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에서 표독스러운 정순왕후로 등장한 탤런트 김여진 씨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여러분, 제가 왜 온지 아세요?”

다정하게 물었지만 아이들의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몇몇 아이들의 나지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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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야기 하려구요.”

미리 수업주제를 들은 아이들이 대답하자, 김여진 씨는 말했다.

“아니에요. 여러분과 공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에요.”

그리고 교실 앞에 놓인 칠판에 커다랗게 ‘공감’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

김여진 씨가 방문한 학교는 성미산학교. 자연친화적인 감수성과 지속가능한 삶, 돌봄과 배려를 가르치는 대안학교에 6월 26일 김 씨는 아이들 말처럼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빈곤 실상을 알리기 위한 일일교사로 방문했다.

JTS는 아시아 빈곤퇴치를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아시아 어린이의 아픔을 함께 나눠요’라는 타이틀을 걸고 한달 간 릴레이 연예인 일일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JTS는 최근 인기사극 이산에서 정순왕후 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여진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김 씨는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

김 씨의 강의는 이번이 두 번째. 지난 6월 19일 서울 봉은초등학교에서 한번 수업을 했던 ‘경력자’인지라 이번 수업이 큰 부담이 없었을 터. 하지만 의외의 장벽에 봉착했다. 아이들에게 TV속 정순왕후의 표독스러움이 너무 강하게 어필해서인지, 유명 연예인을 봐도 아이들이 영 시큰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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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씨는 북한동포 실상을 이야기함에 앞서 이 아이들과의 공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김 씨는 아이들을 둘러본 다음 “물론 북한이야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공감이라는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교실 앞에 놓인 칠판으로 향한 김여진씨, 커다랗게 ‘공감’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

“공감의 뜻이 뭘까요? 편하게 이야기해보세요.”

“같은 생각이요.” “동의하는 거요.”

머뭇거리는 아이들 속에서 몇몇은 또 답을 했다.

교실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김여진 씨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취재진들도 몰려와 있었다. 김 씨는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라 촬영은 잠시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번쩍거리던 사진기의 조명이 사라지자 김 씨는 아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여러분은 꿈이 뭐에요?”

“과학자요.” “개그우먼이요.” “프로게이머요.”

아이들과 김여진 씨의 문답이 다시 시작했다.

김여진 씨는 “저도 꿈이 있어요. 대학 때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전에도 많은 꿈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떤 꿈이든지 어떤 꿈을 꾸는 사람이든지 공감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공감인데 남의 마음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차이가 나요. 공감을 잘하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공감을 잘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공감을 잘할 수 있을까?” 김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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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잘 하려면 상상과 집중 2가지가 필요해요. 그럼 상상을 한번 해봐요. 눈을 감고 책상을 상상해보세요(교실에는 책상 없이 의자만 있었다). 책상의 모양과 색깔과 감촉을 상상해보세요. 책상 위에 음료수가 있네요. 무슨 음료수일까요? 자 이제 그 음료수를 마셔보세요.”

아이들은 김여진 씨의 말을 따라하는 듯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어 음료수를 마시는 동작을 취했다. 아이들이 모두 음료수를 마신 듯 하자 김 씨는 “이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한명을 떠올려보세요”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떠올린 사람의 다양한 감정 변화를 관찰하도록 지시하는 김여진 씨. “그 사람이 이제 울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세요. 울고 있다면 그 사람을 위로하고 눈을 뜨세요. 자, 그 사람 표정이 어떻게 변했나요?”

“괜찮아졌어요” “이제 슬프지 않은 듯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고 있던 사람의 표정이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여진 씨는 자신이 직접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의 부도로 부모님은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중학교 1학년의 여진. 얼마전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랑 둘이 살게 됐다. 가끔 집을 떠나는 아버지 꿈을 꾸다가 깨어나 꿈이라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다시 그 꿈이 현실이었음을 알고난 뒤 가슴이 아프다.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집은 작은 곳으로 옮겨졌고, 동네도 후지다. 용돈이 3만원에서 2만원으로 줄었는데, 결정적으로 오늘부터 태권도학원에 못 간다. 난 커서 태권도 선수가 되는 게 꿈인데. 물론 같이 운동하는 준영 오빠 때문이 아니다. 물론, 오빠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학교에서 집엘 가려면 시장통의 지저분하고 찝찝한 골목을 통과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 후미진 골목에서 같은 반 경호를 만났다. 뭘 잘못했는지 덩치 큰 오빠들한테 두들겨 맞고 있었다. 하지만 여진이는 모르는 척 지나갔다. 아 몰라, 난 내 문제만으로 너무 복잡해.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면서.

