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 교사이면서 소설가인 성낙주.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명함은 석굴암미학연구소 소장이다. 교사인 그가 석굴암의 미학을 연구하는 소장이 되기까지는 ‘석굴암에 미쳐 지낸’ 지난 20년간의 세월이 켜켜이 깔려 있다.

석굴암에 미쳐 살았고, 앞으로도 쭉 미쳐서 살 것이 분명한 사람, 성낙주. 그가 이번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단 석굴암 관련 책을 펴냈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주관으로 석굴암 복원공사를 한 지 꼭 50년이 되는 시점에, 그러나 아무도 그 50주년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 납득하기 어려운 시절에 오직 한 사람, 성낙주 선생만이 〈석굴암 법정에 서다〉(불광출판사)라는 제목의 책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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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저자 성낙주 소장.


그가 석굴암 연구를 막 시작하던 시절, 석굴암 사진을 찍는 데 나름대로 일조를 했던 인연으로 친분을 맺었던 터라, 책을 낸 그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여느 때와는 달리 즐겁다.

“석굴암과 관련된 모든 논쟁을 이 책에 다 모았습니다. 햇살신화와 방창설, 샘물 위 축조설 등 그동안 우리들의 뇌리에 너무나 깊숙이 박혀 있는, 그러나 너무나 말도 되지 않는 주장들을 낱낱이 손 봤지요.”

특유의 강력한 ‘돌직구’ 말투는 여전했다. 저 자신감은 도무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절로 웃음이 번진다.

“사실 소설을 쓰는 제가 석굴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석굴암 소재의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광창설, 샘물이야기 등에 매료됐지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동해에 해가 떠오르고, 그 햇빛이 광창을 통해 들어와 석굴암 부처님의 이마에 있는 백호에 비추면서 어둑한 굴속이 환하게 밝아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밝아지는 것.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지요. 신비하고 멋지고, 다 좋은데, 조금 생각을 해보니까 그것이 너무나도 우리네 상식에 어긋나더라고요. 한두 가지가 아니고 거의 대부분이….”

석굴암과 현직 국어교사인 소설가와의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누구나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가설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꼼꼼히 따지는 데에서 시작된 성낙주 선생의 석굴암 탐구는, 마치 약육강식의 현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약육강식이 일어나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붓다의 그것과 비슷하게 닮았다.

“우리나라 학계의 역사상, 50년 이상 한 학자를 집단적으로 ‘이지메’한 경우는 황수영 박사가 유일합니다. 황수영 박사님은 대단히 훌륭한 분입니다. 이 분이야말로 석굴암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분이지요. 그런데 특정학교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황 박사님이 마치 석굴암을 망친 주범이나 되는 듯 공격을 해댔습니다. 그것도 반세기나…. 이게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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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7월에 문화재관리국에서 주도한 석굴암 복원공사는 당시 문화재계의 고명한 전문가였던 황수영 박사가 이끌었다. 황수영 박사가 진행한 복원공사는 일제가 석굴암에 남긴 상흔을 씻어내는 일종의 씻김굿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황 박사의 복원공사는 이후 이른바 ‘석굴암 원형논쟁’이라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성낙주 선생이 보기에는, “공사가 가장 잘 된, 지극히 정상적인 복원공사”였지만,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석굴암을 망친 원흉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황수영 박사를 향한 특정대학 출신들을 중심으로 한 ‘근거 없는’ 공세는 여러 논점들에 대한 이론이나 탁상공론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황 박사는 혹세무민을 한 원흉으로 매도됐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바로잡는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게 성낙주 선생의 역설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 책이 ‘황수영을 위한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석굴암을 오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겨준 한 진정한, 그리고 불심 깊은 노학자를 향한 복원공사 50주년에 즈음한 상찬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학계가 정상이라면, 석굴암보수공사 50년을 맞아 세미나 같은 것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성낙주 선생은 “하긴 석굴암을 촬영한 최초의 사진이 100년 째 되던 해에도 아무런 행사를 하는 이가 없어 당시에도 제가 입수하거나 확보한 사진들을 가지고 100년 전 사진전을 열었으니까, 이런 황당한 경우는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라며 혀를 찼다. .

성낙주 선생은 이 책에서 당시 그들이 생각했던 석굴암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가혹하고 냉정하게 따져 잘잘못을 가렸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어떻게 광창설이나 샘물설 같은 얼토당토한 가설들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졌을까. 광창설은 남천우 박사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설처럼 타당하게 받아들여졌을까. 그 후 광창설에 부화뇌동한 학자들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세상에 인조석굴 위로 흙이 4~5미터씩 덮였는데 어떻게 광창을 낼 수 있는가. 햇빛이 들어오도록 석굴암 입구가 개방형으로 열렸다면, 도대체 어떻게 저 본존불 부처님과 10대제자와 보살들의 조각이 배겨날 수 있었을까. 새와 동식물의 출입에 의한 훼손은 또 어땠을 것이고…”

성낙주 선생은 열변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할수록 ‘열이 오르는’ 모양이다.

