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금오(金烏) 대종사는 조계종에 매우 특별한 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특별한 만큼의 조명이 되지 않은 분이다. 이는 조계종이라는 종단 구성원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원인(遠因)이 있겠고, 그 문도들의 스승에 대한 선양의식 결핍에 근인(近因)이 있을 것이다.

금오 대종사는 오늘날 조계종의 존립 근거가 되는 이른바 정화불사의 주역이었다. 단순한 주역이 아니라 실질적인 주역이었다. 보통 정화라고 하면 청담 스님을 상징적 인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그 과정을 조금만 살펴봐도 정화불사의 중심은 금오 대종사였음을 알 수 있다. 금오 스님은 당시 청정비구의 상징이었다. ‘청정비구’라는 대의명분에 금오 대종사처럼 모든 조건을 구비한 스님은 많지 않았다. 정화당시 대처승 쪽에서 완강하게 절의 이양을 거부하다가도, 금오 대종사가 나타나면 뜨거운 여름에 얼음 녹듯이 물러서곤 했다는 이야기가 이를 반증한다.

금오 대종사는 또한 당대의 최고 선지식이었다. 금오 대종사가 주석하며 정진하는 회상(會上)에는 언제나 구름처럼 수행납자들이 몰렸다. 그의 덕화와 법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근세 한국불교의 역사가 잘 입증한다. 20세기 후반을 살아간 조계종의 선지식 가운데, 금오 대종사의 회상에서 정진했던 것을 자랑처럼 내세우지 않는 분이 없을 정도다. 때론 호랑이처럼 무섭고, 때론 토끼 털보다도 더 부드러운 대종사의 성정에 매료되지 않은 수행자는 없었다. 금오 대종사의 회상에서 수행한 것이 후학들에겐 더 없는 영광이요, 자랑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금오 대종사는 조계종의 정통 선맥을 이은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대종사의 문손들 가운데에서도 금오 대종사를 거론함에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해 거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다면 왜 금오 대종사가 정통 법맥의 계승자인가. 그것은 경허 만공으로 이어지는 정통 선종의 계보를 금오 대종사의 스승인 보월성인(寶月性印)이 이었고, 그 보월의 선맥을 금오태전(金烏太田)이 이었기 때문이다. 만공은 자신의 후계로 보월을 선택했다. 젊은 보월을 법상에 올리고 자신이 청중의 자리에 앉아 그 법문을 듣는 것으로 만공은 보월이 자신의 선맥을 계승한 적자임을 분명히 했다.

보월이 제자인 금오에게 전법을 하기도 전에 일찍 입적에 들자 만공은 제자인 보월을 대신해 보월의 법을 금오가 이었음을 증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보월의 선맥을 그의 상수제자 금오가 이었음을 만공이 증명하는 건당식을 열어, 사법제자임을 공증한 게송은 조계선문에 잘 알려져 있으니, 이렇다.

덕숭 산맥아래

지금에 무문인을 부치노니

보배 달 비록 계수에서 졌으나

금 까마귀 하늘에 사무쳐 날으네.

德崇山脈下 今付無文印

寶月下桂樹 金烏徹天飛

이런 금오 대종사에 대한 선양작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35년 전 맏상좌 월산 스님이 펴낸 <금오집>이 있었으나, 그것으로 금오 대종사의 사상과 생애, 사상과 덕화가 온전히 드러났다고는 볼 수 없었다.

대종사의 문도가 조계종 어느 문손들보다도 질과 양 양면에서 단연 우뚝하고, 문손들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찰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대찰임에도 금오 대종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조계종도들은, 특히 그의 문손들은 두고두고 질타를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이번에 금오 대종사의 상좌인 월서 스님이 중심이 되어 <금오집>을 재번역하고 <금오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귀중한 자료들을 첨가해 『꽃이 지니 바람이 부네』(마음달)라는 이름의 금오대종사 법어집을 간행하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책 전편에 가슴을 찌르는 주옥같은 법문이 가득하다. 경봉, 향곡과 같은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의 금오 대종사 찬은 금오 대선사가 어떤 분인가를 설명할 필요가 없게 한다.

“조계종의 정통성은 정화다. 정화는 계율과 승풍이 살아야 가능하다. 이 책을 간행한 취지는 정화의 주역이자 조계 정통선맥의 적장자인 금오 대종사의 사상과 가르침을 선양하여 조계종이 정화종단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크게보기월서 스님의 책을 펴내는 취지에 대한 설명이다. 월서 스님은 “법어집 간행에 그치지 않고 매년 금오사상 학술세미나를 열어 선양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덧붙였다. 늦었지만 1200여명의 문도들이 각성하여 문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꽃이 지니 바람이 부네’라는 도치어법을 사용한 법어집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바람이 부니 꽃이 지네’라고 했으면 얼마나 밋밋했을 것인가. 한 번 뒤트니 생기가 돌고 역동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제발 책의 제목처럼 ‘일생을 구름같이 바람같이 살아가셨던 금오 대종사의 위대한 가풍(家風)이 선양되어 비틀거리는 조계의 선풍(禪風)이 우뚝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양장본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