 붓다의 상가를 외호한 그를 붓다는 ‘나의 재가 수행자 중 보시를 실천하는 제일의 제자’라고 칭찬했다.  
 
빠세나디 왕의 고백을 듣다
 
코살라 국 빠세나디 왕은 본디 전쟁을 좋아하고 사람을 쉽게 죽이는 포악한 성정을 지닌 왕이었다. 붓다에게 귀의한 뒤로 그의 전쟁광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전쟁을 그치지는 않았다. 그런 빠세나디도 노년에 이르게 되자 어느 덧 정치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코끼리와 말, 마차, 보병을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광분하는 주변국의 왕들을 보면서 더더욱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가장 사랑했던 왕비 말리까마저 죽자 왕은 더욱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빠세나디 왕은 위두다바(Viḍūḍabha) 왕자와 함께 공무 차 낭가라까에 와서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다가 명상하기 좋은 나무를 발견하고 문득 붓다를 떠올렸다. 붓다를 떠올리자 붓다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붓다는 그 때 사왓티를 잠시 떠나 사끼야 왕국의 메달룸빠(Medaḷumpa)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왕은 디가까라야나 장군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계신 메달룸빠는 이곳에서 얼마나 걸리는가?”
“대왕이시여, 그리 멀지 않습니다. 한 30리(12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디가까라야나 장군의 대답을 듣자마자 빠세나디 왕은 즉시 수레를 돌려 메달룸빠로 향했다. 큰 길이 끝나자 그는 말에서 내려 디가까라야나 장군에게 검과 왕의 터번을 맡기고 붓다의 간다꾸띠까지 걸어서 갔다. 왕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많은 비구들이 정원에서 경행을 하고 있었다.
왕은 조용히 붓다를 뵙고 붓다의 발에 입을 맞추고 발을 어루만지면서 지극한 예로써 인사를 올렸다. 붓다가 물었다.
 
“왕이시여, 새삼스레 늙은 몸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붓다의 물음에 빠세나디 왕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온전히 깨달은 분이시고, 담마(진리)는 붓다에 의해 잘 설해져 있으며, 제자들의 공동체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빠세나디 왕은 이어 붓다에게 자신이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붓다의 상가에 귀의한 이유를 고백했다. 그는 붓다의 제자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온전하게 청정한 공동체이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붓다의 담마가 뛰어나고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세상은 거의 모두 상대를 지어 다투고 대립하지만 붓다의 상가는 마치 물과 젖처럼 친밀하게 화합하고 있고, 붓다의 제자들은 늘 쾌활하고 감관이 청정하고 마치 야생의 사슴처럼 맑게 살고 있어 세존의 담마에 바른 신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빠세나디 왕은 또 붓다의 상가는 수백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설법을 들어도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잘 조복되어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녹을 먹는 장군들조차 잠을 잘 때에는 세존이 계신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잘 정도로 붓다를 존경하는 것 역시 붓다의 담마가 뛰어나고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빠세나디 왕이 길게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 붓다의 상가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떠나간 후 붓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왕과 같이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을 배워라.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을 기억하라.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은 유익하며 청정한 삶의 근본이다.”
 
빠세나디, 비참한 최후를 맞다
 
그러나 빠세나디 왕이 메달룸빠 마을에서 붓다를 만나 신앙고백을 하는 동안 불행하게도 위두다바 왕자와 디가까라야나 장군이 공모하여 왕의 증표를 가지고 떠나버렸다. 서둘러 왕은 군대가 진을 친 장소에 가보았지만 이미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래 전 젊은 빠세나디 왕이 탁카실라에 유학할 때 함께 공부했던 말라 족의 반둘라는 코살라 국에 귀화하여 빠세나디 왕 휘하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어느 날, 반둘라는 뇌물을 받고 그릇된 판결을 한 법무대신을 꾸짖었는데, 이에 원한을 품은 법무대신이 반둘라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모함하여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뒤늦게 거짓 모함이었음을 알게 된 왕이 잘못을 뉘우치고 크게 후회하며 반둘라의 조카 디가까라야나를 장군으로 삼았지만 그는 늘 삼촌의 억울함에 대한 복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런 그의 역심이 결국 위두다바 왕자와 모반을 꾸미는 것으로 이어졌고, 기어이 반역을 꾀한 것이었다.
70대 후반의 늙은 왕은 사왓티 성으로 가지 못하고 몇몇 시종들과 함께 마가다의 아자따삿뚜 왕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남쪽 길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 길은 노구를 이끌고 가기에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더구나 가는 길 내내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시면서 이질에 걸리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빠세나디 왕이 라자가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성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공회당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동안 겪은 고통의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이때가 붓다가 성도를 한 뒤 41년째 되던 해였다.
 
