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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하심(下心)의 사리(舍利)'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8-03-26 (월) 10:20

항시 느껴왔던 것이지만 좋은 글씨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작품의 감동과 감상 이전에, 그 걸려 있는 태가 적당하고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분명히 족자인 줄을 알고 액자인 줄을 아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글씨나 그림이다. 한 몸으로 걸려 있지만 작가의 작품만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자기 자신은 완벽하게 사라지는 작업, ‘표구’.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이 보살의 삶이라는 데, 자리(自利)까지 놓아 버린 저 하심(下心)의 작업이 기자를 끌어당긴다.
운현궁 건너편에서 50년 동안 자리하고 있는 작은 공간 ‘낙원표구사’. 표구 장인 이효우 대표를 만났다.
 

‘낙원표구사’ 표구 장인 이효우 대표
 
 
정식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효우 선생은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연화경인데, 발문을 쓴 사람이 김열경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하면 김시습이예요. 문종이 몸이 약했잖아요. 그래서 축원해서 만든 책이예요. 저 홍주, 부여근방에서. 굉장히 귀한 책이기도 하고 뒷부분은 떨어져 없어져서 동국대에서 복사해서 넣은 겁니다. 이 책을 만들 때 원본 종이 두께와 같이 만들려고 종이에다가 바로 배접을 하는 게 아니라, 사이에 두 겹을 더 넣어서 원본하고 같은 두께를 만들어 줘요. 이런 제본법을 금옥양장(金玉洋裝)이라고 해요. 그런데 동국대에서 국보급 전시를 할 때 보니까, 국보급들이 찢어지고 헤지잖아요. 그런 부분을 짤라 버리고 했더라구요. 원치수에서 상하면 안 되거든요. 최대한 원본을 살려야 하는데 장황하는 사람은 원래대로 복원하고 보존이거든요. 그게 안타까워서... 너덜너덜하니까 짤라 버리고 한 건데, 원래 우리 책의 비례에요. 복원하는 것도 그냥 옛 것을 복원한다기 보다 미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 고걸 그대로 살려 내는 거죠. 원래 그렇게 한 이유가 있는데...”
 
- 흔히 표구라고 하는데요, 장황이라는 말은 잘 모르지 않습니까. 장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표구라는 말은 일본말 ‘효구야’에서 나온 말이에요. 장황이란 말은 중국에서 온 말이에요. 장황, 장표, 표장하는 게 다 중국 용어에요. 우리 얘기로는 배첩(褙貼)이라고 말합니다. 배는 뒤에 종이를 바르는 것이고, 첩은 책을 만드는 것이지요. 지금도 인간문화재 선정을 하면 배첩장이라고 해요. 저는 혼용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영업하는 사람이 쓰는 용어는 전문 학자가 쓰는 말하고 달라서 고객이 빨리 뇌리에 담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게 간판이잖아요. 원래는 배첩이지만 같이 혼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축입니다.”
 

