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럴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기자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생긴 일종의 버릇이다. 심하게 말하면 직업병일수도 있겠다. ‘기자는 (쉽게) 감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동안 좌우명 아닌 좌우명으로 갖고 살아온 듯하다. 쉽게 감동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의 삶이 참 각박하고 메말랐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다고 했던가. 특정한 경우나 사람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더러 있었다. 그 중의 한 분이 김성철 교수다. 학술세미나장에서 김성철 교수의 발제 모습을 보며 기자는 사자[문수]를 떠올리곤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거나, 하나마나한 주장을 에두르는 모습이 그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주장과 논리는 명쾌했고, 때로는 단정적이기까지 했다. 흐리멍덩한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까닭에 이내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근무하다보니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인지, 김 교수는 자신의 책이 나올 때마다 정성껏 보내주곤 했다. 어차피 언론사에는 책이 배달되는 것을 알 터인데도 그가 책을 보내오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듯했다. 슬렁슬렁 읽어 넘기지 말고, 정독하라는 것, 그러니까 기자도 제발 공부 좀 하라는 일종의 ‘압박’이라고나 할까.

서론이 길었다. 이렇듯 서론을 길게 늘어놓은 것은 오직 김 교수의 새 책을 잘 소개하기 위해서이니 양해를 구한다.

치과의사 출신의 이학도(理學徒)였던 이력 때문인지 종교철학을 전공한 그의 주장은 예외적으로 간명하다. 그러나 이상할 것도 없다. 인류, 아니 삼라만상, 우주 모두를 포함해 최고의 스승이자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붓다 역시 가르침을 펴시면서 ‘와서 보라. 확인되는 것만 믿으라’고 하셨으니, 그의 학문적 태도는 지극히 불교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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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류든 이목구비가 모두 얼굴부위에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이런 원초적인 의문을 통해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을 불교와 접근시키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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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피질의 앞부분과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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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속의 진화론.


김성철 교수가 이번에 펴낸 책은〈붓다의 과학 이야기〉(참글세상)이다. 책 제목 앞에는 ‘눈으로 듣고 귀로 읽는’이라는 역설적인 ‘형용어구’가 달려 있다. 기자는 사실 1년 전쯤, 김성철 교수의 동국대 서울 정각원 법회 법문을 통해 그의 관심이 ‘진화생물학, 뇌과학과 불교의 상관관계’에 꽂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교신문 연재를 이따금씩 읽으면서 언젠가 이 칼럼들이 한 권의 멋진 책으로 탄생할 것이라는 것을 점쳤던 것이다.
바로 그 책이 지금 기자의 책상 앞에 와 있다. ‘책 머리에’라는 제목의 저자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뇌과학에서는 자아(또는 영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에 근접하고 있다. 행동의 주체로서 자아가 있다는 착각은 뇌의 전두엽에서 형성되고, 몸으로서의 내가 있다는 착각은 두정엽의 쐐기전소엽(Precuneus)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자아는 뇌에 형성된 신경회로에서 만들어낸 것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 출신의 불교학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그의 논지는 불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확신으로 나타난다.

“몸과 마음,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대해 과학적으로 천착할수록 불교를 만나게 되고, 거꾸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깊이 이해할수록 현대의 과학 이론들이 떠오른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언어로 불교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하고, 현대 과학이 인간의 탐욕과 분노를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명과 세계에 대한 불교의 통찰이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이, 김 교수가 이 역작을 펴낸 데에도 오랜 인연이 있다. 그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크게보기“생물 선생님이 실험실을 비우면서 어느 학생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어항 속의 붕어를 자세히 관찰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보라고 했다. 한참 뒤에 선생님이 돌아와서 무엇을 알게 됐는지 물었다. 학생이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이 몇 가지를 물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붕어 몸의 왼쪽과 오른쪽이 똑같지 않은가”였다. 어디 붕어뿐일까. 사람의 눈과 귀, 콧구멍이 좌우로 둘이다. 손가락과 발가락도 좌우로 똑같이 다섯이다. 그러고 보면 왜 모든 동물의 몸은 좌우대칭일까.”(오른쪽 사진 참조)

〈붓다의 과학 이야기〉는 이 같이 김 교수가 중학생이었던 시절, 한 생물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던진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果)의 인(因)은 어린 시절 선생님의 물음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물음이 평생 똬리처럼 뇌리에 머물렀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생물 선생님의 물음이 곧 화두가 되었고, 그 화두를 해결한 결과가 이번의 신간인 셈이다.

서양 종교의 기준에서, 종교와 과학은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종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과학을 도구로 접근하고 연구할 수 있는 종교가 불교라는 것이 이 책의 근간이다. 따라서 붓다의 말씀은 삼라만상과 중생의 생로병사에 대한 심오한 사유와 통찰의 결과물이며, 그런 만큼 과학의 발달을 배경으로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붓다의 중요한 가르침을 증명하는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생물학, 뇌과학과 관련된 특정 주제 가운데 쉽지만 깊은 깨달음을 주는 과학 이야기 47가지를 모았다. 저자는 우리 몸과 마음의 비밀에 대해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고 붓다의 말씀을 빌려 명쾌하고 심오한 답을 제시한다. 과학적 의문에서 싹튼 화제가 자연스럽게 불교 이야기로 옮겨가는 그의 독특한 이야기를 읽어가노라면, 어느새 불교의 진수와 만나게 된다.

‘불교학’과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이라는 지극히 전문적인 세 분야를 통섭(統攝)하여 풀어내는 전위적(前衛的) 저술 〈붓다의 과학 이야기〉. 그렇기에 미흡점도 많을 것이니 제현들의 질정을 기다린다는 그의 ‘겸손’이 ‘엄살’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256쪽, 15,000원.


*김성철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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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용수의 중관논리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승가대와 동국대 서울캠퍼스 강사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티벳장경연구소장,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 계간지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불교학회, 불교학연구회, 인도철학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불교의 중관학을 전공하였지만 불교논리학, 티벳불교, 반야삼론학 등으로 연구의 범위를 넓혀 왔으며 최근에는 진화론, 뇌과학, 윤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 인접학문과 불교를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교초보탈출 100문 100답〉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 등 1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고, 70여 편의 논문이 있으며, 저서 가운데 〈원효의 판비량론 기초 연구〉 등 세 권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또한 〈승랑-그 생애와 사상의 분석적 탐구〉는 한국연구재단 10년 대표 연구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제6회 가산학술상, 제19회 불이상, 제1회 올해의 논문상, 제6회 청송학술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