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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금 잔액은?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6-10-18 (화) 11:43

[하도겸의 맑고 밝은 이야기] 75 - 살아보고 결혼하면 안 되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소서

사람을 오래 사귀면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그간의 고통을 듣다 보면, 결국 친구의 배신으로 많이 아픈 경우가 많다. 작은 오해나 어쩌면 사소한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것도 있다. 하지만 만났을 때 너무 외로워서 다른 것들을 잘못 본 것도 있는 듯하다. 그걸 인연이라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헤어짐의 아픔이 좀 많이 큰 듯하다. 아픔이 무서운 것도 아니고, 그 과정이나 교훈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굳이 거치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도 있는가 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충분하다고 생각되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충분한 경험은 내가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열 살 때 할 걱정을 세 살 때부터 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는 일부러 장난을 친다. 같이 차 마시자고 하면서 칭찬하듯 지적질을 하며 괴롭힌다. 또는 서로 아는 친구에게 험담을 늘어놓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본다. 같이 놀러가자고 하면서 친밀해지면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한 신통방통하면서도 엽기적인 농담을 건넨다. 그렇게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 10중 8, 9는 갑자기, 또는 서서히 떠나간다. 나중에 커다란 배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지금 얼른 정리해나가면서 사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 옆에는 적어도 그런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 만약 아직 시험을 치루지 않았다면 한 번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사람을 시험에 들게 했으니, 천상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을 외는 기독교도는 못될 듯하다. 여하튼 이런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 대한 지금의 마음은 과연 신뢰가 맞는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십 년간은 왠지 함께 할 것 같은 기대감은 사라지진 않는다. 이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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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 사진들 (사진=하도겸)

 

 


행복바이러스
“정말 ‘페북(페이스북의 준말)’이나 ‘단톡방(단체카톡방의 준말)’에 공지하면 추석 선물 남은 것 보내오는 분들이 있냐?”고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매년 적어도 한두 분이 꼭 주신다고 답한다. 그럴 거면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한다. “개인적으로 부탁하면 한 번에 한 박스 이상 가져 오겠지만, 그건 ‘사적’인 부탁에 의한 단시안적인 것으로 부탁받는 분도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대답한다.


SNS를 통해 불특정하게 굳이 부탁하는 이유는 언젠가 찾아올 ‘오래된 미래’를 위해서이다. 누구나 집에 남는, 즉 여분이 있어 나눌 수 있는 생필품이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있거나, 나중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기에 좀 멋쩍어서 못 나눠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만족을 알고 나눔을 알고 용기를 가지게 되면, 그런 계기가 오면 ‘보시’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직접 연고가 없는 사람들, 즉 무연중생에게 아무것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는 보시는 큰 복 짓는 인연이 된다고 한다. 우린 그걸 하라고 권선과 그 이로움을 말로 전했으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장 큰 보시인 ‘법보시’를 한 것이 된다. 당장 많이 안 보내줘도 좋고, 지금처럼 한두 명이라도 조금씩 보내주는 것으로 충분히 감사한 이유다.


얼마 전 명절에도 물건 옮기는데 네 분이 도와줬다. 그걸로 충분히 감사한다. 그리고 도와준 분들 가운데 몇 분이 다음에 자신들이 보시하겠다고 약속까지 해준다. 그렇게 선행은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하게 바로바로 퍼져나간다. 그걸 행복바이러스라고 전 부른다.



살아보고 결혼하면 안 되나?
“결혼하지 말고 아이 낳고 10년이나 20년만 살아보고 결혼하면 안 되나?”고 누군가 말한다. “그때도 사랑하면 결혼하는 게 좋겠다”는 그 선배의 말이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하지만, 결혼식을 정점으로 그 사랑은 시들어가는 듯하다. 그 정점을 10년이나 20년, 아니 50년으로 늘여보는 것은 어떨까? 뭐가 그리 급해서 결혼을 서두를까? 혹시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는 아닐까? 한 번쯤 천천히 곱씹어 볼 일이다. 추석(명절)이 끝나면 많은 이들이 이혼한다고 한다. 이번 명절은 모두가 행복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지암 사진들 (사진=하도겸)

 

 


나의 예금 잔액은?

몇 년 전 한 중년 여성 불교신자와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얼굴이 이미 한 소식한 ‘자만하는’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입장에서 ‘간보고’ 평가하려고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면서, 그 여성에게 참으로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여성이 말하는 족족 “그걸 어떻게 아냐?”며 대응을 해줬다. 계속 잘 추켜올리며 접대해주고 돌아갈 때 길가에 나와 인사도 하고 아주 작은 선물도 주었던 것 같다.


얼마 후 그 여성 불자의 스승과 우연히 만났다. 그 제자의 그 스승이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자기 자랑을 많이 하며 경청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을 봤다고 하는 그 말은 사실이었으나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 그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그런 그도 고민이 있다 보다. 우연히 그 사연을 듣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에둘러하며 법을 전했더니 고맙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다행이다.


그러고 한참 후에 그 중년 불자 여성과 우연히 만났다. 이전보다도 더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 더난 티’를 내며 매우 으스대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그런데 ‘소 뒷걸음치다 그 스승에게 전한 법 이야기’를 각색해서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설교했다. 알아도 모른 척하며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또 격찬을 거듭했다. 참으로 세상은 돌고 또 도나 보다.


오늘 ‘페북’ 친구들 사진을 보다가 비슷한 용모의 사람을 봤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조금 웃었다. 굳이 웃긴 일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다가도 이불 덮어쓰고 웃을 일들을 저축해두는 센스는 아직 잊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사연을 저축해 볼까? 당신은 어떤 에피소드를 지금까지 저축하고 계신가요?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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