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 교수 기고] ‘정법을 개인 기복의 미신으로 만들지 말라’
“굴종의 신앙심으로 미신을 믿을 것인가, 주체적 신앙으로 정법을 믿을 것인가”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우희종 교수(서울대)가 ‘오직 깨달음에만 매달리는’ 이른바 조계종식 깨달음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상구보리에 치우쳐 하화중생을 외면하는 조계종식 불교에 대한 우리시대 대표적인 지식인 불자의 탄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미디어붓다는 우희종 교수의 글이 한국불교에 대한 깊은 애정과 충정에 바탕한 것임을 확신해 이를 게재하기로 했다. 이 글에 대한 반론도 일정한 격조를 갖춘 글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조계종의 깨달음이 미신임을 눈치 챈 자 있는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이미 미신(迷信)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눈치 챈 이들이 있을까? 조계종의 깨달음이 신도를 착취하는 미신임을 살펴보자.

 조계종단은 대승불교의 한 형태로서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선종을 표방하면서 종지에 따라 깨달음을 강조한다. 출가자들 중에서도 평생을 선방에서 보내고 또 많은 재가자들도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것을 최고의 수행으로 삼는다. 정년퇴직한 재가자 중에서도 이제 제대로 수행을 할 수 있겠다면서 조용한 곳에 터를 잡고 그 나이에 좌선하며 용맹 정진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은 그런 재가자들에 대해서 칭찬을 하면 했지 결코 토를 달지 않는다.

선종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중국인의 정서에 맞게 등장한 불교 종파로서, 참선 수행을 통한 자타불이의 연기실상에 근거해 부처와 중생이 서로 다르지 않은, 삶과 진리의 통합성과 일상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탁발이 강조된 초기불교와 달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 자세에 근거해 철저히 관념을 배제한 삶의 현장성이 중시된다.

한편 개인의 종교로의 귀의는 대부분 자신이 직면한 삶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현실적 어려움일수도 있고, 존재의 근원적 물음일수도 있으나 어쨌든 개인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로서 일종의 개인적 기복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종교에 입문한 초심자들의 신앙이 개인이나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기복적 신앙 형태를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이를 뭐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라면 개인 기복에 머무르는 미신과는 달리, 기복적 개인 동기로부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이타적 삶으로의 전환 내지 도약을 요구한다. 불교의 연기실상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자타불이와 동체대비의 가르침이 그 근간이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라는 가르침은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의미하며, 결코 나 하나의 이기적 삶이나 깨달음 혹은 사회나 종단 문제에 무관심한 탈속적 자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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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조계종단으로 인해 신도들은 너와 나의 고통이 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있어서도 철저히 개인화된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결과 불자들은 세상일과의 거리두기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삶의 현장으로부터 분리되는 형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보조국사와 누이의 일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깨달음에 있어서 각자의 깨달음은 각자의 깨달음이자 몫일뿐이다. 독화살의 비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단에 의해 관념화되고 신격화된 개인 깨달음 속에 정작 삶의 현장 속 회향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사라져 버린 셈이다.

깨달음을 강조하는 조계종단에 길들여지면 개인의 깨달음만이 생애 최대의 목표가 되어 일상생활과 분리된 깨달음의 허상을 쫓기 시작한다. 심지어 도를 닦겠다면서 가족도 내던지고 선방에 들어가 있는 이들마저 나타나고 있으니 이들은 자신들이 나 자신의 깨달음이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신앙에 빠져 있음도 알지 못한 채 부끄러움도 모른다. 허나 선가에서는 이런 모습을 똥자루 하나 구제한 것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결국 종단의 출재가자들은 나 하나 깨달으면 된다는 잘못된 믿음에 갇혀 한평생을 소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미신이다. 개인 기복 속에 진리와 상관없는 허망한 것에 매달리는 행위가 미신이기 때문이다. 종단이 강조하듯이 깨달음이 전부라면, 2천5백 년 전 깨달음을 얻은 싯달타가 할 일을 마쳤다면서 그 자리에서 그냥 열반에 들었던가. 아니면 한적한 한 자리에 계속 머물면서 찾아오는 이들이나 만나서 진리를 설했는가.

부처님은 한 나무 밑에서 3일을 머물지 말라고 하시면서 중생들과의 만남과 설법을 위해 49년 평생을 길 위에서 보냈고, 심지어 육사외도 하나하나와 만나 파사현정의 자세로 시시비비를 끝까지 따져 정법을 설파하셨다.

그렇기에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부처님을 본받고자 한다면서 개인의 깨달음이 다 인 것처럼 말하고, 한적한 곳만 좋아하거나, 시시비비를 말하지 말라면서 신도를 멍청하게 만드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부처님 정법을 개인 기복의 미신으로 만드는 자들이다. 구체적 복을 구하고자 빌건,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건, 그것이 자타불이와 동체대비의 모습으로 전환되어 이웃과 사회의 고통을 바로잡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개인에 머무른다면 아무리 좋은 부처님 말씀도 허망한 대상을 설정한 후 개인 기복을 비는 미신과 우상의 모습으로 타락하게 된다.

종단에서 ‘깨달음이 이해냐 아니냐’로 논쟁할 한가로움이 있다면 차라리 ‘깨달음이 미신이냐 아니냐’로 논쟁하여 파사현정의 기치를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정한 대승불교의 선종이라면 깨달음(悟)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삶에서의 깨어있음(覺)이 작동하는 동체대비의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부처님은 온 몸으로 설파하셨다. 내가 수행이 되어야 타인을 가르칠 수 있다면서 산속으로 도망가는 것은 발심한 불자라면 사상(四相)을 버리라는 금강경 구절마저 알지 못하는 무식한 태도다. 너와 내가 따로 없는 마음으로 하는 수행과 회향은 결코 둘이 될 수 없다.
 
최근 종단의 고위 승려가 우리사회에서 승려는 사찰관리인이며, 불교자본가라고 공언했다. 결국 한국불교는 종교 브랜드에 깨달음이라는 상품을 내세워 미신에 현혹된 신도들을 착취하는 종교장사에 불과함을 솔직하게 밝힌 셈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장에서 동체대비의 포교활동을 통해 수행과 회향이 둘이 아닌 삶을 살고 계신 좋은 스님들이 계시기에 조계종단이 우리사회에서 유지됨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이 남아있다. 굴종의 신앙심으로 불교라는 미신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주체적 신앙을 바탕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믿을 것인가. 똥자루 하나 건져 보자고 세상 고통과 시시비비에 귀 막고 조용한 곳에 들어가 밥이나 축내며 벽돌이나 갈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연기실상에 근거한 자타불이와 동체대비의 삶을 파사현정의 자세로 실천하며 살 것인가. 수행과 회향이 분리되건, 둘이 아닌 하나로서 실천되건,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에 따른 각자의 삶의 몫이다. 이를 업이라고 하니, 승복을 입고 미신에 허덕이는 그대에게 내 어찌 더 이상 자상하게 일러 줄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