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타스님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봉정식 역사적인 자리”

“20세기에 한국불교가 한 큰 일이 세 가지 있다. 그 첫째가 역경원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고려대장경을 완역한 것이고, 둘째가 지관 스님의 원력으로 가산불교연구원에서 불교대사림(대사전)을 펴낸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에서 역대 한국의 불교문헌을 집대성한 한국불교전서를 발간한데 이어 한글화에 나선 것이다. 따라서 오늘 그 첫 결실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일곱 권을 부처님 전에 봉정하는 이 자리는 불교사에 매우 역사적인 자리다.”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 스님은 지난 6월 11일 오후 1시30분 동국대 정각원 법당에서 봉행된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출판기념 봉정식’에 참석해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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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채 다 채우지 못했을 정도로 조촐하게 치러진 봉정식이었지만, 참석자들은 오늘의 법석이 참으로 소중한 자리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법당 안에는 시종 경건함과 숙연한 기운이 충만했다. 한국불교사에 남을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 200∼300권 정도를 더 출간해야 하는 사명감이 한국불교전서역주사업단(단장 박인성 교수) 구성원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이날 불전에 봉정한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7권은 동국대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07년부터 3년째 진행해온 사업의 결실이다. 박경준 교수가 씨앗을 뿌렸고 혜원 스님에 이어 박인성 교수가 불교문화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해 이뤄낸 소중한 성과다.

박인성 단장 “한국문화에 새 호흡 불어넣는 가치관 제시”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7권을 부처님 전에 봉정한 박인성 단장은 간행사를 통해 “한국 불교사상의 정수를 담은 한국불교전서를 이 시대의 언어감각에 맞게 번역하고 이를 간행하여 일반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며 “이번에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서 역주해 펴낸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는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재발견하고 우리 시대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가치관을 제시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므로, 부디 널리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에 완역된 책은 원측의 <인왕경소>,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충지의 <원감국사집>, 백파의 <작법귀감>, 백암의 <정토보서>, 풍계의 <일본표해록> 등 총 7권이다. 각 권마다 수없이 많은 주석을 달고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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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경소>, 불법수호가 곧 국가외호 논리적 근거 제시

백진순 교수가 완역한 <인왕경소>는 원측스님의 ‘인왕경’ 주석서다. ‘인왕경’은 호국신앙의 근거가 되었던 대표적 경전으로서, 예로부터 국가를 각종 재난에서 수호하기 위해 백고좌법회 등과 같은 인왕경독송회가 널리 행해진 바 있다. 원측은 상세한 경문 해석을 통해 ‘내적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것(내호)’이 바로 ‘외적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길(외호)’임을 보여준다. 내호의 해석에서 관공(觀空)이라는 자리행, 십지의 교화라는 이타행, 자리·이타의 근거로서 이제(二諦)의 불이(不二) 등의 논리적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또 외호의 해석에서는 이 경의 독송이 호국과 호신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옛 고사들을 인용하였다.

<일승법계도원통기>, 나말여초 불교사상에 의상이 끼친 영향 보여줘

최연식 교수가 한역한 <일승법계도원통기>는 고려초기 승려 균여(923∼973)가 한국 화엄학의 시조인 의상(625∼702)의 ‘법계도’의 내용을 해설한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법계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해설서로서 의상의 화엄사상이 통일신라와 고려초기의 불교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특히 균여는 ‘법계도’의 도시(圖詩)와 기(記)를 지은 이를 밝히는 대목에서 중국 지엄이 도시를 지었다는 설과 의상이 이 두 가지를 모두 지었다는 설을 소개한 뒤, 최치원의 기록에 의거하여 후자의 설을 지지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균여의 저술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문헌으로서 그의 화엄사상의 초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원감국사집>, 사회현실 걱정하는 지식인 면모 주목