“세상에, 뭐 석굴암이 샘물 위에 지어졌다고요? 샘물을 법당 바닥에 흘렸는데, 이슬은 바닥에 맺히고 부조에는 맺히지 않게 하는 과학적인 설계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법당 바닥에 이슬이 맺히면 거기서 절을 할 수 있나요? 방석 한 장 깔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상식적으로 이슬이 맺히는 방에서 살 수가 있습니까?”

성낙주 선생은 이 책에서 석굴암과 관련한 모든 논점을 다 정리했고, 특히 이번에는 햇살신화, 샘물신화 등 반(反) 종교적이고, 반 건축적인 가설들의 연원을 추적해 그 허구를 다 파헤쳤다고 자신했다.

일본인이지만 야나기무네요시(류종렬)을 존경한다는 성낙주 선생. 그러나 야나기는 야나기의 입장에서 석굴암의 의미를 찾은 것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야나기 선생이 석굴암을 찾았을 때, 석굴암 안으로 햇살이 번져올 때 그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쓴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과 함께 햇살과 석굴암 이야기를 쓴 것 아니겠어요.”

우리는 토함산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해와 그 햇빛을 받아 빛나는 석굴암의 햇살신화를 무려 몇 십 년 동안 교과서에서 배우고 읽으면서 뇌리 속에 고착해온 것이라고 성낙주 선생은 역설한다. 그러나 이 햇살신화의 속내로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이건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가 만주, 조선, 필리핀 등을 쳐들어갈 때 첫 번째로 하는 것이 신사이고, 태양신을 모시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석굴암 햇살신화는 조선을 햇살 찬란한 국가(일본식민지화)로 개조하겠다는 햇살신앙이 번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석굴암의 전각을 없애야 한다며 그 이유로 햇살 신화와 함께 일본의 신사를 흉내 내서 전실을 올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석굴암의 진실은 가려졌다는 것이 성낙주 선생의 지론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주입시켰던 담론 위에, 즉 석굴암 원형논쟁의 주요 논점들은 식민사관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성낙주 선생의 생각이다.

“50년 동안의 석굴암 원형논쟁의 쟁점들, 식민사관에 근거한 가설들에 의한 왜곡된 변형들, 이런 것들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 책을 지난 50년 동안에 문화재관리국의 공사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으로 시작된 원령논란을 씻어내는 씻김굿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지요.”

당시 황수영을 공격한 사람들은 황수영 박사를 독재정권에 부역한 곡학아세의 대표적인 학자라고 치부했다고 밝힌 성낙주 선생은 “그런데 그동안 석굴암 원형논쟁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냐? 하나 같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정설인 것처럼 국민들을 향해 호도한 것밖에 더 있느냐?”고 반문했다.

성낙주 선생은 광창설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로, 50년 동안 전실조각은 물론이고, 안에 조각들도 많이 훼손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전실 오른쪽 세 번째 야차상은 엄청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석굴암이 전실 없이 50년 동안 비 맞고 추위에 얼어터지면서 야차상은 둔탁하게 훼손된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광창설과 함께 전실 제거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고명하신 학자들은 왜 한 사람도 뭉그러진 야차상의 사진을 소개하지 않는지, 또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야차상이 많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이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이 사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낙엽, 새들의 울음소리, 분비물 등…. 이런 것들은 다 석굴암에는 재앙입니다. 153쪽의 석굴암 본존불 사진을 보세요. 본존불의 머리와 어깨 등에 곰팡이가 슬고, 새똥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이런 사진을 보면서도 개방형 구조가 맞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50년 동안 그들은 ‘탄탄한 논리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해온 것입니다. 문화재청을 지낸 유홍준 씨,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강우방 씨 등을 포함해서 단 한 사람도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우리 학계의 실상이 이 석굴암의 원형논쟁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석굴암 원형논쟁은 한국사회의 비극이라고 단정합니다.”

성낙주 선생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냉정을 찾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이 책을 평생을 집단적 이지메에 시달린 그분, 황수영 박사의 영전에 이 책을 바쳤다고 밝혔다.

‘그들이 왜 그렇게 황수영 박사를 이지메했다고 보느냐?’의 질문에 대해 성낙주 선생은 조심스럽게 ‘고유섭 선생의 정통성을 황수영 박사가 가져가니까 그것을 시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황수영 박사가 부상하는 것이 아마도 경성제대 출신들의 눈에는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성낙주 선생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살펴보자며, 그들은 목조전실처럼 고분에서나 사용하는 묘지의 용어를 석굴암에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절을 하는 공간을 뜻하는 배전이나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는 의미의 금당 등 살아 있는 종교성전의 용어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성낙주 선생은 “어쨌든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황수영은 원형에 대한 고민 없이 보수공사를 엉터리로 했다면서, 박정희에 대한 거부감을 덧씌우기를 해서 석굴암 복원공사의 성과를 왜곡하고 황수영 박사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1961년 9월의 ‘석굴암 복원공사’는 우리의 손으로 문화재 보수를 최초로 한 것이고, 또 당시의 여건에서 가장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성낙주 선생은 이번에 낸 책 〈석굴암, 법정에 서다〉를 통해 모든 왜곡과 그릇된 주장들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긴 한 숨을 지었다. 408쪽,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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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총 10권)석굴암미학연구소장.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저자는 석굴암 담론의 새로운 정립을 시도한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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