라자가하 독수리봉에서의 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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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봉
 
 
빠세나디의 후한 성원에 힘입어 말년의 몇 해 동안을 사왓티에서 부족함이 없이 보낼 수 있었던 붓다였지만, 그의 아들 위두다바의 모반과 왕의 비참한 취후를 목도한 이후 사왓티는 왠지 서먹하고 편하지가 않았다. 붓다는 사왓티를 떠나 다른 곳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마가다 왕국의 라자가하로 거처를 옮겼다. 어느 덧 붓다의 나이도 칠십대 중반을 넘어 팔십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라자가하에 도착한 붓다는 아자따삿뚜가 자신의 생부 빔비사라 왕을 퇴위시키고 스스로 마가다의 왕위에 올랐음을 알고는 허탈한 마음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자따삿뚜는 붓다가 라자가하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붓다에 대한 반감으로 붓다가 머물고 있는 정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자따삿뚜는 그가 마가다 국의 적법한 통치자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왕위에 오른 것과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 왕위 찬탈을 시도할지도 모르며, 왓지와 같은 주변의 강력한 부족 연합국들이 라자가하를 침범하지나 않을까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왓지 국의 동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재상이자 브라만인 와싸까라를 불러 말했다.
 
“와싸까라, 붓다가 라자가하에 도착하여 독수리봉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초능력의 소유자인 그는 필시 마가다와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가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가서 내가 왓지 국을 공격하여 그들을 파멸시키려한다고 말해보라. 그리고 그 말에 대해 붓다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기억해서 내게 알리도록 하라.”
 
아자따삿뚜의 명령을 받은 와싸까라는 다음날 독수리봉으로 붓다를 찾아갔다. 인사를 마친 그는 붓다에게 왓지 국을 공격하려는 젊은 왕의 의도를 넌지시 알렸다. 사실 아자따삿뚜가 자신의 전쟁 계획을 누구에게 미리 알릴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붓다는 아자따삿뚜가 자신의 통치권을 인정하는지, 부정한 수단으로 획득한 자신의 왕위가 안전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즉시 간파했다. 붓다는 와싸까라에게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을 택하여 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붓다는 와싸까라에게 직접 대답하는 대신 등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서 있는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 그대는 왓지의 부족들이 자주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합을 갖는다고 들은 적이 있는가?”
“예, 세존이시여, 그런다고 들었습니다.” 
“그대는 그들이 화합 속에 모이고, 합의를 이룬 다음 헤어지며, 서로 협조하여 왓지의 부족으로서의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들었는가? 그리고 합의 속에 제정한 법률을 함부로 바꾸지 않으며, 무리 가운데 진리를 따르며, 보다 경험 많은 자를 공경하고 섬기며, 동족의 여인들과 소녀들로 하여금 혹사당할 염려 없이 살도록 하며, 종교적 관용과 자유를 지지한다고 들었는가?”
“그들은 실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아난다, 왓지 국은 건재하며 정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라는 쉽사리 기울거나 타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붓다가 와싸까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침묵하던 붓다가 그를 향해 말했다.
 