이효우 장인은 책의 아래와 윗부분의 훼손된 부분 자르지 않고 최대한 복원하여 보존해야한다고 강조한다
 
 
- 배첩에 여러 가지 도구와 기법들이 쓰이는데 제가 보기에는 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때에 따라서 똑같은 풀의 쓰임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 풀을 만드는 법을 우선 말씀드리면 밀가루를 삭혀야 돼요. 고급 밀가루를 사서 덥지 않은 하지 전에 물독에 담급니다. 막 저어서 놔두면 하루 동안에 물이 노랗게 우러나요. 단백질이 용해되는 과정이에요. 병충의 먹이를 없애는 작업이기도 하고, 풀이 유연하게 되요. 그렇게 열흘 정도 밀가루에 물을 섞어서 자꾸 우려냅니다. 그렇게 해서 갈분 마냥 앙금을 내서 말려서 그 가루를 보관했다가 필요한 때 씁니다. 그 풀을 쒀서 풀 자체로 겨울에 얼지 않을 정도, 여름에 썩지 않을 정도의 냉기의 항온 항습 상태에 보관하면 풀이 곰삭아서 풀이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그렇게 곰삭는다는 것은 썩은 것하고는 다릅니다. 썩는 건 부패한다는 거고. 곰삭은 풀로 오래된 종이에 배접할 때, 오래된 종이라는 것은 조직이 이완되고 삭혀져서 조직이 풀어진 상태로 약한 걸 말해요. 오래된 종이에는 그 정도 비슷한 질의 종이를 만들어서 배접해요. 새 종이는 땡기고 밀어주는 힘이 강해요. 닥종이 섬유가 어떤 것이 좋으냐 하면 길고 넓은 닥나무에서 추출한 섬유가 좋은 거라고 해요. 그걸 믹서에 더 갈아서 가늘게 만들면 땡기고 미는 힘이 고만큼씩만 하기 때문에... 앞에 백년 이백년 된 오래된 삭은 종이를 이렇게 긴 섬유질로 땡기면 늘어나 버리잖아요. 그러면 다 상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상태의 종이를 만들어서 배접할 때 그 곰삭은 풀로 배접해야지만 풀이 땡기는 힘도 그 만큼 줄어들어서 앞의 종이가 상하지 않는 거예요.“
 
- 시대별로 쓰이는 장황의 종이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고려시대의 종이와 조선시대의 종이가 다를 것 같은데요.
“변화되는 시대 구분하고는 맞지 않아요. 얼마 쯤 오래됐냐는 거지, 백년 된 것이냐, 이백년 된 것이냐 아니면 어떤 상태에서 보관된 것이냐가 중요해요. 이럴 때 종이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해 보고 판단하고 해요. ‘열화시킨다’ 그래요. 말하자면 퇴화시킨다고 아시면 되요. 이백년 전 종이가 훼손 된 게 있다면, 그 종이에 맞을 만큼 종이의 질을 퇴화시켜서 고기다 때운다는 거죠. 새 종이를 대면 새 종이하고 원래 종이하고 당기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벽이 생기고 갈라진 틈이 또 벌어집니다. 종이에 털을 뽑는 거죠. 보푸라기를 낸다고 하죠. 물을 축여가지고 이렇게 보푸라기를 내서 갖다 붙이면 때울 수가 있죠. 당기는 힘이 비슷하게 그 정도 연대가 되게끔 느슨하게 만들어서 그걸로 배접을 하죠. 그러면 지탱이 된단 말이죠. 그런데 그걸 모르고 사람들이 좋은 종이만 찾아요. 그건 잘 몰라서 그래요. 앞의 것이 이조 초기작품이나 고려 말 작품이다 그러면, 그 정도로 퇴화시켜서 성질을 비슷하게 만들어서 배접을 해 주면서 거부반응이 제일 안 나게 두 겹쯤 바른 다음에 그 뒤에 있는 것은 상관없어요. 기술적인 것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래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해야 되는 데... 요즘은 기술자들이 거의 다 문화재청 출신 밖에는 없어요. 기능공들을 다 고용해서 해요. 그 사람들이 거기서 비싼 종이 하라고 하면 비싼 종이 발라요. 그렇게 하면 석채를 많이 쓰는데 그림 바닥에 물고 늘어지는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당기고 밀고 하면 풀칠을 할 때 늘어났다가, 마르면 당겨지고 하면 우수수 다 떨어져 나가요. 표구를 잘 못했다고만 하는데 사실은 위의 관리자들의 책임이 더 큰데 표구사들은 비싼 종이 바르라고 하면 비싼 종이 바르고 ...그래야 통과가 되니까, 위에서...”
 

장황에 쓰이는 도구들.
 
