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경전 속의 관음신앙

대승불교가 행해지는 곳에서 관음(觀音)에 대한 신앙이 불길처럼 일어나지 않은 곳은 없다. 관음이 이렇게 뜨거운 신앙을 받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처럼 자애로은 관음의 품안이 중생들의 괴로운 마음을 달래기에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몇몇 대표적인 경전을 통해 그러한 관음의 보살상을 더듬어 관음신앙의 경전적 기반을 밝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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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타락가산에 머뭄 -

법화경의 일불승에 입각하여 보살의 초발심으로부터 성불에 이르는 과정을 시설한 교설이 화엄경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따라서 보살 십지설과 입법계품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 전자가 보살의 도정(道程)을 시설하고 있는 테에 대해서, 후자는 53인의 선지식과 이를 여러 곳을 방문하는 선재동자를 내세워 구체적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엄교설에서 관음은 다시 어떤 형태를 띠는가.

선재가 찾아가는 53인의 선지식 가운데 관음(觀音)이 28번째로 나타남을 본다. 그런데 그의 주처(住處)는 ‘남방에 산이 있으니 보타락가요, 그 곳에 보살이 있되 이름을 관자재라고 하느니라’.<신역 화엄 권68> 열렬한 구도자 선재가 그 곳에 찾아갔을 때, 관음은 그에게 ‘대비행문(大悲行門)’으로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한다는 말을 일러 주고 있다. 중생의 괴로움을 찾아 부르는 소리마다 응해주는 관음의 특질이 이제 대비행(大悲行)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관음의 주처를 ‘포타라카(Potalaka)'라고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포타라카는 하얀 꽃나무(小白花樹)로서 향기가 짙은 꽃을 피운다고 하며, 이러한 관목으로 뒤덮여 있으므로 그 산을 포타라카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산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인도 남변의 섬이라는 데에 학자들의 견해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괴로운 중생들이 있는 이 사바세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관음의 주처가 이렇게 사바에 있다는 것은 사바세계에서의 활동을 설하던 법화경의 관음설과 상통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신라에 화엄사상을 전래한 의상이 동해안에 낙산사를 열고 백화도량 발원문을 지은 것도, 이러한 포타라카 사상에 근거를 둔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