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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때는 젖주면 좋아하고, 철이 들면 친구도 좋아하고, 사랑하며 방황도 하고, 그것은 인생.’ 80년대의 한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높은 단계의 욕망을 추구하면서, 그 욕망이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대상이자, 인간으로서의 나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이라는 모순적 사실을 깨닫는다.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이같은 주제를 다양한 학문적 스펙트럼으로 접근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정기적인 ‘불교와 상담 연찬회’로 사회적 이슈들을 이끌어냈던 밝은사람들이 6월 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욕망을 주제로 제5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초기불교 전공자부터 유식학, 선, 심리학, 서양철학, 생물학 등 다양한 영역의 학자들이 욕망의 문제를 다루었다.

크게보기‘초기불교의 욕망 이해: 욕망의 다양한 의미’를 발표한 서울불대 정준영 교수는 초기불교에서 등장하는 욕망의 개념을 네가지로 구분해 소개했다. 감각적 욕망을 나타내는 까마, 행위를 하기 위한 욕구를 나타내는 찬다,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탐진치 등 이기적 욕망은 라가, 윤회를 지속하게 만드는 괴로움으로 갈애나 갈망, 집착 등을 의미하는 딴하 등이 그것이다.

정준영 교수는 “부처님은 욕망을 이야기할 때 네가지 단어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는데, 그 용어들마다 내포하고 있는 욕망의 속성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욕망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 의미의 욕망과 부정적 의미의 욕망을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며 “누군가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업의 전선에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복지의 차원에서, 그리고 불교수행의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욕망은 개발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게보기‘유식불교의 욕망 이해: 욕망 세계의 실상과 그 너머로의 해탈’을 발표한 이화여대 한자경 교수는 욕계의 욕망을 말나식의 욕망과 아뢰야식의 욕망으로 구분했다. 말나식의 욕망이 탐심과 진심의 욕망이라면, 아뢰야식의 욕망은 자아와 세계 생성의 욕망이다.

한 교수는 또 욕계의 욕망을 넘어선 욕망을 원력으로 표현했다. 대승불교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보살과 원력의 개념을 한 교수는 욕계 안에서 너와 나의 차이에 의해 생겨나는 애탐의 욕망에 이끌리지 않고 그 욕망에 넘어서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것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라 자비가 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불교의 정신은 긍정적 허무주의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긍정적 정신이며 더 깊은 차원의 진리의 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차이가 아닌 동일성의 의식, 욕망이 아닌 자비의 꿈을 일깨워주는 것이 석가의 정신이고 불교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크게보기‘선불교의 욕망 이해: 욕망의 바다에서 유영하기’를 발표한 창원전문대 이덕진 교수는 “선불교에 있어서 욕망은 부정되는 대상이 아니라 넘어서야할 대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선은 인간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고, 대신 개인의 미망을 없애는 ‘경지의 세계’를 증득하는데 막대한 관심을 쏟는다. 따라서 현대의 욕망에 대한 선불교의 대안은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문제 자체를 없애 버림으로써, 즉 문제를 문제 삼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선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물화(物化)되고 양화(量化)된 욕망은 미망에 불과해서 우리를 불행하게 할 뿐이기 때문에 이런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 있으면서 욕망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정의내리면서 “선불교는 사실의 세계가 아닌 경지의 세계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도 없고, 또한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선의 어둠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양철학의 욕망 이해: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넘어서’를 발표한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는 플라톤에서 니체와 푸코와 들뢰크게보기즈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에 대한 고민의 역사라고 정의내렸다.

박 교수는 서양철학에 있어서 욕망을 부정한 금욕주의 철학과 이에 반발해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 일군의 철학자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어떤 논의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는지를 서양철학사 전반에 걸쳐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서양철학에서 금욕주의 철학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헤겔, 마르크스에 이르는 서양철학 전통에서는 이러한 금욕주의철학을 넘어서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길에 대한 고민을 면면히 행한 철학적 전통이었다”고 소개했다. 또한 “특히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비생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인간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교조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들면서 고통에 빠지는 반면, 그것이 생산적으로 나타날 때 인간은 능동적이고 독립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신과 함께 남들과 만물을 배려하면서 건강하고 의미있는 삶이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며 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심도깊게 전달했다.