 
- 소비자들이 그림을 갖고 와서 액자나 두루마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배첩장 들이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들은 어떤 것일까요?
 “두루마리나 액자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 풀을 어떻게 쑤고 하는 것들은 제가 할 일이고, 어디에 거실 거냐고 물어봐요. 지역적으로 같은 2월10일 날에도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 나는 데가 많아요. 습도, 온도 다 틀려요. 습기가 많은 곳에는 풀도 더 강하게 해야 되고, 종이는 연하게 해야 되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역에 따라 다른 재질의 그런 종이를 선택해야 되니까 우선 어디 걸 거냐고 물어봐요. 가령 절집에 거는 거라면 ‘햇빛은 안 들어가는 곳에 두세요, 습기 차지 않는 곳에 두세요’ 해요. 또 족자가 좋아요? 액자가 좋아요하고 물어보는 데 물론 족자가 좋긴 한데 요즘 아파트에는 족자 걸 자리가 마땅히 없어요. 애들 손 타면 상하지, 반려견들이나 고양이들이 건드리지... 당연히 표구도 잘해야겠지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내 몸같이 생각하면서 잘 보관해야 돼요.”
 
“제가 항상 하는 서화를 잘 보관하는 길은 ‘사람이 생활하기 가장 적당한 공간, 적당한 조건에서 보관하라’는 거예요. 사람도 습기 찬 데 가면 병나요. 어깨 결리고, 허리 아프고.. 똑같은 겁니다. 종이는 말은 못하지만 그대로 시각적으로 나타나거든요. ‘습기가 안 차게 해라, 열을 몇 도로 조절해라. 그것은 피상적인 얘기다.’ ‘네가 그 습도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래요.”
 
- 두루마리 축이나 액자들 모두 나무가 안 들어가는 것이 없는데, 나무가 휘는 것을 잡으려면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여유가 있는 목공소가 나무를 사가지고 바다에 담궈 놨다가 켜가지고 세워서 비를 맞혀요. 진, 염분 다 빠져 나가게. 근데 지금 거래하는 데가 영세해서 나무를 많이 사놓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조각을 붙여서 써요. 제일 심각한 것은 족자의 축인데 나무가 조금이라도 휘면 그림이 휘어서 말리기 때문에 그림이 다 구겨져요. 그래서 요즘은 오동나무가 잘 휘지 않아서 이중으로 하기도 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 반 굴릭이라는 미국사람인데 중국화 복원하는 것을 배워서 어디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동양에 족자 만들 때의 축은 음양의 이치에 의해서 만든다고 글을 써놨어요. 그 글을 우리나라 어느 박물관에서 내는 영문 기관지에서 갖다 썼어요. 그 말을 또 어떤 교수가 공감을 하는 거예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똥도 미국 놈 똥이면 다 좋은 줄 아냐’ 그랬어요. 우리는 그때 긴 나무를 증기에 쪄서 할 능력도 없었고... 방법은, 적은 나무를 이어서, 바로 단면을 이을 수 없으니까 조각을 이어서 덜 휘는 방법을 썼던 거예요. 필요에 의해서 한 것인데, 그런 것이 현명한 것인데, 중용에 의해서 음양오행에 의해서 이런 게 아니라고요. 옛날에 그렇게 쓴 것은 최소한 휘는 정도는 막자는 의미에서 이어 쓰는 경우가 생긴 거예요.”
 

작업실. '하심사리'의 산실이다
 
 
- 시대가 변하면서 배첩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장황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와 같이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소비자화 장황장들 간의 어떤 노력이 필요 할까요?
“좋은 표구를 만들려면 값을 정당하게 지불해야 돼요. 문제는 소장자하고 표구하는 사람하고 대화를 많이 해야 돼요. 그래야지 소비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고, 그렇게 하려면 이렇게 시간이 들고 이런 재료를 사용해야 되고 비용도 이만큼 든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돼요. 무조건 액자 하는 데 얼마에요? 족자 하는 데 얼마에요? 하고 싸게 해달라고 해요. 그러면 내가 물어 보는 말이, ‘규격이 어떻게 됩니까?’, ‘새로 하는 겁니까?’, ‘오래된 겁니까?’, ‘채색이 들어 있는 겁니까?’ 그래요. 채색이 들어 있는 거라면 그만큼 조치하는 시간이 더 들고, 오래 된 것이라면 세탁을 해야 되고 세탁하는 비용, 시간 3,4 일 더 걸리죠. 예술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 장황을 하는 사람이 얘기를 많이 해야만 제대로 된 장황작품이 나와요.”
 
