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몰려 사는, 오직 도시의 삶만을 표준이라 여기는 시대, 대한민국 시골의 삶을 생생하게 발로 뛰어 담아낸 책이 출간됐다. 책의 이름은 『시골기행』(갤리온). 부제는 ‘마음이 먼저 기억하는 그곳’이다.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한 지은이에게 비친 시골의 모습은 그래서 이 나라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감대로 다가올 것이다.

지은이 강신재는 말한다. “시골은 내게 세상의 별책부록이었다”고. 그는 “시골을 타자로 만들어버리는 가슴이 무서웠다. 내가 사는 오늘이 전부라고 믿는 머리가 싫었다. 그래서 떠났다. 별책부록으로, 세상의 귀퉁이로.”라고 말한다.

그의 표현대로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면 통째로 사라져버릴 것이 우리시대 시골의 삶이다. 이 책은 강원도 산골의 배추마을, 천일염으로 유명한 부안 곰소, 남도의 바다가 고스란히 들었다는 장흥의 매생이마을, 대한민국 대표 한우마을, 왕골과 짚풀로 유명한 태안의 대기마을 등 스무 곳의 시골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2년간 봄여름가을겨울 대한민국 시골의 풍경과 사람과 삶의 모습을 채집하였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쉬지 않으며 마음 내려놓지 않는 삶”을 배웠다.

선재동자에게 만난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모두 위 없는 스승이었듯이, 기특하게도 시골의 삶을 찾아나선 지은이에게 시골서 만난 모든 이들은 스승에 다름 아니다.

곰소의 염부들은 말한다. “햇볕과 바람이 지어주는 귀한 밥을 그저 거두며 살 뿐”이라고. 무안 청계의 낙지마을 사람들은 “열두 시간은 볕 보고, 열두 시간은 물에 들며” 살아간다. 영양군 석보면의 담배 농사꾼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된 여름”을 보내며, 땀방울을 흘린다. 진도에서도 떨어진 섬 가사도의 어르신들은 “톳은 가슴속에 모타놓은 햇발로 말리는 것”이라며 삶의 애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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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듯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쉬지 않으며 마음 내려놓지 않는 우리 시대 시골의 삶을 정직하게 받아내고 있다. 민통선의 마을에서 남도까지 대한민국 시골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지은이는 그래서 시골여행을 ‘정직하게 행복한 그곳으로 떠나는 인생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시대의 시골 사람들은 땅을 이기고 바다를 넘으며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정직하게 행복하다. 거짓을 욕심 내지 않고, 노력을 거둔다.”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땅을 일궈 오늘에 이른 민통선 내 시래기 마을 사람들. “어찌 삶이 여름날 그림만 같으랴”라며 억척같이 산을 일궈 배추밭을 만든 농부들. 박을 타는 흥부의 정성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일하는 섬진강 재첩마을의 아낙들. 이들 모두가 우리의 부모를 닮은 인생의 스승들이었다.

언론에 공개를 꺼렸던 서울 봉원사 사하촌에서 문화재 이고 사는 외암 민속마을까지, 이 책에는 특별한 곳들도 등장한다. 봉원사 사하촌의 취재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한 때 불교언론에서 밥을 먹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억겁의 인연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절과 마을, 성과 속의 경계가 무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마을 풍경이 흥미롭다. 문화재를 이고 산다는 외암민속마을의 삶도 이채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문화재가 자신들의 슬픈 숙명이라고 말한다. 인천시 서구 원창동 세어도, 뭍에서 700미터밖에 되지 않는 섬. 전기도 수도도 없던 삶이 바로 어제였던 도심 속 오지섬이 신기하다.

시골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느 곳이라 할 것 없이 정겹고 쓸쓸하다.

“당신들은 요렇게 기묘한 거 촬영해다가 우찌요? 이렇게 내노면 팔리요?” “다음부터 올 때는 전화를 주고 와. 여긴 점방이 엄응께. 음료수라도 사다놓게.” “시집온 날부터 시어머니랑 한 방을 썼어. 돌아가실 때까지. 시집와서 옷끈을 안 끌러놔서 여름이면 곰팡 날라 그려. 신랑? 신랑은 사랑서 잤지.” “배추고 사람이고, 살면 또 그래 사는 거여.”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터전인데 이제 앞날은 알 수 없지 뭐. 다들 힘들어 나가고, 죽어 나가고. 자손들이 살아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이런 데서 뭐 해 먹고 살아. 우리가 마지막일 것 같아. 우리가 마지막…….” 모두 마을 어르신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마음이 먼저 기억하는 그곳 시골의 솔직한 속내가 정겹고 쓸쓸하다. 지은이가 대학시절 소설을 썼던 문학소녀가 아니었던 들 이렇게 구성진 사투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표현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골마을을 찾아 다니며 지은이가 일군 결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지혜와 우리네 삶의 역사를 되살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시골여행을 하며 얻은 금언 같은 교훈들. 토종벌은 귀가 시간이 늦으면 벌통에 들지 않고 풀잎에 몸을 만 채 노숙을 한다. 꽃을 딸 때 잎까지 같이 따면 꽃이 몸살을 하니 조심해야 한다. 연꽃은 오후에는 향을 풀지 않는다.

이렇듯 이 책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들 물만 봐도 숭어의 크기를 가늠하고, 배추 속을 들여다보고 날씨를 읽고, 꽃봉오리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시골사람들. 모두 자연이란 더듬이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꿰뚫는 혜안이 잡담과 뒤엉켜 쏟아지는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실로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