크게보기‘심리학의 욕망 이해: 욕망의 자각과 조절’을 발표한 서울대 권석만 교수는 “대다수의 심리학자들은 욕망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삶뿐만 아니라 욕망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삶 역시 정신건강에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심리치료자들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자각하고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조절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또 “욕망은 야생마와 같아서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제멋대로 날뛰지만 그렇다고 너무 조이면 저항하거나 힘을 잃는다”며 “우리는 욕망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게보기‘생물학의 욕망 이해: 동물의 욕망, 인간의 욕망’을 발표한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욕망을 자기중앙(中央)적인 욕망과 자기중심(中心)적인 욕망으로 구분했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내부를 향하면서 관계에 열려 있어 주위 모든 타자를 각자 하나의 중심으로 인정한다면, 그는 관계 속에 있되 언제나 풍요로운 자기중앙적 인간이다. 반면 주위와 단절된 경우가 자기중심적 인간이다. 자신을 향한 성찰은 하지 않으면서 항상 관심은 밖을 향하고 있는 관계의존적 인간, 혹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관심은 향하고 있되 주위나 밖의 여러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관계의식적 인간이 자기중심적 인간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반면 존재 자체가 이미 열려있고 욕망이 삶의 원동력인 동물은 오히려 자기중앙적이다.

우 교수는 “열려있지 못한 인간의 욕망은 분명 고통의 원인이지만 그러한 욕망의 실체를 파악하고 진정한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깊이 통찰하여 스스로 변할 때, 고통의 원인이었던 인간의 욕망은 풍요로움의 터전이 되고 기쁨의 근원이 되어 진정한 삶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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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표가 끝난 후 종합토론에서는 각 발표자들이 정의하는 욕망의 기준, 그리고 욕망의 조절방법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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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들의 발표문에는 등장하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므로, 각 발표자들이 전달한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전한다.

정준영 교수:

맛지마니까의 주석서에서는 감각적 욕망을 없애는 여섯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부정관을 할 것 2) 부정관에 전념할 것 3) 감각기관을 잘 제어할 것 4) 음식에 대해 소중히 생각하고 양을 조절할 것 5)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6) 감각적 욕망에 대한 말을 피하고 욕망을 제어하는 말을 할 것이다.

한자경 교수:

대승불교에서는 동체대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아뢰야식에 있는 번뇌의 종자를 변화시키는 전식득지를 행해야 한다.

이덕진 교수:

선에서는 사실상 욕망에 대한 정의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음을 증득한다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는 온몸으로 180도 대회전을 한다는 의미이다. 증득 즉 마음공부를 통해서 욕망의 조절이 가능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박찬국 교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서양의 고대철학자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자기수양의 방법이었다. 고매한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자신을 고양시키고,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 이들이 학문을 하는 궁극적 목적이었다.

권석만 교수:

인간은 욕망을 충족하려는 존재이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는 불쾌한 정서를 느낀다. 인간은 보통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는 관심이 바깥으로 쏠리고, 불편한 정서 상태에 있을 때는 자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개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원활하느냐 못하냐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자기조절 즉 self controling이다. 자기조절의 문제를 통해 적절하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일기를 쓰는 것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우희종 교수

사실 나는 아상이 강한 사람이 좋다고 늘 말해왔다.(웃음) 그것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의 삶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욕망을 조절하려고 하면 더 욕망이 강해진다. 이는 내가 조절이라는 말을 다소 억압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욕망에 대한 조절 대신 욕망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욕망을 통찰하면 욕망의 실체가 관계속에서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면 조절할 필요도 없다. 조절하려고 하지 말고 실체를 바라보면 욕망은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조고각하(照顧脚下) 즉 자기 되돌아 보기이다. 욕망은 조절할 것이 아니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