- 불교와 장황의 역사는 아주 오래도록 같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절에 가서 괘불 탱화를 본다든지 하면 아주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꾸겨져 있고 갈라져 있습니다. 행사가 끝나면 말아서 함에 넣어 보관하고 하는 데, 족자 같은 것은 잘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런 현상들이 없거든요.
“큰 작품의 관리가 그 만큼 어려워요. 그런데 절에서 행사하는 중에 부처님의 가피로 비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비바람을 맞고도 해요. 또 그걸 거둘 때 두 사람이 적당히 알아서 해요. 그 넓은 폭을 두 사람이 말면 지름 10센티 정도 되는 나무 자체만으로도 가운데가 휘어요. 휜 상태로 말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삐뚜로 말리면 억지로 한 쪽으로 땡기기도 해요.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 정도가 말아서 조율을 같이 해줘야 하는데 ... 그러니까 결국 관리의 문제예요.”
 
- 장황이야말로 재료에 대한 파악, 지리적 환경, 미학적인 부분 또 한학도 알아야 하구요. 그야말로 멋있는 종합예술입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장황의 미래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밝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표구를 하는 일이 풀 쑤고 종이 바르고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에 배울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인건비가 따라 오질 못해요. 표구 단가가 굉장히 싸기 때문에 충분하게 인건비 지불을 하지 못합니다. 박물관에서 일을 맡겨도 비싸도 좋으니까 잘해달라는 사람이 없어요. 처음에 맡길 때 최고의 재료로 잘해달라고 견적을 내 달라고 해요. 시방서를 작성하면서 오동나무를 사용 하고 종이, 풀, 샘플들을 다 해서 보냈어요. 그런데 전화로 바가지 씌운다고 해요. 문화재 마피아. 총체적으로 문화재 쪽 관리들이 공무원 들이 공직성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한테 생기는 이익이 어떤가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안타깝다는 얘기죠. 개인들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시중에서 이루어지는 것 보다 단가는 몇 배 더 비싸게 하고, 일은 ....”
 

장인의 풀칠하는 손길
 
 
- 전통을 살리려고 할 때 자료가 없어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장황에 인연이 닿는 사람이 있어서 배우려고 할 때를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작업들이 있는지요?
“지금 저도 전문가나 후진을 양성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해왔구요, 나 살기 급급해서. 더구나 지금은 지쳤어요. 지금 내 집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도 잔소리하는 것 같아서 말을 안 하게 되요. 표구에 한계가 왔어요. 큰 작품들 , 절집의 탱화들 같은 경우 회사들이 거의 맡아서 하잖아요. 개인한테 올리는 거의 없고. 지금 그렇게 보는 이유는 그냥 비관적인 얘기가 아니라 주거 양식이 다 달라졌잖아요. 아파트 같은 데서 TV라든지 자리가 다 정해져 있어요.  그림을 하나 제대로 걸 자리가 없어요. 기껏해야 TV 앞 소파 위에 걸 그림 하나를 구한다는 정도지, 제대로 된 서화 같은 것을 걸만한 공간이 없어요. 표구는 거의 한계가 온 것 같고. 가령 박물관이나 그런 기관에서 정신 차리고 이제까지 전쟁통에 없어졌던 유물들 그 나머지 것들이나 잘 관리 해줬으면 좋겠는데 .... 잘해주길 기대할 수밖에 없죠, 뭐. 가끔 전시장에 가서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박물관 전시 할 때도. .... 보존 관리에 대해서는 표구사 얘기도 좀 들어야 되는데 표구사를 하도 무시를 해서... ‘니까진 게 뭘 알어?’ 자기는 과학잔데, 우리는 쟁이고 허허허“
 
- 그래도 장황작업을 계속 하려고 하는 후배들이 있지요?
“네, 배우는 사람이 안 생기지만 젊어서 독립해서 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못하려고 하진 않잖아요, 더 잘 하려고 하고 좋은 것 나오면 보고 배우고 해요.”
 
