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한승원 소설가, 김희중 대주교, 이계진 아나운서, 이호신 화가, 정호승 시인, 무비 스님…. 분야도 나이도 삶의 형태도 다른 이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어른을 흠모했다는 것이다. 그 어른, 가야산 호랑이라 불린 성철 스님이다.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을 마무리하며 성철 스님 추모 에세이집 <참선 잘 하그래이>(김영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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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열반 20주기 추모 에세이 <참선 잘 하그래이>가 발간했다. (사진=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문단, 예술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등 각계 저명인사 스물일곱 명이 성철 스님을 그리는 글들을 엮어낸 이 책은 성철 스님 열반 20주기를 맞는 오늘 그 시대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든 필자가 성철 스님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은 이는 아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을 삼천 배를 다 못해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가르침을 청함에 소홀히 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야기들이 전편에 깔려 있다. 감동하고, 그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감사해하며 쓰인 이 글들은 깨침의 세계를 향한 진지한 노력은 모든 이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크게보기불교학자 박성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성철 스님 문하에서 3년을 수행하고 이룬 것 없는 허탈한 마음으로 산문을 나섰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30년 세월이 지나 뉴욕 스토니부룩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책자를 앞에 놓고 제자들과 함께 그 가르침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정리한다.

소설가 남지심 선생은 삼천 배를 하고도 성철 스님을 먼발치에서밖에 뵐 수 없었던 회한을 간직하고 있다. 열반 소식에 다비장에 가서 합장으로 스님을 보내면서 그리움 속에 불태운 섭섭함이 있었노라고 나지막이 고백한다.

김희중 대주교는 종교의 지도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성철 스님은 몸으로 행동으로 철저한 가르침을 주신 분임을 회고하며, 고은 시인은 존경의 마음을 추모시로 갈음했다.

책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인연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연의 깊고 얕음을 떠나 생존 당시 성철 스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또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화두로 남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큰스님 다비장에 밤을 새운 수필, 문학가, 시인들이 오늘에는 우리나라의 중견인물들이 돼 있다. 20년 전 한국불교와 스님의 모습, 그때의 감정들을 되새기며 현재 한국불교의 현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392쪽, 1만 5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