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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연탄길’의 감동 이야기에서<br>강추위를 녹이는 자비를 만끽하다

김진호 | zeenokim@naver.com | 2009-12-21 (월) 14:41

지난 토요일 아주 따뜻한 뮤지컬공연 한편을 만났다.

무려 400만부나 팔렸던 베스트셀러 이철환의 소설 ‘연탄길’을 원작으로 한 ‘연탄길’이라는 동명의 뮤지컬이다.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다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은 뮤지컬이 공연되는 동안 그 재미와 감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 이철환이 풀무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의 실화들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진 원작이기에 감동의 깊이가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공연입장 시간을 기다리는 청소년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미리 소개된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십대 관객들의 출현 때문이다.

연탄길이라는 제목이 이야기 하듯 눈 내리는 달동네의 빙판길을 묘사하는 장면.크게보기

연탄길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눈 내린 겨울 달동네는 미끄럽기 짝이 없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가파른 빙판길에 던진 연탄재가 만든 길이 바로 연탄길이다.

극의 내용이 70~80년대 달동네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이기에 왠지 요즘 젊은 층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그리고 가족단위로 공연을 찾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까지만 해도 관람객의 연령층이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뮤지컬 연탄길은 네 개의 커다란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있다.

극을 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풍금소리와 새벽이 올 때까지라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15분의 휴식이 끝나면 반딧불이와 겨울에 핀 꽃이라는 두개의 이야기를 끝으로 닫는 이야기와 커튼콜로 마무리된다.

무대 위에 조명이 하나 들어오고 커다란 가방을 든 사내 하나가 등장을 한다. 그리고 펄럭거리며 나비들이 날아들어 온다. 그 중에 한마리가 잠시 날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더니 힘겨운 날개짓으로 다시 날아오르려 하지만 한쪽 날개가 헐어 날아오르지 못하자 사내가 가방에서 노란고무풍선을 꺼내 나비한테 달아준다.

나비는 다시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오르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여는 이야기부터 많은 감동들을 예시하고 있다.

시작된 첫 이야기는 부모 없는 남매의 이야기다.

남동생의 생일날 신촌의 어느 달동네 중국집을 찾은 두 아이. 가진 돈이 모자라서 결국은 짬짜면 한 그릇 밖에 시키지 못하는 사정을 알게 된 여주인이 배달을 해야 할 음식을 남매에게 공짜로 내어주며 첫 감동은 시작된다.

사업에 여러번 실패하고 새벽 우유배달하다가 팔이 다친 가장이 여름날 폭우가 쏟아지자 방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막기 위해 우산을 들고 뚫어진 지붕을 막고 있는 장면.크게보기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는 여러번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둔 가족의 이야기다. 우유배달을 하다가 팔이 부러진 가장이 폭우가 쏟아지는 비새는 슬레이트지붕을 우산을 들고 올라가 지붕에 쪼그리고 앉아 빗물을 막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대학에서 30년을 청소부로 지내며 딸을 키워온 홀어머니와 그 대학의 교수된 딸의 이야기가 세 번째다.어렵게 키운 딸을 자신이 청소부로 일하는 대학의 교수 키운 자랑스런 어머니는 다리도 불편해지고 딸과의 작은 갈등으로 인해서 일을 그만두게 되며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된 딸이 부르는 사모곡은 잠시 장내를 눈물바다로 만든다.

마지막 이야기는 눈이 한쪽이 없는 딸을 낳은 가난한 젊은 부부와 역시 가난한 화가의 이야기다.

한쪽 눈이 없는 아기의 엄마는 화가에게 두눈이 예쁜 아기의 얼굴을 그려달라하게 되고 아무리 가난해도 그림 값은 줘야겠다며 먹을꺼 입을꺼 아껴가며 모은 돈 봉투를 화가에게 그림 값으로 건네준다.

때마침 화가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온 역시 가난한 화가의 친구에게 몰래 가방 안에 그림 값으로 받은 돈 봉투를 넣어주며 다시 이야기는 따뜻한 감동을 그려낸다.

가난한 화가에게 가난한 젊은 새댁이 한쪽 눈이 없는 아기의 얼굴을 초롱초롱한 두 눈이 있는 예쁜 아기로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장면.크게보기

그리고 화가가 부르던 레몬옐로우라는 노래. 레몬예로우, 레몬옐로우는 희망의 색이라는 가사는 아직까지 머리속을 맴돌고 있다.

우리사회의 서민 혹은 극서민층의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전개되지만 감동은 커다란 쓰나미가 되어서 전해진다.

눈물이라는 감동의 코드는 슬픔이 아니라 따뜻함을 그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감동의 크기가 더욱 큰 것이다.

그렇다고 눈물이라는 코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커다란 웃음이 주요적절하게 배치되어 감동의 무게에 힘을 더욱 더 싣고 있는 것이다.

또한 뮤지컬은 특성상 관객과의 호흡이 쉽지 않은데 시종 관객과 함께 소통을 한다는 사실이다.

연기자가 던진 질문에 유도된 엉뚱한 관객의 대답들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일도 즐거움이 가득이다. 또 불과 일곱 명의 연기자들이 펼쳐내는 이야기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지겨움이 없다.

이야기, 이야기마다 배역을 바꿔가며 등장하지만 인물에 대한 중복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음은 역시 시종 공연에 몰입하게 하는 기획과 그 내용의 힘에 있을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 연일 계속되는 맹추위와 칼바람도 이 날만은 왠지 무척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2009년의 한해도 이제 몇날 남질 않았다.

어느 해보다 어렵고 힘든 연말, 가족과 함께 연인과 친구와 함께 이렇게 따뜻한 뮤지컬 공연 한편을 관람해보는 것도 큰 의미가 남겨질듯 하다.

'연탄길'이라는 뮤지컬 한편은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려와 나눔 또 무엇보다도 가족과 희망이라는 단어들을 진득하게 잘 고와 낸 진한 국물 한 그릇을 나눠먹는 느낌이랄까. 연탄길이라는 원작소설을 사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지는 날이다. 공연문의 : (02) 584-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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