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의 체는,
움직이면서도 맑고 고요하며, 잠잠하면서도 깊고 현묘하다. 현묘하고 또 현묘한 체를 어찌 만상의 표상으로 나타낼 수 있겠으며, 고요하고 또 고요한 체가 가히 백가의 말속에 있다고 할 수 있것는가? 표상으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오안으로도 그 체를 볼 수 없고, 말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사변으로도 그 현상을 능히 말할 수 없다. 크다고 할지라도 들어가려고 하면 남아있는 공간이 없고, 작다고 할지라도 감싸려고 하면 밖의 경계가 없어서 남아 있는 공간이 있다. 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해서 한결같이 그것을 사용하고도 가득 차 있고, 없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해도 만물이 그것에 의거해서 생겨나고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강제로 이름을 붙여 대승이라고 말한 것이다. -본문중에서

크게보기유식학의 최고 권위자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장을 역임했던 한국불교학계 원로석학 오형근 박사(81)가 원효스님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밝힌 <대승기신론소>와 <대승기신론별기>를 병합해 번역한 역저 <대승기신론소병별기>(도서출판 대승)를 출간했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이나 일본 학자들은 기신론소 중에서 으뜸가는 ‘소(疎)’로 찬탄하고 있는 저술이다. 중국의 화엄학자인 법장대사(643~712)도 <대승기신론의기>에서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를 인용할 만큼 학문적 깊이를 인정받고 있다.

<대승기신론소>에 앞서 저술된 <대승기신론별기>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일반인이 읽으려 해도 쉽게 읽혀지지 않는 서적이었지만 이번에 한국불교학계 원로인 오형근 박사가 원력을 세워 번역했다.

원효스님의 대승불교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은, 책을 쓰게 된 인연(因緣分)과 대승의 뜻을 세운 뜻(立義分과 대승의 뜻과 일심 등을 자세하게 해석한 것(解釋分)과 신심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信心修行分)과 수행하면 이익이 있다고 권하는 것(勸修利益分) 등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대승기신론소별병기>에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 신심의 대상은 인간의 본성인 일심(一心)과 진여심(眞如心)을 믿게 하며 일심은 곧 대승체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대승심은 대승의 행을 통해 나타난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인간의 일심에는 본래 모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본각(本覺)의 성품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본각의 성품에 의하여 모든 지혜가 생겨나고 중생이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 안에서 번뇌를 녹여내는 진여의 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를 진여훈습(眞如薰習)이라고 설명한다. 이같이 마음의 훈습을 설명하며 인간의 무한가능성을 일깨우는 논리는 원효스님만이 설명할 수 있는 심오한 진리임을 오형근 박사는 강조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소별병기>는 또 원효스님이 번뇌가 일어나고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며 수행자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정확하게 알아서 수행의 방편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원효스님은 일심(一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참선수행과 육바라밀행을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행에 매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원효스님은 인도의 대승선을 도입하여 선(禪)수행을 해야한다는 선사상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수행방법으로 결가부좌법을 제시하며 마음을 안으로 머물게 하는 내주(內住)와 마음을 균등하게 하는 등주(等柱),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주(安住), 정념에 친근하게 머물도록 하는 근주(近住), 마음을 고르게 하는 조순(調順),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적정(寂靜), 항상 최고의 적정을 유지하는 최극적정(最極寂靜), 순수하게 불도를 향하는 전주일취(專主一趣), 평등한 마음을 유지하게 하는 등지(等持)의 아홉가지 선정의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마음의 본성인 진여심을 깨닫을 것을 설파하고 있다. 원효스님은 진여삼매에 도달하면 모든 망념과 망상이 없어지고 진여가 반야의 지혜와 함께 나타나 성불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진여삼매와 함께 <금강경삼경론>에서 강조한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집약해 ‘일미관행(一味觀行)’이라 칭하며 최상의 선사상으로 간주해 ‘대승선’이라고 칭했다.

오 교수는 이러한 선사상을 ‘원효선(元曉禪)’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한국적인 선수행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시도하고 있다. 원효스님은 선정에 임할 때는 △마음에 득실을 없애고자 하는 이는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보지 말고 △청정한 행을 닦으려는 이는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행을 닦고 △마음이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항상 선정에 들고 싶은 이는 산란한 곳에서도 마음을 집중해야 하고 △삼계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이는 오염될 수 있는 곳에서도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섯 가지의 가르침인 오종심행(五種心行)을 제시했다.

<대승기신론소별병기> 마지막은 ‘총결회향’편으로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고 광대한 뜻을 나는 이제 분류한 목차에 따라 전체의 진리(摠持)를 모두 설파하였다. 이 공덕을 중생들의 여실한 법성(如法性)에 돌려보내니 일체 모든 중생들의 세계에 널리 이익이 되게 하소서”라는 발원을 담고 있다.

역저자인 오형근 박사는 “원효스님의 선사상은 인도의 대승선이 처음신라에 전파된 것을 말하며, 그것이 한국 선사상이 시초”라고 강조한다. “한류열풍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시대에 한국화된 선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중국선 답습에 앞서 원효스님의 선사상을 더욱 연구해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지론이다.
630쪽, 50,000원.

*저자 원효스님(617-686)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된 이래 불교의 가르침을 가장 잘 융통한 학자이자 저술가이며 수행자로 유명하다.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 사상을 깨닫고, 유심정토 사상을 설파하여 불교를 대중화시켰다. 저술로는 <대승기신론소병별기>,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열반종요>, <이장의> 등 80부 150여권으로 알려지고 있다.

*번역자 오형근 박사는?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동대학원에서 불교심리학으로 불리는 유식학을 전공해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해방 후 불교학자로서 가장 유명했던 김동화 박사로부터 유식학을 전수받아 동국대에서 강의를 하였고, 유식학과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써서 대승불교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대승불교연구원을 설립하여 대승불교연구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원효대사와 원측법사의 저술을 중심으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편 유식학 입문>. <불교의 영혼과 윤회관>, <불교의 물질과 시간관> 등이 있으며, 유식학에 관련한 다수의 논문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