-  그런 후배들에게 당부에 말씀이 있다면?
“기회가 되면 가끔 얘기를 하긴 하지만 내가 가르친다는 의미로 하면 안 받아들이니깐 할 수도 없고, 대신 뭐 대포 한잔 한다든가 밥 먹을 기회가 있으면 가령 이러이러할 때 이랬으면 좋겠더라. 어디서 뭐 봤는데 참 잘했더라, 좋더라. 이정도의 얘기를 하면 자극을 받을지, 구경을 갈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얘기 밖에는 안 해요. 우리 표구 끝났구나 하는 생각 밖엔 안 해요. 기분으로는 이렇게 이렇게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 상황이 좀 그래요. 너무 영세한 입장에다가 일 맡기는 사람들이 너무 이해를 못해 주니까. 발전될 수 없는 상황이예요.”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작품(이효우 표구)
 
 
- 장황의 세월 육십년을 되돌아보실 때 소회가 어떠신지요?
“능력 없는 사람이 이 일을 하면서 밥도 해결 했고 남의 그림 글씨도 좋은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글씨나 그림을 보면 ‘이건 좋다’, ‘이건 누구 것 같다’ 그 정도의 안목은 겨우 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돼서 이젠 더 한 여한은 없습니다. 감사한 삶이죠.”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기자를 잡고 문 밖에서 처음 하신 말씀을 한 번 더 하신다.
“책 얘기는 아까 말한 대로 하시면 되요. 너덜너덜 하다고 잘라 버리는 일이... 복원할 수 있는데 떼 묻었다고, 지저분하다고 짤라 버리면 안 된다. 문화재를 취급하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인터뷰 후기
 
‘하심의 사리’를 얻는 작업은 힘을 빼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심의 사리’가 대상에게 처음 다가가기 위해 하는 작업은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자신을 퇴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말한다. ‘네 삶이 생활하기 가장 적당한 공간과 조건에서 공명하라’고... 어떤 스승에게도 이런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 많은 천대와 부조리, 회한을 접어두고, 자신의 천직 속에서 ‘감사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거인의 겸손을 본다. 그러나 끝내 포기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소망이 있다. 먼저 간 자식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살아 있는 자식이나마 온전하기를 “떼 묻었다고, 지저분하다고 짤라 버리면 안 된다. 문화재를 취급하는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어디 문화재를 다루는 사람뿐이겠는가. 제 마음과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잔인하게 외면하는 이 시대에, ‘떼 묻었어도, 지저분해도’ 모두 껴안고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하심보살'들이 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기자의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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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무등 2018-03-26 2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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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구하는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고
관음의 자비
부처님의 대기설법이라는 생각 해 봅니다.
표구의 깊은 이치에 감명.
아리랑 2018-03-27 08: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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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온전히 장엄하는
춘삼월은 꽃샘추위로 퇴화되어
보이지 않는 하심의 보살처럼
생명의 화장세계를 노래한다

ㅡ모든 것들의 조화로운 이치를
  좋은 인터뷰기사를 접하며
  돌아보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화엄 2018-03-27 14: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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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정성으로 좋은 작품이 탄생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유진 2018-03-27 1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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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귀한 인터뷰 기사
잘 읽었습니다.. _()_ 보살이 여기 계셨네요.
감사합니다.

기자님 마지막 글귀처럼..
무심코 책 한장 한장.. 넘기는 행동에 조심이 더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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