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질문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한 질문을 책의 제목으로 정한 역저가 출간됐다.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귀국한 학승 명법 스님의 이 책의 저자이다.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아름다운인연)라는 책이 이름 그대로 명법 스님께 물었다. “스님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스님의 대답은 “100살쯤 돼요.”이다.

그렇다면 1700살이나 먹은 한국불교가 이제 고작 100살 남짓한 미국불교를 주목하는 것은 왜일까? 이 물음에 이 책의 가치가 담겨 있다. 100살이지만, 앞으로 세계 불교의 흐름을 주도할 새로운 모습의 불교를 우리는 미국불교의 현재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미국 유학을 한 한국의 비구니 스님이 유학생활을 통해 만난 미국 불교 이야기이다.

미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누군가가 미국에 유학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국병이 든 환자쯤으로 여겼던 명법 스님. 그랬던 그가 2007년 겨울, 홀연히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젊은 날의 동경이 사라졌으니 낡은 유럽을 위해 엘레지를 부를 필요는 없으리라. 미국이면 어떠랴.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면, 그들에게 타자인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세계의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자. 그것은 또한 나를 비추는 거울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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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아름다운인연'에서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를 펴낸 명법스님.


명법 스님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부지런히, 또 열심히 미국을 경험하고, 미국불교를 체험했다. 비구니 방문학자라는 조금은 특별한 신분이 스님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스님은 이런 기회를 제공받은 것은 한국의 비구니 승단에 속한 덕분이라고 여긴다.

이 책이 출간된 시발점은 본지, 즉 미디어붓다에 있다. 스님이 미국에 계시던 때에, 미디어붓다 기자였던 탁효정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가 스님의 글을 연재하자는 안을 내놓았고, 나는 쾌히 수용했던 것이다. ‘서양문화에 나타난 불교 코드’라는 연재로 시작된 미국 불교에 대한 스님의 관찰 및 체험기는 당시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후 스님은 미국 불교에 대한 더 많은 글을 썼고, 그 글들을 다시금 갈고 닦아서 이번에 훌륭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세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것을 보고도 천차만별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명법 스님의 이 책은 관점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처음 밟아 보는 미국 땅에서 미국불교의 시선으로 한국불교를 바라보기도 하고, 일본과 중국불교를 바라보기도 한다. 스님이 미국에 처음 건너가 발견한 불교는 그동안 알고 있던 불교가 아니었다. 미국풍토에 맞게 변한 불교, 그러니까 승단이 부재하다던가, 철저하게 재가중심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 등에 주목했다. 수행에 출재가의 차이가 없겠지만 만약 불법이 오래 전해지려면 미국 불교에도 출가승단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낸 것 역시 한국 비구니 출신이기에 나온 견해가 아니라 진정 미국불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님의 이런 생각은 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열린 관점으로 이어진다. 불교를 세계화하는 일은 불제자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한국불교를 세계화하는 일에는 개운치 않은 점이 있더라는 용기 있는 고백이다. 한국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등 다양한 불교 전통들은 딱히 이것이라고 구분지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계종 교수아사리 명법스님이 18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며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국불교’를 다시 바라본 책이다. 스님은 미국에서의 공부를 ‘서양 현대미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에 대한 반성과 제언’ ‘불교를 위한 새로운 터전-미국 불교시설의 유형과 환경’ 등의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논문으로 쓸수 없었던 이야기, 어쩌면 더 생생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스님 특유의 관점과 통찰력으로 담아낸 것이다.

명법 스님은 박사후 유학(포닥) 당시 ‘한국불교’ ‘비구니의 삶’ 등으로 주제로 초청 특강을 하고 한문 경전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비구니라는 특별한 신분 덕에 ‘여성을 위한 안거’ 등 다양한 형태의 수행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할 수 있었다.

명법 스님의 눈에 비친 미국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가불교이다. 재가들만의 불교가 가진 한계가 분명 있겠지만, 한국불교가 출가라는 틀에 갇혀 현대사회의 변화와 현대인들의 문제에 소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국인들은 수행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모색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크게보기최근 한국 불교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되고 있는 ‘한국불교 세계화’ ‘간화선 세계화’ 구호에 대해서도 스님은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에서는 지난 1970년대 불었던 선 열풍은 퇴조하고 있는 흐름이라고 소개한 명법 스님은 재가중심의 미국불교에서는 자칫 공허한 울림으로 들릴 수 있는 선적 메시지보다 삶과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불교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를 구분한 것은 일본이 자신들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레토릭(rhetoric, 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명법 스님은 “우리는 그런 프레임에 속아 ‘한국불교’만 강조하기보다 불교적인 지혜를 기르고 힘을 모아 당면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미국불교에 대해 여전히 막연한 환상이나 잘못된 정보에 흔들리고 있는 한국불교계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던져진 명법 스님의 ‘미국불교 체험기’가 한 권의 책으로 찾아온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설정에도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68쪽 18,000원.