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단의 ‘법인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은 선학원의 100년 역사와 특성을 허물고 고사시키는 법에 다름 아니다.”

조계종의 ‘법인관리법’에 반발하며 13명 임원진의 일괄 제적원을 제출한 재단법인 선학원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법인관리법’ 및 제적원 제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7월 8일 오후 6시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과 총무이사 송운 스님, 감사 한북 스님이 참석했다.

법진 스님은 먼저 “만날 때보다 이별할 때 잘 해야 하는데 이별하는데 서툴러 동네가 시끄럽다”고 운을 뗐다.

“제적원 내지 않고 어떻게 선학원 지키나?”

법진 스님은 선학원 임원진의 제적원 제출은 재단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며 ‘위법망구의 희생’이라고 했다. 법진 스님은 “‘법인법’은 선학원의 붕괴와 와해를 부르는 필수적인 독소조항을 지니고 있다”며 “제적원을 내지 않고 어떻게 선학원을 지킬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법진 스님은 “조계종과 갈등을 조장하거나 분규를 일으키고자 시작한 일이 아니라 부득이 선학원의 100년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선 위법망구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제적원을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계종 총무원이 특히 문제 삼고 있는 조계종의 종헌종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종헌종법을 지킬 수 없다 함은 종헌 제9조 3항과 4항, 그리고 ‘법인법’에 국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법진 스님은 “2002년 합의에 따라 종단은 총무원법 제24조에 선학원의 인사권, 재산권, 운영관리권 등 재단법인으로서의 교유권한을 일체 침해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신설했고, 선학원도 정관에 조계종의 종지종통을 봉대하고 조계종 승려 중에서 임원을 선출하는 조항을 삽입했다”며 “종단에서는 우리가 합의를 먼저 깼다고 하는 데, ‘법인법’을 제정해 2002년 합의사항을 깨고 ‘사찰법’과 ‘총무원법’을 개정해 선학원 권리보장을 없앤 것은 조계종”이라고 했다.

크게보기

“대화내용 반영 됐나…법인법은 소급입법이며 옥상옥”

법진 스님은 선학원이 대화를 무조건 거부했다는 종단의 주장에 대해 “선학원은 법인법을 전제로 한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피력했다”면서도 “법인법 제정 이전과 이후 조계종 대책위원회와 내가 3번 만났고, 재단 3직 이사가 총무원에 가서 법인법에 대한 의견도 개진했다. 우리 측 대책위원이 종단 대책위원회가 3번 회동하는 등 횟수로만 7번 이상을 만났다. 그러나 법인법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 반영된 것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법진 스님은 법인관리법은 소급입법이며 법체계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2013년도 법인법, 2014년도 법인관리법으로 100년 전 설립된 단체를 규제하는 것이 법적으로 맞는 이치냐. 소급입법이 아니냐. 종헌종법으로 민법을 규제하는 것이 법체계상 맞는 것이냐”고 따지며 “법인법이라는 틀에서 선학원이나 대각회를 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선학원 사유화 의도? 기류 잘 못 읽은 것”

법진 스님은 임원진의 선학원 사유화 의도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법진 스님은 “이사진이 재단의 기본 재산을 처리해 사유화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며 “법인법은 재단법인은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재산 변동이 가능하다. 법인관리법 대로면 주무관청에 받는 승인 이외에 종단 승인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 옥상옥이다. 법인이 종단 승인을 받고 다시 국가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으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법체계에도 맞지 않고, 법인 운영에 어려움이 많아진다”고 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선학원 임원진의 제적원 제출이 전체 선학원의 뜻이 아니므로 선량한 종도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진 스님 7월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네 차례에 걸친 분원장 회의를 통해 의견을 취합하고 합의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법진 스님은 “분원장 회의에서 ▲법인법 반대 ▲2002년 합의사항 준수 ▲재단 이사회 결의 적극 지지 등 세 가지 사항에 97.3%가 서명 날인하며 법인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법진 스님은 “정만 스님이 임원진 제적원 제출이 전체 분원장 뜻이 아니다고 한 것은 분원 기류를 잘 못 파악하는 것”이라며 “종단에서 징계니 선전포고를 운운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원장 회의에서 구차하게 징계를 당하면서까지 대응하지 말자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했다.

“비영리공익법인 해산 땐 국가 귀속…법인관리법은?”

법진 스님은 “재단법인 선학원은 명칭을 단 한번도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전국 등기부등록을 다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갈등에서도 조계종 측 대책위원장과 내가 선학원 대책위원장 할 때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 엄청난 등기비용 든다는 것을 인식했다. 명칭만 바꾼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법진 스님은 “선학원은 비영리 공익법인이고, 비영리 공익법인은 세제 등의 국가혜택을 받는다. 재단이 해산할 때는 국가로 귀속되는데, 법인관리법의 가장 마지막이 조항은 뭐라 돼 있느냐”고 물었다.

법인관리법 제14조 법인 해산 조항에는 ‘법인이 해산하는 경우에는 국가법률에서 특별히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잔여재산을 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유지재단 또는 종단에 등록된 동일한 목적을 가진 법인 및 사찰에 귀속함을 그 정관에 명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인법은 차선책…삼보정재 유실 막을 종교법인 필요”

법진 스님은 ‘삼보정재의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종교재산은 종교법인이 담아야 하는데 종교간 이해관계가 달라 절충이 안 된다. 현 법인법은 차선책이다. 종교법인이 시행되면 종단의 재산관리도 굉장히 편할 것”이라며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삼보정재의 유실이 없을 것이냐이고, 현 종단의 그릇이 제대로 된 그릇이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제적원을 제출한 선학원 임원진은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로부터 11일까지 등원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대해 법진 스님은 “제적원을 내고 접수증까지 받았는데 호법부에서 오란다고 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며 “개인이 아닌 재단 이사들이 일괄적으로 낸 것이니 만큼 종단이 행정적으로 처리할 일이다. 종단에서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열리는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조계종정 진제 스님의 시중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법진 스님은 “진제 스님은 선학원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진 스님은 “선학원 문제와 관련해 종정 스님과 통화한 적이 없다. 지난해 부산에서 분원장 회의를 열 때 찾아뵌 적은 있지만 선학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며 “해운정사가 분원이지만 종정 스님은 창건주도 분원장도 아니다. 진제 스님이 선학원 분원인 해운정사에서 마련한 재산으로 경주에 절을 창건했지만 선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동화사 말사로 등록했다. 진제 스님이 선학원과 관계가 있다면 종정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선학원은 ‘선학원을 바르게 이해하는 집행부’와는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법진 스님은 “선학원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일제시대 민족불교의 등불이었던 선학원을 비구 대처로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왜색불교를 정화하자는 정화이념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선학원 스님들은 정화불사의 이념을 같이 한 분들이며, 재산까지 출연해 불교정화에 앞장섰고, 그렇게 해서 조계종단이 탄생했다. 선학원은 충분히 조계종의 존중을 받아야 할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함께 이야기하고 종단발전에 매진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