이상현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이 옮긴 <원감국사집>은 고려 후기에 국사(國師)로 활약한 충지 스님의 시문집으로서, 고려시대에 간행된 ‘원감국사가송’을 기본으로 하여 ‘동문선’에 수록된 시문과, 스님의 산문을 모아놓은 ‘복암잡저’까지 더하여 번역을 한 것이다. 원감국사의 다양한 시 작품 가운데 사회현실에 대해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외에도 선취를 담은 시, 그리고 원나라에 이의를 제기하여 사원의 토지를 회복한 사연을 적은 산문들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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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귀감>, 백파 저술 엮어 펴낸 첫 번째 책 의미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을 역임한 김두재 씨가 번역한 <작법귀감> 상하 2권에는 통상적인 불전재공의 작법절차인 삼보통청을 비롯한 각종 청문, 대령정의 등 재의식에 필요한 의식절차, 신중약례 등 신중에 대한 의식문, 비구십계 등 각종 수계의식, 분수작법, 새해 아침에 세배하는 의식인 축상작법, 가사이운 등 가사에 관한 의식문을 수록하고 있으며, 불상을 봉안할 때 부처님을 부르는 의식인 불상시창불·시왕번식·시왕각청·구병시식의 등 불교의식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통용되는 모든 불교의식 의례집의 근간이 되며,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 의식집으로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승원의 불교의식과 절차를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는 점은 부언을 요하지 않는다. 특히 <작법귀감>은 백파의 저술을 최초로 책으로 엮어 발간한 첫 번째 책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선운사, 대흥사를 중심으로 한 백파문중은 7월초 <작법귀감> 출간 기념행사를 동국대 정각원에서 봉행할 예정이다.

<정토보서>, 다채로운 왕생담 실린 ‘극락왕생 만인보’

김종진 동국대 교수가 한역한 <정토보서>는 당시에 유통된 어떤 문헌보다 방대한 양으로 교리와 왕생담을 묶어 펴낸 종합적인 정토신앙서이다. 즉 이 책은 극락의 찬란한 모습과 그곳에 이르는 방법 등 정토신앙에 대한 교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한편으로 염불수행을 통해 극락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정토신앙의 지침서이자 비구, 비구니, 왕과 신하, 선비와 백성emfd, 악인들, 축생류에 이르는 다채로운 왕생담이 실려 있는 ‘극락왕생의 만인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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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정토찬>, 극락의 광경에 황홀함을 느끼게 하는 책

역시 김종진 교수가 옮긴 <백암정토찬>은 성총의 저술을 한역한 것이다. 성총은 노년에 정토신앙을 자신의 삶과 수행의 지향점으로 삼아 실천하였으며, 이를 100수가 되는 장편의 시로 승화시킨다. 바로 이 <백암정토찬>은 한평생을 불서의 간행에 헌신한 백암성총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극락의 노래요, 구도의 노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대사가 펼쳐보이는 장엄한 극락의 광경에 황홀함을 느낄 것이며, 그가 살아왔던 시대의 현실과 지내온 삶의 체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종교적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서원에 감동할 것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여러 풍광과 약동하는 대자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서정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표해록>, 대둔사 천불전 유래 밝힌 대목 눈길

김상현 교수가 한글로 옮긴 <일본표해록>은 저자인 풍계현정이 표류하여 일본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풍계현정은 해담 대둔사 완호윤우의 요청으로 경주 불석산에 가서 천불을 조성하였다. 그중 232위는 작은 배에 싣고 768위는 큰 배에 실어 해남 대둔사를 향해 갔으나, 부산 앞바다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일본까지 표류했다. 현정을 비롯한 27명이 겪은 표류이야기, 즉 일본에서 겪었던 일과 일본의 풍습 등이 흥미롭게 적혀 있다. 이 책은 대둔사 천불전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날 봉정식에는 정각원장 법타스님, 동국대 법인사무처장 종성스님, 최순열 부총장, 목정배 전 동국대교수, 박경준 교수 등 동국대 교수, 조은수 서울대 교수 등 각 대학 불교관련 전공자, 김윤길 동국대출판부장, 박인성 단장과 박상준 역경위원을 비롯한 한국불교전서역주사업단 관계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봉정식이 끝난 직후 동국대불교문화연구원은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출판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김종진 동굳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대회에는 백진순 교수가 ‘원측의 주석서에 나타난 경전 해석 방법의 특징’을, 이정희 전 동국대 교수가 ‘사기류(私記類)의 편찬과 한국불교전서’를, 최연식 목포대 교수가 ‘일전문헌(逸傳文獻)과 한국불교전서’를 각각 발표했다. 학술대회의 논평 좌장은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가 맡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