다음날 여진이는 경호가 떡을 훔치는 걸 목격하고 호기심에 뒤를 따라간다. 여진이 집을 훨씬 지나 어두운 판자집으로 들어간 경호. 그 곳을 들여다본 여진이는 갑자기 나타난 눈동자에 놀란다. 경호의 동생이었다. 깡마른 체구에 경호가 훔친 떡봉지를 들고 여진이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동자, 그 눈을 피해 여진이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도망가도 여진이는 그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떡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그냥 모른 척 해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야기가 마무리 될 때 김여진 씨는 이야기 속의 여진이가 된 듯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이 물었다 “진짜 우는 거에요?” “왜울어요?”

김여진 씨는 “진짜로 우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을 하고, 같은 마음이라 생각해서 눈물이 나온 거”라고 답했다. 김여진 씨의 눈물 때문인가. 아이들은 김 씨에게 조금 마음을 여는 것 같다.

눈물을 닦은 김 씨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함께 비디오를 보자며 옆에 앉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인도 불가촉천민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교실 앞에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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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된 삶,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

한 가족의 한달 월급이 우리 돈으로 단지 3만원. 3만원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천원이면 한 가족이 하루를 지낼 수 있는 돈이다. 이 조차도 수입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 들은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그저 죽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먹을 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건만 그들에게는 주어지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가끔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다 돈이 될 만한 것은 팔고 운이 좋으면 돈많은 사람들의 빨래를 해주고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한다. 아직은 세상을 알지 못해서 일까? 굶주림에 몸은 삐쩍 말랐지만 아이들의 눈은 웃고 있었다. 왜 인지 그 맑은 눈이 더욱 슬프게만 느껴졌다.

비디오 상영이 끝난 후 김여진 씨는 아이들과 1천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 한다.

적은 돈이라느니 별로 할게 없다느니, 저축을 한다는 등 갖가지 대답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돈이지만 영상속의 사람들에게는 한 가족이 하루를 살 수 있는 돈이며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영상이 화면에 비췄다. 탈북 소녀 금심이의 이야기다.

고등어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금심이는 북한에서는 고등어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저 ‘죽었구나’ ‘굶어서 죽었구나’ 라며 슬픈 감정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힘든 생활이었다고 고백한다.

북한에 관한 영상을 본 한 아이는 “북한에는 정말 먹을 게 없는 것 같다. 그럼 패스트푸드점 같은 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에 패스트푸드점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이어 아이들은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북한이 불쌍하다”고 외쳤다.

김여진 씨는 “나쁘기만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부모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굶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쁜 친구라 모른 척 해야 하나요? 배고파도 신경 안써야 되나요?”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일제히 “아니요 일단 살려야 돼요” “먹을 거는 갖다 줘야대요”라고 대답한다.

김여진씨는 “지금 북한 이야기를 했지만 무조건 북한이 불쌍하니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이 직업 북한에 대해 공감하게 되면 그래서 느끼게 되면 그대로 하면 될 거에요”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업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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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자 이제 아이들은 김 씨가 정순왕후가 아니라 한 명의 스타로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아니, 자신들과 공감하는 예쁜 언니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우르르 사인을 받으러 앞으로 나오기도 하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께 북한에 대해 물어보기도 한다. 아이들은 얼마나 세상을 공감하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이번 수업은 대성공인 듯 하다. 아이들과의 공감, 북한 어린이들과의 공감, 아시아 타민족과의 공감, 그리고 세상과의 공감을 아이들은 또렷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김여진 씨는 “여러 학년이 섞여있어 모두들 이해 정도가 다른데 한 가지 주제를 동시에 이해시키려고 하니 힘들었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듣고 왔는데도 막상 대하니 어쩔 줄 몰랐다”고 밝혔다.

김여진씨는 또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두 달 간 일일교사로 나설 예정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하고, 북한에 빠른 시일 내에 식량 지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여진씨는 6월과 7월 두 달 간 일일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배종옥, 한지민 씨 등이 릴레이로 JTS 일일교사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