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현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10년 전이던가, 전통사찰총서가 막 완간됐을 무렵이었다. 당시 신문사 편집장이 어디서 소문을 들고 왔는지, 전통사찰총서가 조만간 완간될 예정이니 취재를 해오라고 명하며, 이런 말을 던졌다.

“다른 사람 말고, 신대현 씨 인터뷰 해와. 그 사람이 전통사찰총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유일한 사람이야. 14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21권에 이르는 책을 펴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야.”

그때 뇌리에 박힌 이후부터는 그의 이름을 자주 접할 수가 있었다. 불교신문에 사찰 관련 글이 꾸준히 연재됐고, <한국의 사찰현판>, <한국의 사리장엄> 등 사찰관련 저술들도 여러권 나오더니, 요즘에는 사찰연구 하면 누구나 첫손으로 꼽는 인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바지런한 역사학자라 하더라도 1000여 곳이 넘는 전통사찰을 모조리 둘러본, 게다가 그곳의 사지까지 꼼꼼히 챙겨본 학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장장 14년간 전국 방방곡곡의 작은 암자까지 전통사찰이라면 모조리 섭렵을 했으니, 그 내공이 만만치가 않다. 누군가가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하던데, 이쯤되면 “나는 대충 읊어도 사지가 된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며칠 전 신문사로 신대현 씨의 신간 <우리 절을 찾아서>가 도착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기존에 나온 신 씨의 글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크게보기신 씨의 글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상당히 절제가 된 어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기술의 첫 번째 덕목이 술자(術者)를 숨기는 것임을 신 씨는 그동안의 글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에는 신 씨의 눈으로 바라본 사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봉정사 초입에 조성된 국화밭에서 느낀 현기증이, 수종사를 향해 달리는 차안의 빗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신륵사 앞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목을 태우고, 한밤에 들려오는 운문사 시냇물 소리가 귓전을 두드린다.

책 표지에 실린 “48곳 불교 현장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우리 역사 이야기”라는 카피처럼, 신대현 아저씨 바로 곁에서 조곤조곤 재미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 책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내려온 천년 고찰 48곳을 통해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를 망라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라를 대표하는 경주 사천왕사를 시작으로 강릉 굴산사지, 영광 불갑사, 보은 법주사, 여주 신륵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의 빼어난 사찰과 문화재를 소개하고, 문화재의 가치, 사찰에 얽힌 역사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여타 사찰답사 관련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가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불교인으로서 느끼는 사찰의 본래 의미이다.

불자들이 사찰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곳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현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우리를 키워준 할머니와 어머니의 깊은 정성이, 그들이 입었던 상처를 치유해준 자비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들이 탐방한 지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사찰 속에서 30여년간 직접 불교를 신앙하고 불교를 지켜온 신심 깊은 불자의 오늘의 기억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신심 깊은 불교학자가 1700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듬으며 써내려간 서사시”라고 하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