“와싸까라, 한 때 내가 웨살리의 사라난다 사원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왓지 국의 부족들에게 나라가 기우는 것을 막을 일곱 가지 사항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들이 내가 설법했던 일곱 가지 원칙을 따르는 한, 왓지 국은 번영하고 쇠망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나라도 그들을 쉽사리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시여, 일곱 가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지키더라도 왓지 국을 파멸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자따삿뚜 왕이 그들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실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을 매수하여 그들 가운데 불화의 씨를 심지 않는 한, 왓지 국을 전투로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와싸까라는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는 듯이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하고 붓다에게 예를 올리훈 독수리봉을 떠났다. 와싸까라가 떠나자 붓다는 곧바로 아난다에게 말했다.
 

독수리봉 영취산

 
“아난다, 지금 나가서 라자가하 부근에 살고 있는 수행승들을 모두 강당으로 모이게 하라.”
“알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얼마 후 수행승들이 모두 강당에 모였다는 전갈을 아난다로부터 받은 붓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향했다. 붓다는 강당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지금부터 나는 쇠망에 이르지 않는 일곱 가지 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집중해서 잘 들어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돌연한 붓다의 법문에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제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고되지 않은 붓다의 설법은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행승들이여, 잘 들으라. 첫째, 수행승들이여, 자주 회의를 열고 회의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다면 앞으로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둘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서 협력해서 행동하고 서로 협동해서 상가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셋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서 아직 정할 수 없는 것을 정하지 않고,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어기지 않으며, 이미 정해져 있는 계율을 실천한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넷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서 경험이 풍부하고 출가한 지 오래된 장로들이나 상가의 지도자를 숭상하고 존경하며 경애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한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다섯째, 수행승들이여. 수행 승려들이 앞으로 성불을 방해하는 애집(愛執)이 생겨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여섯째, 수행승들이여. 기꺼이 숲에서 살기를 바란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일곱째, 수행승들이여. 스스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아직 찾아오지 않은 훌륭한 수행자 동료들이 쾌적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이 수행 승려들 사이에 존재하고, 또한 수행 승려들이 이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을 지킨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붓다는 이어 ‘쇠망을 막는 법’ 일곱 가지를 설법했다.
 
“첫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동작(動作)을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기꺼이 동작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둘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담화(談話)를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기꺼이 담화에 빠져들지 않으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셋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수면(睡眠)을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기꺼이 수면에 빠져들지 않으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넷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사교(社交)를 기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기꺼이 사교에 빠져들지 않으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다섯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더러운 욕망에 끌리지 않고, 여러 나쁜 욕망에 지배되지 않는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희망이 없을 것이다. 여섯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나쁜 친구를 사귀지 않고, 나쁜 동료를 사귀지 않고, 나쁜 무리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일곱째,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작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도중에 열반의 도달을 중지하는 일이 없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을 지킨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영취산,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자리
 
 
붓다는 계속해 또 따른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에 대해 설법을 이어갔다.
 
“수행승들이여, 미래의 세상에 수행 승려들이 믿음이 있고, 부끄러운 마음(慙)이 있고, 부끄러워하고(傀), 박학(博學)하고, 노동에 힘쓰고, 마음 상태가 안정되어 있고, 지혜를 지니고 있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하지 않을 것이다. 수행 승려들이여, 이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이 수행 승려들 사이에 존재하고 수행 승려들이 이 일곱 가지 ‘쇠망을 막는 법’을 지킨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이어 붓다는 상가의 쇠망을 막는 법을 설명했다.
 
“마음을 집중해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수행하고, 기쁨이 가득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수행하고, 심신이 가벼워지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수행하고, 정신통일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수행하고, 마음의 평정과 안정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수행한다면 수행승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또한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닦고, 모든 것이 나(아트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닦고, 모든 것이 부정(不淨)하다는 생각을 닦고, 모든 것이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닦고,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도록 생각을 닦고, 모든 욕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생각을 닦고, 사멸(死滅)에 대한 생각을 닦는다면 수행 승려들은 번영하고 쇠망이 없을 것이다.”
 
붓다가 이렇게 상세하게 상가가 번영하고 쇠망하지 않는 방법을 설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본 아난다에게는 참 진리를 경청했다는 기쁨보다는 불길한 생각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세존께서 이생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듯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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