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는 선사의 정신적 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땅에 불조혜명을 밝힌 선사들의 깨달음의 경계가 고스란히 깃든 선시들을 암송하면서 풍진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곤 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향적 스님이 ‘선사들의 정신적 사리’가 오롯이 담긴 선시 해설집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조계종출판사)를 펴냈다.

해인사 지족암 법회 당시 신도들과 읽은 선시에 해설을 더해 책을 엮은 향적 스님은 4월 1일 열린 출판간담회에서 “자그마하게 신도들과 나누려고 시작했는데 규모가 커진 것 같아 부끄럽고 두렵다”고 운을 뗐다.

크게보기

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짤막한 율문으로 나타낸 선시는 한국에서는 고려 말에 선승들의 어록과 함께 많은 게송이 지어졌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승려 시인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한자로 되어 있는 시. 젊은 세대일수록 선시 읽기를 기피하며 또한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이에 향적 스님은 “한문세대가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한글로 풀이했을 때 담아낼 수 없는 깊이가 있다”며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선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스님은 “한자라는 게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각자 보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번 외우면 오래가고 대화와 법문에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며 “시는 언어의 엑기스라 한다. 스님들이 일생동안 수행을 통해 얻은 존재에 대한 실상과 연기법을 짧게 정리해 더 깊이가 있다”고 예찬했다.
크게보기
이 책에는 모두 76편의 선시가 실렸다.

동곡 일타, 월명사, 진각 혜심, 원감 충지, 백운 경한, 태고 보우, 나옹 혜근, 함허 득통, 벽송 지엄, 일선 휴옹, 허응 보우, 서산 청허, 정관 일선, 부휴 선수, 청매 인오, 기암 법견, 고한 희언, 소요 태능, 중관 해안, 편양 언기, 월봉 무주, 월저 도안, 설암 추봉, 무용 수연, 환성 지안, 오암 의민, 보월 거사, 경허 성우, 만공 월면, 한암 중원, 효봉 찬형, 경봉 원광, 향곡 혜림, 성철 퇴옹, 고봉 원묘, 곡천 대도, 대혜 종고 스님의 깨달음의 정수를 모은 것이다.

향적 스님은 “선시의 주를 이루는 오도송과 열반송은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라며 “부처님의 깨달음과 그 깨달음의 가치가 중요한 것은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는 것을 알뿐만 아니라 실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선시는 이상세계의 표현이다. 현실에는 호불호와 치우침이 있다. 법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상은 그렇게 않다. 민중시는 시대가 가면 생명이 다하지만 선시는 영원불변한 이상을 통해 세상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지적한다”고 말했다.

이런 선시가 향적 스님에게 ‘고요의 울림’으로 다가갔듯, 독자들 또한 그 고요의 울림에 공감하며 선사들의 깨달음의 깊이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67쪽,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