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방대한 경전이나 기록을 한 권으로 정리해 출간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독자들께서도 팔만대장경을 한 권으로 읽는다던가,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으로 읽는다는 식의 광고 카피를 기억하실 줄 안다.

사실 이런 식의 출판은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 평소 기자의 소신이다. 방대한 경전이나 실록을 어떻게 한 권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선입견에 이른바 다이제스트 스타일의 책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이런 선입견을 고친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동국대 김상현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서다. ‘한 권으로~’ 스타일의 책에 대한 기자의 거부감을 김 교수는 “그래도 그런 책들이 나와 주목을 끌면서 실록이나 경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순기능도 있다”는 말로 교정해주셨다.

김 교수의 말씀으로 인해 기자는 이후 출간된 일아 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김정빈 선생의 ‘소설 경’ 등에 대해 호감을 갖고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대학의 강당에서 불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강의하신다면 이 책은 그 강의의 교재에 해당한다. 부처님께서 발견한 진리에는 어둠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인간의 부조리와 모순 그리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위없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빛나는 그 길을 안내하는 불교의 바이블과 같은 책이다.”


크게보기경전의 요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내놓은 책 〈여시아독 수트라〉(김영사)에 대한 출판사 쪽의 소개 문구다. 이 책의 저자 범일 스님이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을 읽고 부처님께서 발견하시고 시설하신 진리, 즉 불법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일목요연하게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전개한 불교경전의 필요성에 대한 절감”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한 범일 스님 이야기를 살펴보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품으로면서 성장한 저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찾아 자연과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어릴 때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만큼 대학의 공부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하여 이론천체물리학(우주론)을 전공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자연과 우주의 진리에 대한 원리적 한계를 이해하였고 비물질적 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영원불멸한 진리를 찾아 물질과학의 우주론에서 정신과학의 불교로 탐구방향을 전환하여 출가하였다.”

이후 동국대에 진학한 저자는 고익진과 이중표 교수의 저술을 접하며 아함부 경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두 교수의 논문에서 아함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의 시도를 간파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 책 〈여시아독 수트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저자는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에 대한 관심과 천착을 거듭했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부 니까야와 사부 아함경의 차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사부 니까야에 대응하는 사아함경은 문헌적으로 사부 니까야와 놀라울 만큼 동일하지만, 세부적으로 몇 가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브라만화된 견해가 사아함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 이것이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의 근본 차이이며 소리글자인 범어에서 뜻글자인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발생되는 변형이 또 다른 차이라는 것, 또한 범어 원본보다 팔리어 원본이 먼저 결집되고 먼저 문자로 기록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차이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부처님 금구설(金口說)로 일컬어지는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을 일목요연하게 한 권으로 담아낸 불교의 바이블이라고 말한다. 경전을 바이블에 견주는 것이야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바이블 한 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들의 간편함을 장점으로 여긴다면 별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니까야와 아함경의 선집 문헌들을 바탕으로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의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사부 니까야와 사아함경을 비교하면서 읽었다고 밝혔다. 먼저 주제를 가려 뽑아 분류하였고 큰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세밀한 주제에 이르면서 각 주제별로 경과 단락을 선집하여 이해하였으며, 이렇게 이해한 개별 주제들을 서로 연결하였고, 만약 연결이 순조롭지 않으면 개별 주제의 이해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개별 주제의 이해를 바탕으로 개별 주제들을 서로 연결했고, 필요한 주제는 추가하였으며, 불필요한 주제는 삭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저자는 이 책을 2500년 불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특징을 가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을 ‘결집’이라고 칭하고 있기도 하다. “불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권의 경으로 엮으면서 드러난 것들이 그 결실”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 중에 눈길을 끄는 것 한 가지, 수행법에 관한 설명은 이렇다.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모든 수행법은 37조도품과 구차제정이 전부이며, 이러한 수행법으로 누구나 부처님께서 시설하시는 열반에 이를 수 있으므로 그 외의 어떠한 수행법도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사경, 기도, 염불, 화두선이나 간화선의 선수행 등과 같은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시설하신 적이 없으며, 사마타나 위빠사나와 같은 수행법도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적이 없다.“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는 더 많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튼 이 책의 발간은 기존 불교계라는 정체된 연못에 돌덩어리 하나를 던진 셈이다. 그 파문이 얼마나 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귀추가 주목된다. 508쪽, 27,000원



*저자 범일 스님은?

범일(梵日) 스님은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1985)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물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1992)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물리천문학과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 한국으로 돌아와 조계종 금강선원 혜거스님을 은사로 출가(1993)했다. 통도사에서 비구계(1997)를 수지한 뒤, 서울불교전문강당을 졸업(2005)하고 동국대 선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2007)를 취득했다. 현재 지리산 인근지역인 함양의 토굴에 머물고 있다. 논문으로는 [Cosmological Constraints On Early-Decaying Particles(우주 초기에 붕괴되는 입자들의 우주론적 제약들)](1992, 박사학위논문), [불교와 현대물리학의 세계관 비교연구](2006, 박사학위논문) 등이 있으며, 저술로는 《공부하다 죽어라》(공역, 2008)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