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1941년 3월, 선학원에 모여 열흘간 유교법회(遺敎法會)를 했던 고승들이 가졌던 절체절명의 위기의식. 그 위기의식을 오늘의 한국 승가가 되살려, 진정 거듭나는 중흥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4월 22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무렵까지 계속된 ‘조계종 중흥의 당간, 41년 유교법회를 조명하는 연찬회’가 시종일관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유교법회란, 원융살림 및 계율의 파멸, 수행정신의 몰락 등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그 정통성과 함께 정체성까지 함몰될 위기에 놓여있던 한국불교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당시의 지도자급 스님들의 수행결사를 말한다. 이 유교법회는 앞으로는 1921년 선학원에서 비구승들이 일으켰던 정신의 계승이요, 뒤로는 46년 해인사 가야총림 건설과 47년 봉암사 결사의 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연찬회에는 목정배 교수, 김광식 교수, 법진 스님, 김상현 교수, 종진 스님, 월암 스님 등 내로라하는 출재가의 학자들과 설정, 무관, 지환, 태환, 미산 등 선원과 학교에서 지도자급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대거 논찬자로 나서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때로는 고함이, 때로는 법거량을 방불케 하는 날카로운 문답이 오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가 하면, 역설에 역설을 거듭하며 목소리가 잠기기도 했다. 연찬회를 진행한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의 말마따나 근래에 보기 드문 세미나였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열띤 토론은 사실 예상됐던 것이지만, 그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간간히 공개된 세미나에서 거론되기에 낯을 붉히게 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현재의 한국불교 현실이 그런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울 처지가 아니라는데 발제자나 논찬자, 청중들은 무언의 합의를 하고 있었다.

크게보기이날 연찬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벽송사 선원장 월암 스님의 ‘유교법회와 조계종의 오늘’이라는 제목의 발제. 월암 스님은 유교법회에서 범망경이 중요하게 설해진 이유를 “범망경이 대승계율인 보살계를 설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승선의 자성청정의 심지법문이 동시에 연설되어 계율과 선을 아우르는 심지법문(心地法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선의 정법안장이 심지계체(心地戒體)가 되어 계선일치(戒禪一致), 선율겸수(禪律兼修)의 전거를 삼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월암 스님은 일제의 식민정책에 의해 조선불교는 이미 일본화의 길에 깊숙이 잠식되어 대처식육이 만연하고 음주파계가 다반사가 되어버려 전통의 청정교단은 파괴되고 수행가풍은 실종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법의 시대를 당하여 쇠망해가는 교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 비구승 수좌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안으로 견성성불의 수행을 다지고 밖으로 요익유정의 교화를 천명하는 유교법회를 공개적으로 거행함에 그 사상과 실천의 전범으로 범망경을 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암 스님은 특히 오늘의 조계종은 비상시기를 맞고 있다고 전제하고, 외향적 발전과 물질적 풍요로 인해 지금이 엄청난 위기임을 실감하지 못함이 더욱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스님은 현재의 조계종 위기를 일제시대 불교청년활동가로 활약했던 이용조(李龍祚)가 <불교>지에 발표한 ‘위기에 직면한 조선불교의 원인고찰’이라는 기고를 인용해 설명, 주목을 받았다. 월암 스님은 즉 위기의 원인으로 ‘내인삼독(內因三毒) 외인삼란(外因三亂)을 들었는데, 내인삼독은 파쟁독(派爭毒)·주지독(住持毒)·대처독(帶妻毒)을, 외인삼란으로 경제난, 사상난, 법령난을 말한다.

월암 스님은 “오늘 조계종도들은 먼저 의식전환을 단행하여, 수행과 교화에 목숨을 바쳐야 하며 세상에게 공양 받으려는 고자세에서 세상을 섬기는 저자세로 나아가 중생회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많은 출가자들이 재가자들을 향해 속인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은 자신의 치열한 수행자적 삶의 반성, 즉 수행자 내부에 존재하는 속인적 행태에 대한 성찰 없이 현상적 구분만으로 재가수행자를 폄하하는 것으로 진실된 수행자의 품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스님은 과거 유교법회를 봉행한 때의 불교환경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지경일지도 모른다고 전제한 후 “오늘 우리의 모습이 수행과 교화를 방기한 호구승(糊口僧)으로 전락하지 않았나 반성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한국불교에 만약에 재물과 이익에 빠져 ‘노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면, 지금 당장 참구하고 섬기는 ‘수행분위기’로 유턴하여 유교법회의 정신을 발현하여야 하며 이것이 조계종문을 살리는 길”이라고 결론지었다.

논찬자로 나온 설정 스님도 자유토론을 통해 월암 스님의 조계종 현실진단에 동의하고 “문중, 계파와 같은 파벌독, 개인이익과 명리추구에 매몰된 주지독, 문란한 생활을 하는 출가자의 이른바 대처독이 엄존하고 있으며, MBC의 ‘뉴스후’ 방영과 같은 출가집단의 부끄러운 치부가 세상에 고발되는 일이 잦아짐에 따라 사찰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경제난이 종단에 닥치고 있고, 우리가 태연하게 안주하는 사이 세상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급변하고 있으니 가장 정체된 집단으로 전락한데 따른 사상난, 쓸데없이 국회법을 갖다가 온갖 종법종령을 만들어 종단을 더 어지럽게 하고 있으니 법령난이 그대로 조계종단에 횡행하고 있다”며 “이용조의 일제기 교단진단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질타했다.

이밖에도 출가자의 급격한 감소가 교단에 불러올 어려움에 대한 위기감이 적나라하게 노출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날 연찬회는 발제자, 논찬자, 청중 모두가 조계종이 처한 현실에 대한 뼈아픈 인식과 자성을 통해 거듭나는 종단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라도 유교법회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 조계종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승풍진작을 위한 포살및결계에 대해서도 시의적절한 조처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크게보기유교법회의 재조명을 통해 부끄러운 자화상을 거침없이 토해낸 이날의 연찬회가 조계종이 승단의 위의와 청정을 되찾고 뭇중생들의 귀의처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