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치나 엘로라, 심지어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마하보디대탑에서도, 또 부처님이 탄생한 룸비니 동산에서도 우리는 힌두교의 흔적을 본다. 아니 어쩌면 힌두의 성지에서 불교의 흔적을 본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종교, 힌두. 힌두교는 이처럼 불교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불교가 탄생한 인도에서는 물론, 불교가 전파된 동남아시아에서도 힌두교는 불교와 함께 공존했거나 자리를 바꿔가며 살아갔다.

동남아시아에 건립되었던 거대한 왕국들은 문화와 종교에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인도의 색채를 띠고 있었지만, 당연히 이들 문명 속에 흡수된 힌두교는 그 지역의 토착 요소들과 인도에서 유입된 특색들이 함께 혼합된 것이었다.

인도화된 동남아시아의 왕국들은 힌두교와 불교가 서로 교체되거나 종종 하나의 복합적 종교 체계로 결합되는 변화의 국면을 체험했다. 마찬가지로 히말라야에서도 혼합된 종교 문화가 탄생했는데, 여기에서는 경우에 따라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들이 동시에 하나로 세워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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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힌두교, 이 두 종교의 운명은 이렇듯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건축문화에 관한한 불교와 힌두교를 구분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불교성지로 알고 있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사원이 사실은 힌두의 사원으로 지어졌다. 따라서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크로의 불가사의한 유적들에서는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혼합된 특징을 언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힌두 사원. 인도는 물론 동남아시아라는 방대한 지역에 세워진 힌두 사원을 다룬 책이 몇 달 전에 출간됐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는 불교서적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대숲바람’이라는 출판사다. 그동안 10여종의 책을 펴낸 대숲바람의 박효열 대표는 참으로 당찬 사람이다. 내놓은 책 한 권 한 권이 얼마나 알토란같은 것들뿐인 지…. 그러나 대숲바람의 박 대표는 솔직히 고전(苦戰) 중이다. 양서를 알아봐 주는 이가 특히 절집에서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팔리지 않을 것이 뻔한 양서를 고집해 출간하는 박 대표의 근기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어느 날 박 대표가 『힌두사원-그 의미와 형태에 대한 입문서』라는 제목의 책을 가지고 미디어붓다를 찾아왔다. “이번에 책을 냈는데, 불서는 아니지만…. 한 번 읽어 봐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책을 내놓는 그녀의 표정에서 체념 같은 것이 스쳐지나갔다.

책은 좋지만, 인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지만, 잘 팔릴 책이 아니라서 좀 그렇다는 표정이다. 책을 받아들고, 꼭 시간을 내어 읽어보겠노라고, 그리고 좋은 책이라는 판단이 서면, 불서가 아니더라도 꼭 소개를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4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종단 안은 종회의원 선거와 이른바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문제로 시끌·분주하고, 그런 일에 얼마나 많은 불자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는 회의와 함께 문득 책상 한 구석에 놓아두었던 『힌두사원』을 집어 들었다.

우리에게 인도는 불교의 나라다. 인도를 생각하면 우리는 불탑과 불상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막상 인도에 가보면 불교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온통 힌두의 성상과 건축물만이 서있을 뿐이다. 인도가 힌두의 나라임을 실감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도는 쉬바와 비슈누로 대표되는 힌두교의 나라였던 것이다.

인도에서 힌두교는 기원 후 6세기부터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이후 힌두교도들은 곳곳에 대규모의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백년 동안 힌두교의 신전 건축은 전성기를 맞았다. 태양신의 수레를 본뜬 고나락의 거대한 수리야 사원, 에로틱한 조각으로 유명한 카주리호의 정교한 락슈만 신전, 남인도 일대의 교역을 장악한 쫄라 제국이 딴조르에 세운 웅장한 브리하데슈바라 신전 등은 인도 힌두교 문명을 대표하는 찬란한 유산들이다. 이밖에도 인도를 찾는 사람들은 수많은 힌두교 신전들을 보며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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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힌두교 신전에 대해 우리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자료도 없고 관심도 드물다. 전문학자들도 거의 없다. 그저 인도미술사를 담은 개설서 수준이나 기행문에서나 읽어보는 수준이 그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도 힌두신전을 다룬 책은 서구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몇몇 책이 있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 조지 미셸의 역저인 이 책 『힌두사원』은 학술적인 엄밀성을 유지하면서도 간명하게 설명한 신뢰할만한 힌두건출 안내서로 손꼽힌다. 저자인 조지 미셸은 힌두교 건축뿐 아니라 불교와 이슬람 건축에도 조예가 깊은 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지 미셀은 이 책에서 힌두교 신전 건축조성의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 의미, 지역적 전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원래 그가 건축가였기 때문에 건축의 구조적인 특성에 대한 설명은 특히 섬세하다. 힌두교 신전건축 안내서로서는 독보적인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한 심재관 교수는 동국대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치고, 산스끄리뜨어와 고대 인도 신화 텍스트인 뿌라나 연구에 주력하고 있는 학자다. 현재는 금강대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국대와 상지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심재관 교수의 멘토 역할을 했던 이주영 교수(서울대)는 “구미에서 인도미술사 강의의 교재로 널리 쓰이는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이 없는 것이 아쉽던 차에 심 박사가 번역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어 “번역된 글을 읽으며 건축 전문용어가 즐비한 영문 텍스트를 우리 말로 옮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에도 역자는 인도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인도문화 이해에 좋은 길잡이가 하나 더 생겼다. 불서를 읽는 것도 버겁겠지만, 양식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대숲바람, 2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