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선이란 밤하늘의 별처럼 자기 자리에서 빛나는 것이 아닐까. 산중에 은거하면서 깨달은 것이 더러 있다. 밤하늘이 왜 아름다운지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별은 태양계에 떠 있는 행성 여남은 개였는데, 산중에 십수 년 살면서 밤하늘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크고 작은, 밝고 희미한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밤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깨달았다. 선적(禪的)인 삶이란 바로 그러한 태도와 모습이 아닐까. 어느 별 하나 자기를 드러내려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자기 생이 끝나면 미련 없이 유성(流星)이 되어 사라져갔다. 낙하하는 그 별빛마저 밤하늘을 의미심장하게 수놓는 것을 보고 나도 내게 주어진 질량이 크건 작건 간에 저 별들처럼 제자리에서 말없이 빛을 만들며 살아야지 하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
선은 설명이나 해설에 의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진리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행이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 하고,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진정한 보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얻어들은 지식이나 정보는 언젠가 흩어져 날아가 버릴 먼지 같은 것.
거리낌 없는 지혜야말로 그 사람의 무게를 이루고 빛을 발하게 한다.

 

#
우리들은 머리와 입만 커다랗게 열려 있지
가슴과 발은 점점 퇴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극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으로 팔팔한 생명의 빛을 잃어간다.
때라서 대지와의 관계가 그만큼 멀어지고 있다.
선은 대지와 밀착할 수 있는 마음과 몸의 단련이다.
좌선은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당당하게 홀로 직립하는 모습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
선은 모방과 획일성을 배격한다.
저마다 업을 달리하면서 자기 삶을 살고 있는데,
어째서 남의 흉내나 내면서 범속하게 살려느냐는 것이다.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일깨워 개척하지 않고
남이 닦아 놓은 남의 길을 안이하게 가려느냐는 질책이다.
선은 개인의 특성과 창의력을 존중한다.
두 사람의 석가나 똑같은 달마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
진실한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나’를 잊어버린다.
무아(無我)의 경지요, 창조적인 망각의 상태다.
나를 잊어버릴 때 비로소 내가 된다.
자기를 텅 비울 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개관적인 사물과 대립하지 않고
해탈한 자기,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구애받지 않은 무애(無碍)의 경지
이런 때 일에나 삶에 그릇된 실수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선(禪)이다.
순수한 기도의 경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과 지혜로 충만한 이런 체험으로 인해
우리는 일상적인 온갖 모순과 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다.

 

#
선(禪)은 기성의 권위도, 사회적인 지위도,
교양이나 지식도 전재함이 없이 발가벗은 진실한 인간으로서
그 무엇에도 속지 않을 ‘열린 눈’만 문제 삼는다.
선은 사물의 개념이나 격식을 거부한다.
경전이나 어록까지도 한낱 휴지 취급을 한다.
지식의 짐에서 자유로운 마음만이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지 가려 볼 수 있다.
설명에 의해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진리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 선이다.
이미 식어버린 관념에서 벗어나
원체험의 세계로 돌아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하려는 의지이다.
                               
#
선이 단순히 깨달음의 지혜에 머문다면
그것은 한낱 철학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대비심이 있기 때문에
선은 진짜 종교가 될 수 있다.
                                   <산방한담> 중에서

 

#
한 생각 돌이키는 것이 선이다.
지혜가 딴 데 있지 않고 어리석음이 사라진 그 자리이며,
사랑 또한 미움이 가시고 난 바로 그 자리다.
번뇌가 보리(道)를 이루고 생사가 열반(解脫)에 이르는 디딤돌인 것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맺는 말
누가 내게 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산방의 꽃을 보여주겠다. 꽃은 결코 향기를 숨기는 법이 없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전부를 보여준다. 또한 꽃은 필 때를 알고 질 때를 안다. 진퇴(進退)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선이 아닐까. 우리 주변에는 승속을 가릴 것 없이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망가진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