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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운명을 가른다

김주덕 | nokwoodang@gmail.com | 2014-12-18 (목) 14:55

이른 새벽에 닭장 문과 산양 집 문을 열어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닭들은 큰 밭을 다 헤집고 다니며 먹을 것이고

산양은 가시나무와 감귤나무의 아래쪽 잎을 따 먹고

아직 남아 있는 감국 꽃과 감국 잎을 온종일 먹을 것이다.

 

눈발이 펄펄 날리는 날씨였지만 한나절 내내 무를 뽑고 잎을 다듬었다.

무 잎을 사람이 먹을 것과 가축들 줄 것으로 나누었다.

무김치를 담그고 일부는 무말랭이를 장만할 것이다.

 

싱싱한 닭 먹이를 외발 수레에 가득 실어다

닭장에 넣어주고 돌아서는 기분은 참 상쾌하다.

수레가 다가가면 우르르 닭들이 몰려온다.

 


 

가축들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것이 즐겁고 뿌듯한 것은

단지 그것만으로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축을 통해 생산되는 먹을 것이 우리 밥상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건강한 먹이를 먹은 가축은 건강한 부산물을 내 주어 거름으로 쓰게 된다.

닭장이나 양 우리에서 나오는 두엄은 다시 사람이 먹을 것을 기르는데

쓰이게 되니 완벽한 순환이다.

 

지난 가을에 시장에서 만난 캘리포니아산 양상추가 생각난다.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렸기에 그 먼 땅에서 여기까지

상하지 않고 무사히 와서 시장에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미국산을 사다가 먹어야 할 만큼 양상추가 우리 밥상에 필수였던가?

생각해보니 가정의 밥상보다는 외식업 밥상에 자주 등장하는 채소였다.

어떤 경로이건 소비가 되고 내 이웃들이 먹는다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이라야 늘 그렇듯 울안에서 난 것들이고

조금 색다른 것이 있다면 바다에서 온 생선이나 해초류 정도이니

보는 사람에 따라 호식이 될 수도 있고 아니 될 수도 있다.

 

내 생명의 고리를 이어 갈 건강한 먹을 것을 생산하기 위한 노동은 즐겁다.

낯선 킹크랩이나 달팽이를 먹지 않아도 건강에 문제가 없다.

더 희귀하고 비싼 것을 먹는다고 삶의 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내가 사는 서귀포에도 세계적인 정크 푸드가 들어 왔다.

그 앞을 지나면 습관처럼 누가 저기 앉아 먹을까 쳐다보게 된다.

청소년과 아가씨들과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를 많이 본다.

기업의 교묘한 판매 전략이 음식의 유행을 만들어 낸다.

시장기가 느껴지면 더욱 유혹을 떨치기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첨가되었을 물질들에 중독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거리에 나가면 서양형 비만인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비만의 문제는 다른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는 먹는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짐작한다.

 

바쁜 부모는 음식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없고

청소년들은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아무데서고 구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는 음식 대개는 염려스러운 지경이다.

짐작도 못할 첨가물들에 기름지고 달고 부드러우니

점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리라는 말과는 무관하게

전자레인지에 단시간 조리되어 먹을 수 있는 제품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냄비에 끓이고 지지는 음식 만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편의에 길들여진 인간이 쉽게 우리의 어머니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음식을 만드는 시절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냉장고는 커지고 냉동고의 쓰임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이 답답하다.

이는 있으나 시간을 두고 씹기를 즐기지 않으니

점점 다져지고 부드러운 먹을 것을 선호하며 후다닥 먹어 치우게 된다.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갖가지 질병은

병원과 약국을 찾는 것으로 해결해야 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차에서 내릴 일도 없이 음식을 받고 계산하고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한 손으로는 음식을 밀어 넣는 풍경이 서글프다.

자기가 먹는 것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디서 난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음식을 먹는 것이 우리 몸을 살리는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라

다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 수단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밭에 들어 가 토란을 캐고 부추를 베는 등

몸을 쓰는 것으로 시작되는 음식 준비는 물론 과정이 많고 쉬운 일은 아니다.

봄부터 여름 가을을 거치고 겨울에 먹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고

그 음식을 먹는 행위가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빠르고 편리하게 먹는 것에서 번거롭거나 귀찮더라도

그 옛날 음식이 귀해 감사히 먹던 시절처럼 살기를 기꺼이 한다면

일상이 조촐하고 건강한 행복감으로 채워질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수고가 담긴 음식의 가치가 자리를 잃어 간다.

음식은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확장해 보면

음식이 가정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운명도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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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재설헌 - Healing Garden - 淸齋蔎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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